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한국을 방문한 세계적인 경제사학자 애덤 투즈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한 강연에서 “세계경제가 전례 없는 다중위기(polycrisis)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투즈 교수는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등 여러 위기가 동시다발적·누적적·연속적으로 발생하면서 인플레이션, 식량 부족 등의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최근 “우리가 지금 다루는 갖가지 다른 유형의 충격은 지극히 이례적”이라며 “마치 끔찍한 조식 뷔페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다중위기는 1990년대 프랑스 철학자 에드가르 모랭이 구소련 붕괴 이후 불확실성에 빠진 세계 문제를 거론하며 처음 소개한 개념이다. 복합 위기라고도 불린다. 이후 2016년 장클로드 융커 전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시리아 난민과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등 당시 유럽에 닥친 어려움을 이 용어로 표현해 널리 알려졌다.
‘분열된 세계에서의 협력’을 주제로 개막한 올해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의 키워드가 다중위기라고 미국 뉴욕타임스와 시사주간지 타임이 17일 보도했다. 포럼 측은 행사에 앞서 발표한 ‘세계 위험 보고서 2023’에서 “세계가 다중위기에 처해 있다”며 무력 충돌 등 파국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특별연설에서 “세계는 5급 허리케인의 중심에 있다”며 경기 침체,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각국의 높은 부채 수준 등을 복합 위기 요인으로 꼽았다. 대서양 서부의 카리브해, 멕시코만 등에서 발생하는 강한 열대성저기압인 허리케인은 강도에 따라 1~5급으로 분류된다. 5급이 최고 등급이며 4급 이상은 철근콘크리트 건물도 완전히 파괴시킬 정도이다.
‘위기는 준비하지 않은 자에게는 고난으로, 준비한 자에게는 기회로 다가온다’는 경구가 있다. 지금의 다중위기에 어떻게 대응하고 준비하느냐에 따라 한국의 위상이 달라질 수 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도약하려면 ‘신발 속 돌멩이’ 같은 규제 등 투자·고용의 족쇄를 제거해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일시적 땜질이 아닌 구조 개혁 등 체질 개선으로 실력을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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