미중 정상이 첫 대면 회담을 통해 기후·보건·식량 등의 분야에서 대화 채널을 복원하기로 한 가운데 이에 대한 후속 조치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내년 초 중국을 찾을 예정이다.
이번 회담의 성과를 두고 미국 외교가에서는 양국 정상이 고위급 소통 채널을 복원한 것 자체 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반면 대만, 북핵 문제 등을 두고 입장 차를 확인한데다 중국이 관계 개선을 위해 미국이 ‘결자해지’에 나서야 한다며 미국에 책임을 돌려 미중 양국 간의 본질적인 ‘패권 다툼’은 정상회담 이후에도 달라질 게 없을 것으로 전망됐다.
1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즈(NYT)에 따르면 블링컨 장관은 미중 정상회담 후속 조치로 내년 초 중국을 방문할 계획이며, 양국 외교 당국자들이 조만간 그의 중국 방문 일정을 조율할 예정이다.
블링컨 장관은 왕이 외교부장과 만나 수차례 회담한 적이 있으나 국무장관으로서 중국을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블링컨 장관의 방중은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단절된 양국 간 대화 채널의 복원된다는 상징성도 갖고 있다.
앞서 백악관에 따르면 미중 정상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개발도상국 부채탕감, 보건 및 글로벌 식량 안보, 기후 변화 등의 분야에서 양국이 공동으로 대응해 나갈 것을 독려했다. 중국 외교부 역시 "양 정상은 자국 팀에게 이번에 도달한 중요한 공동 인식을 신속히 실행에 옮기고 중미 관계를 안정적인 발전 궤도에 다시 올려놓기 위해 구체적 조처를 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내 외교 전문가들은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치가 극히 낮았던 것에 비춰보면 양국이 소통 채널 복원에 합의한 것 만으로도 성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지낸 다니엘 러셀은 “미중 정상 간의 전략적 비전을 바탕으로 한 확장된 토론, 고위급 소통 채널 구축이 두 가지 중요한 결과”라면서 “서로의 우선 순위와 의도를 확인하는 것은 정확히 두 정상이 필요로 했던 종류의 대화”라고 밝혔다.
미중 양국간 충돌 방지를 외교는 지속되겠으나 미국의 대중 정책에 변화가 없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미시간 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위안위안앙은 "바이든 대통령의 중국 접근 방식은 '부드럽게 말하며 큰 막대기를 들고 다닌다'고 표현할 수 있다"면서 “그는 중국을 모욕하지는 않으나, 꾸준히 중국에 맞서 동맹을 결집시키고 핵심 기술을 차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도 정상간의 만남 자체만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중국 관영 매체인 환구시보는 15일 사설을 통해 “미·중 정상이 함께 앉아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얘기를 하든 대외적으로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는 게 국제 언론 보도에서 이번 회동을 논평하는 일반적인 기조”라고 밝혔다.
중국 측에선 이번 정상회담에 임하는 미국 측의 자세를 높게 평가했다. 미국 대표단이 중국 대표단의 숙소와 차로 10분 거리에 호텔을 잡은 것에 주목하는 여론이 적지 않다며 정상회담도 미국이 먼저 제안해 열렸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미중 관계가 정상화되기 쉽지 않다는 점도 드러냈다. 환구시보는 “'결자해지'란 말처럼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취하고 행동으로 보여야 미중 관계가 정상 궤도에 오를 수 있다”고 지적하며 바이든 대통령이 회담에서 제시한 사항의 이행을 강조했다. 이는 ▲미국은 중국의 체제를 존중하고 ▲중국의 체제변경을 추구하지 않으며 ▲신냉전을 추구하지 않으며 ▲동맹관계 강화를 통한 중국 반대도 추구하지 않으며 ▲'대만의 독립'도 지지하지 않으며 ▲'2개의 중국', 즉 '각각의 중국과 대만'을 지지하지 않으며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추구하지 않으며 ▲중국의 경제발전을 저해하고 ▲중국을 포위할 의사가 없다 등이다. 환구시보는 “우리는 바이든 대통령의 약속을 어김없이 이행하는 것이 진정성과 신뢰에 관한 것이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중국은 전날 외교부 성명에서 미 백악관 발표와 달리 북핵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으나 왕이 외교부장의 브리핑에선 관련 질문에 대해 답을 했다. 왕 부장은 “시 주석은 한반도 핵 문제에 대해 중국의 기존 입장을 설명하면서 한반도 문제의 핵심을 직시하고 각자의 관심, 특히 북한의 합리적 관심사를 균형 있게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미국이 북한의 핵실험 관련 중국의 책임을 촉구한 것에 대해 중국은 북한의 우려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나서야 한다고 대응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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