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자녀 2명을 키우는 30대 주부 A씨는 지난달 의류관리기 렌털 서비스를 해지했다. 생활비, 식비, 대출금 이자까지 줄줄이 오르자 가전제품 렌털 비용부터 줄이기로 한 것이다. 2년간 코로나19로 건강관리에 신경을 많이 썼지만 지금은 매달 5만원씩 들어가는 렌털비조차 부담스러운 처지다.
1998년 웅진이 정수기 렌털을 처음 시작한 뒤로 2017년 국내 계정 1000만개를 돌파하며 승승장구하던 렌털업계에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가전 뿐만 아니라 자동차, 휴대전화, 도서 등 모든 영역에서 렌털 서비스를 유행시키며 구독경제를 창조했던 렌털사들의 성장세가 둔화됐기 때문이다. 올 들어서는 고물가에 렌털 해지 움직임이 커지면서 렌털사마다 해외시장 개척, 사업 다각화 등 생존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렌털 1위 업체인 코웨이의 국내 렌털 계정수는 올 상반기 656만개에서 3분기 658만개로 2만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난해 4분기부터 국내 계정 수가 650만대에 머물면서 국내외 계정 1000만개 연내 돌파도 불투명해졌다.
코웨이의 경우 3분기 영업이익(1650억원)이 전년(1638억원) 수준을 유지하며 나름 선방했지만 다른 업체들은 실적이 크게 둔화하는 모습이다. SK매직의 3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224억원에서 올해 58억원으로 74% 급감했고, 쿠쿠홈시스(쿠쿠전자 모회사) 영업이익도 607억원에서 450억원으로 추락했다. 시장이 어려워지자 현대백화점그룹은 현대홈쇼핑이 보유한 렌털 자회사 현대렌탈케어의 지분 매각을 검토 중이다.
렌털사 실적이 내리막길을 걷는 이유는 국내 시장이 포화 상태에 접어들었고 군소 업체까지 난립하면서 출혈 경쟁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저출산, 결혼 기피에 1인가구 공략 전략을 폈지만 이마저도 한계에 직면했다. 올해는 코로나19 여파에 고물가 폭탄까지 겹치면서 개인은 물론 영세사업장의 렌털 해지 우려도 커졌다. 업계 관계자는 “2030년 국내 렌털 시장이 100조원까지 성장한다는 예상이 있었지만 정수기 등 주력 상품 부문이 포화 상태에 접어들었다”며 “해외 판매 비중을 늘리거나 렌털 종류를 늘리는 방식으로 생존 경쟁이 벌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위기감이 커지자 렌털 업체들은 해외시장 개척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선제적으로 말레이시아·미국·중국 등에 진출한 코웨이는 해외 매출 비중을 37%까지 늘리며 올 3분기 해외 계정수를 300만개(국내외 968만개)로 끌어올렸다. SK매직과 쿠쿠전자도 말레이시아 등 해외 시장 공략에 집중하고 있다. 국내 점유율이 10% 밑으로 떨어진 청호나이스는 미국 컬리건 등 협력사들과 투자 방안을 논의하며 해외 판매 확대를 추진 중이다.
반려동물 산업 확장에 주목해 펫 가전 판매·렌털 서비스를 강화하는 전략도 이어지고 있다. 가전 브랜드 웰스를 운영하는 교원그룹은 지난 9월 업계 최초로 ‘펫드라이룸 홈케어 서비스’를 선보였다. 쿠쿠전자는 일본 반려동물 시장이 국내보다 5배나 더 크다는 점에 주목해 지난해 11월부터 펫드라이룸 수출을 시작했고 월평균 60%의 판매율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 공략으로 자신감을 얻은 쿠쿠전자는 미국 한인 시장과 온라인몰 입점을 시작으로 미국 시장 진출도 본격화하고 있다.
자사 상품에만 적용하던 렌털·관리 서비스를 타사 제품에도 적용해주는 업체도 늘고 있다. SK매직은 이달 매트리스를 별도로 렌털하지 않아도 이용할 수 있는 일회성 매트리스 클리닝 서비스를 내놨다. 기존에 사용하던 타사 제품일지라도 전문적인 방문관리를 받을 수 있는 상품으로 코웨이·교원 등 경쟁사들이 선점한 매트리스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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