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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력이 신장돼야…그러잖으면 한국을 누가 잡아먹으려 하지 않겠나” [청론직설]

◆정운찬 전 국무총리

건국 100년 맞는 2048년에 ‘5대 강국’ 도약 비전 제시

위기는 기회…尹, 외환위기 극복 주역 만나 지혜 경청을

서울대·검사 출신 등 편중인사 계속되면 발전할 수 없어

젊은층에 희망 주고 ‘돌봄’ 서비스 제공해야 저출산 해결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7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3·1운동 때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린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의 유지(遺旨)를 빌려 “국력이 신장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을 누가 잡아먹으려고 하지 않겠나”라고 말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정운찬 전 국무총리


“국력이 신장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을 누가 잡아먹으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7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은사였던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가 살아 있다면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당부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이같이 답했다. 정 전 총리는 “공산당 정권 출범 100주년을 맞이하는 2049년에 ‘대국굴기’를 하겠다는 중국에 맞서 우리도 2048년 건국 100주년을 맞아 세계 5대 강국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국민은 늘 위기 때 더 큰 기회를 만들어 왔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국제통화기금(IMF) 국난’ 극복을 주도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등을 만나 지혜를 구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근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이사장을 맡게 된 정 전 총리는 “젊은 세대들에게 미래 희망을 심어줘서 직계가족 부양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해야 한다”면서 종합적이고 일관된 정책 추진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리가 직면한 경제·안보 위기가 심각하다.

△경제가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 현상 때문에 어렵고 안보도 북핵 문제 등으로 굉장히 위험하다. 특히 글로벌 공급 체인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세계가 이렇게 변화할 때 오히려 우리가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1970년대 석유 파동, 1997년 IMF 경제 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등을 겪었지만 국민들의 뜻과 힘을 모아 잘 극복하고 더 부강한 나라로 만들지 않았나.

-정 전 총리께서 얼마 전 ‘2048년 G5 비전’을 제시한 배경은 뭔가.

△2048년은 건국(1948년) 100년을 맞는 해이다. 중국도 공산당 정권 출범(1949년) 100년을 맞이하는 2049년에 ‘대국굴기’를 하겠다고 한다. 우리도 2048년에 세계 5대 강국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설정해서 중국·일본 등 주변국은 물론 세계 어떤 나라도 우리를 함부로 대할 수 없을 만큼 강한 힘을 가진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건국의 기점을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이젠 건국 기점을 둘러싼 소모적 논란에서 벗어나야 한다.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를 세운 뒤 1948년은 아무것도 아닌 걸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임시정부 수립은 독립을 위한 위대한 운동임에 틀림없지만 그때는 근대적이고 독립적인 정부가 아니라는 점에서 나는 1948년을 건국의 해로 보고 싶다.

-2048년 비전을 달성하려면 윤 대통령이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는데.

△나는 윤 대통령의 순박함 그리고 공정과 상식을 앞세운 담대함에 굉장히 매료됐다. 하지만 실책을 거듭하는 요즘 모습을 보면 정말로 속상하다. 윤 대통령이 좀더 겸손하게 여러 분야 사람들과 협조하면서 새로운 리더십을 만들고 새로운 리더들을 키워야 한다. 그러려면 주변 참모들에게 물어봐야 하는데 묻지도 않고 말하는 이도 없는 듯하다. 윤 대통령의 귀가 아예 닫힐까 걱정된다. 윤 대통령이 ‘IMF 국난’ 극복 과정을 이끈 주역들을 두루 만나 현재 위기를 넘기고 더 큰 기회를 만들어내는 지혜를 얻었으면 좋겠다.

-윤석열 정부가 바로 서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인사 시스템이 바로잡혀야 한다. 인사 수첩이 얼마나 얇으면 장관 또는 장관급이 온통 서울대 출신 아니면 검찰 출신인가. 다양성이 없으면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미국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핼버스탬이 쓴 ‘최고의 인재’라는 책을 보면 미국의 존 F 케네디와 린든 B 존슨 행정부 8년 간 베트남전에 잘못 개입하고 질 수 없는 전쟁에서 지는 등 패착이 많았는데 하버드·프린스턴·예일 등 명문대 출신들이 국가 요직을 독차지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을 봐도 그렇다. 대우는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출신이 아닌 직원을 볼 수 없을 정도였지만 해체됐고 삼성은 학벌보다 실력과 팀워크를 중시한 결과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했다.

-은사였던 스코필드 박사가 지금 살아 있다면 어떤 메시지를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국력이 신장돼야 한다’고 말씀하실 것 같다. 1968년의 일화다. 하루는 스코필드 박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는데 나중에 국무총리가 된 이한기 서울대 법대 교수가 다가와 인사하더라. ‘뭘 가르치는가’라는 스코필드 박사의 물음에 이 교수가 국제법을 가르친다고 대답했더니 “세상에 없는 것을 가르치면서 가난한 나라의 국립대학에서 월급을 받으면 창피하지 않느냐”고 스코필드 박사가 핀잔을 줬다. 면박이 좀 심하다 싶어 ‘왜 그러셨느냐’라고 물었더니 스코필드 박사는 “내가 1·2차 세계대전 시기도 보냈고 미국·소련 간 패권 경쟁 시대도 경험했다. 그런데 국제법이 세상을 움직이는 게 아니고 국력이 세상을 움직이더라. 국력 신장을 위해 배우고 일도 해야 한다. 국제법은 그냥 강자의 논리일 뿐”이라고 말했다.

-스코필드 박사는 어떤 인물인가.



△영국 태생 캐나다인으로 1916년부터 세브란스 의전에서 일하다가 3·1운동 때 만세 운동과 화성 제암리 참사 등의 사진을 찍어 세상에 널리 알렸다. 그가 1919년에 찍은 사진과 일제에 의해 추방당할 때까지 했던 활동이 1943년 카이로 선언에서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독립시킬 것’을 결의하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스코필드 박사는 한국 독립에 큰 역할을 했다.

-스코필드 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게 된 사연은.

△세계적인 수의학자였던 스코필드 박사는 토론토에서 은퇴한 뒤 1958년부터 서울대 수의학과 초빙교수로 근무하면서 사비를 털어 어려운 학생들을 도왔다. 내가 그 수혜자 중 한 사람이다. 그분에게서 중학 시절 장학금을 받고 성경 공부를 통해 인격 형성에도 큰 도움을 받았다. 대학 진학 때는 “운찬이는 소득 격차 등 각종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가르쳐주는 데 가서 공부하고 그 다음에 일생을 각종 격차 줄이기 노력을 하면서 살라”고 하셨다. 그래서 내가 경제학을 전공하게 된 것이다.

-최근 맡게 된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이사장으로서 인구문제 해법을 제시한다면.

△젊은 세대들에게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줘서 직계가족 부양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의 모든 정책을 종합적이고 일관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박재윤 서울대 명예교수가 최근 제안한 공통소득제 등 다양한 구상을 긍정적 대안으로 평가하고 싶다. 최소한의 인간적 생활에 필요한 소득의 일정한 비율을 육체적으로 근로가 가능한 모든 국민들에게 주고, 육체적으로 근로가 불가능한 국민들에게는 삶에 필요한 기본 소요액의 거의 전부를 준다는 것이 공통소득제의 요체다.

-직장 생활과 육아의 병행이라는 난제를 해결할 방안은 무엇인가.

△부부의 직장 생활과 자녀 양육을 병행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위한 ‘전국 공공 유료 돌봄 시스템’이 좋은 대안이라고 본다. 저렴한 비용으로 업무·육아를 다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봐주고 다른 곳에서는 공공 유료 돌봄 시설을 갖춰서 도와주면 된다. 돌봄 서비스를 아예 무료로 해주는 기업들이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의 성장 잠재력 저하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교육을 모방형 인재 육성에서 창조형 인재 육성 중심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대학 입시에서 계층·지역별로 균형적 선발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누가 국가 리더로 성장하든 대학에서 서울·지방 출신, 부유층·빈곤층 출신을 폭넓게 경험해서 세상을 향해 탁 트인 시야를 가질 수 있다.

-늘 ‘동반성장’을 강조해온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은 이제 경제 대국이 됐다. 한 걸음 더 나아가 2048년쯤 되면 우리도 ‘주요 5개국(G5)’이 됐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 그러나 저성장이라는 허들(장애물)과 양극화라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가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다. 저성장과 양극화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그나마 완화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 바로 동반성장이다. 이익 공유와 중소기업 적합 업종 지정, 발주 기준 조정 등을 통해 대기업으로 갈 돈이 중소기업으로 흐르게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면 중소기업이 투자해서 생산이 늘고, 고용·소득·소비가 증가해 경기 침체가 완화되고 기업이 다시 투자에 나서는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킬 수 있다.

-그래도 한국의 성장을 이끈 대표 기업인 대기업을 지원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은가.

△단기적으로는 그 말이 옳을 수 있지만 결국 중소기업이 잘돼야 나라 경쟁력이 커진다. 대기업은 별로 없지만 중소기업이 잘되는 스위스·오스트리아·대만 등의 경제가 강하다. 반면 한국은 대기업은 많은데 중소기업은 약한 나라다. 지금 중소기업이 전체 기업의 90%가 넘고 또 전체 고용의 85%를 차지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중소기업이 살아야 한국 경제가 살고 저성장뿐 아니라 양극화 문제도 완화할 수 있다.

◆He is…

1947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컬럼비아대 조교수를 거쳐 1978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서울대 경제학부 학부장과 사회과학대학 학장을 거쳐 2002년 서울대 총장으로 선출됐으며 총장 재임 당시 지역균형선발제도를 도입했다. 한국금융학회 회장, 한국경제학회 회장, 한국사회과학연구협의회 회장 등을 맡았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냈고 총리 퇴임 후 초대 동반성장위원장,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등으로 활동했다. 요즘은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과 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 명예회장을 맡아 일하고 있으며 10월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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