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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롬멜, 잘루즈니 그리고 드론 전쟁

김능현 국제부 차장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명장 에르빈 롬멜은 북아프리카에 파견되자마자 영국군을 몰아내며 전황을 뒤집었다. 트럭에 나무 모형을 입혀 전차로 위장하고 차량에 끌개를 붙여 모래바람을 일으킴으로써 착시 효과를 내는 신출귀몰한 전술에 영국군은 혼쭐이 났다. 롬멜의 승리 비결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은 일선 장교와의 소통이었다. 롬멜은 일선의 초급장교들과 자주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요구를 전술에 즉각 반영했다.

절대적 열세에도 연전연승을 거듭하는 우크라이나군의 승리에도 ‘소통’이 자리 잡고 있다.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이자 국민 영웅으로 ‘철의 장군’이라는 별명을 얻은 발레리 잘루즈니 대장은 현장 지휘관의 판단을 최대한 존중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잘루즈니 대장의 승리 비결을 조명하면서 그의 말을 소개했다. “적과 마주하는 일선 군인들은 키이우(군 지휘부)보다 (전장) 상황을 훨씬 더 잘 압니다. 그들이 발견한 적의 약점이 전쟁에 도움이 됩니다.”

우크라이나군은 소통에서 한발 더 나아가 분권화까지 이뤄냈다. FT는 “잘루즈니 대장은 소규모 부대 전투에서는 병사 개개인이 주도권을 갖고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총사령관이 된 후 사령부 동의 없이 최전방 부대가 적군에 발포하는 것을 허용했다”고 전했다. 일선 지휘관들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그들에게 피드백을 얻은 것이 속도를 생명으로 하는 군사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비결이었다는 것이다.



패퇴를 거듭하는 러시아군은 정반대다. 모든 결정권이 최고지휘관 한두 사람에게만 있고 일선 장교들은 말 한마디 못하는 조직 문화가 패전의 원인이라는 게 외신의 분석이다. FT는 “강력한 포, 탱크, 병력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권한 위임과 소통이었다”며 “(잘루즈니는) 권한을 위임한 만큼 승리의 공로도 부하 장교들에게 돌렸다”고 전했다.

잘루즈니 대장의 용병술은 우크라이나군의 디지털화와 맞물려 효과가 극대화됐다. 우크라이나는 이번 전쟁을 거치며 서방 군대의 최대 목표인 완전한 네트워크화를 실현해내는 성과를 거뒀다. 네트워크 분야에서만은 미군을 능가한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우크라이나군의 네트워크화는 사실 거창한 게 아니다. 미군처럼 첨단위성도 고고도 정찰기도 보유하지 못했지만 민간 드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민간 소프트웨어 등 값싼 장비를 통합해 모든 장교가 전장 상황을 공유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네트워크화를 실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우크라이나군은 펜타곤이 수십 년간 수십억 달러를 들여 노력해온 디지털 네트워크화를 단 10개월 만에 달성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군 상황을 찍은 수많은 사진과 동영상에는 일선 장교가 아이패드나 노트북으로 전장 상황을 파악하고 명령을 내리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우크라이나군의 성취는 드론 전쟁 시대를 맞아 묵직한 교훈을 던지고 있다. 제아무리 돈을 쏟아부어 위성을 띄우고 첨단 드론을 도입하고 방공망을 구축한다 해도 중앙집권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군대는 결국 패배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드론 침범에 당한 우리 군도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북한 드론 침범 이후 우리 군은 합동드론사령부를 창설하고 스텔스 무인기와 소형 드론 생산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정작 북한 드론 침범에 즉각 대응해야 하는 일선 부대의 의견을 얼마나 들었는지, 그들에게 어떤 권한을 줄 것인지 등 지휘 체계에 대한 논의는 눈에 띄지 않는다. 해결책은 지금 전쟁을 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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