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연휴에 기록적인 한파와 폭설로 몸살을 앓고 있는 미국에서 사망자들이 쏟아지고 있다.
2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번 폭설로 가장 피해가 컸던 뉴욕주 북서부 버펄로를 포함한 이리카운티에서는 사망자가 하루 만에 13명에서 25명으로 늘었다. 인근 지역을 통틀어 최소 27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NBC뉴스는 미 전역에서 폭설, 혹한, 강풍 등으로 인한 이번 겨울폭풍 사망자는 최소 55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1.2m가 넘는 눈이 내린 버펄로는 30명 가까운 목숨을 앗아간 지난 1977년 눈 폭풍 이후 45년 만에 최악의 폭설로 기록될 전망이다.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는 "어마어마하고, 일생에 한 번 정도 올 만한 폭풍"이라며 백악관에 연락해 연방정부 차원의 재난지역 선포를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요청했다.
이에 백악관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날 호컬 주지사와 통화하고 재해 복구를 위해 연방 정부 차원에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내 마음은 이번 연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모두와 함께한다"며 "여러분을 위해 나와 질이 기도하고 있다"고 별도로 트위터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버펄로 일대에는 눈더미가 최고 2m 가까이 쌓이면서 눈 속에 갇힌 자동차 등에서 사망자가 뒤늦게 발견되고 있다. 특히 구급차와 소방차, 경찰차까지 시민들의 구조 요청을 받고 출동하는 길에 눈 속에 갇혀버리는 바람에 구조대원들이 구조를 요청하는 비상사태가 벌어졌다.
주 재난당국은 폭설이 쏟아진 사흘간 500건에 가까운 구조 작업을 진행했으나, 장비가 모자라 주민들에게 스노모빌을 빌려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처럼 구조대원들조차 도움을 주기 힘들었던 최악의 상황에서 주민들은 서로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한 페이스북 그룹에서는 '집에 홀로 갇힌 17살 아들을 도와달라'는 글이 올라오자 스노모빌을 소유한 한 주민이 '내가 간다'는 댓글을 올리기도 했다.
조경 및 제설회사를 운영하는 버펄로 주민 리언 호레이스 밀러(52)는 아예 연휴 내내 구조 작업에 팔을 걷어붙였다. 전날 오후까지 눈더미에서 14명을 구조했고, 전력이 끊긴 집에 방치돼 있던 주민들을 무사히 옮겼다. 밀러는 "금요일부터 쉴새 없이 구조했다"면서 "내게 큰 트럭이 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NYT에 밝혔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하루 쉴 예정이었던 견인차 기사 크리스 지아르디나(43)는 남편의 인슐린을 가지러 병원에 왔다가 눈더미에 차가 갇혀 옴짝달싹 못 하게 된 한 여성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이 여성의 차를 끌어내 최대한 집에 가깝게 옮겨줬다.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 종사자들도 도움이 필요한 주민들을 위해 온라인에 자신의 위치와 전화번호를 올렸다. 대체의학 의사인 타마라 조이 레티노는 크리스마스 날 새벽 2시 천식을 앓고 있는 아들이 숨쉬기 어려워한다는 다급한 전화를 받고 곧장 달려가 도움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아이 4명을 데리고 운전하다가 눈더미에 갇힌 버펄로 주민 질라 산티아고(30)도 11시간 만에 지나가던 제설차의 도움으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인근 작은 마을의 한 식당은 도로에서 발이 묶인 운전자와 행인들을 위한 피난처가 됐다. 이 식당은 이틀 동안 115명과 개 4마리에게 쉴 곳을 제공했고 이 소식을 들은 이웃 주민들과 다른 상점주들이 다양한 물품을 제공했다고 NYT는 전했다.
눈 속에 갇힌 한국인 관광객 9명을 선뜻 집으로 불러들여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낸 치과의사의 사연도 NYT를 통해 알려졌다.
한편 기후 전문가들은 이번 눈 폭풍을 ‘사이클론 폭탄’급으로 악화시킨 원인으로 기후변화 문제를 지목한다.
환경보호기금(EDF)은 홈페이지를 통해 "기후변화 효과로 눈폭풍이 더 많은 폭설을 몰고 온다"고 전했다. EDF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수증기가 더 많이 대기로 유입되고 대기 중 수분이 증가하면 폭설과 폭우의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극의 급격한 온난화는 제트기류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극지방의 찬 공기를 정상보다 더 남쪽으로 밀어붙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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