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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한국기업 쓴맛 봤던 인도시장…'숙성 와인' 만들려면 장기 윈윈 전략을"

◆라훌 라지 인도 자와할랄 네루대 한국학과 교수

미·중 패권전쟁 따른 탈중국 현상으로 인도 시장 급부상

제조·첨단기술 한국과 IT·우주·생명공학 인도 ‘윈윈’ 가능

“인도는 기회의 땅이지만 쉽게 안 열려…장기 전략 필요” ?

尹정부, 1위 인구대국 떠오른 인도 중시 외교 정책 펴야

라훌 라지 인도 자와할랄네루대 한국학과 교수가 25일 서울경제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한국·인도 간 윈윈 전략을 장기적으로 잘 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진 제공=라지 교수




고광본 선임기자


“포스코가 과거 인도에 진출했다가 쓴맛을 봤잖아요. 하지만 ‘좋은 와인은 천천히 익는다’는 말이 있어요. 종교·문화·언어의 다양성이 있는 인도에는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해요. 무엇보다 양국의 경제와 과학기술 구조가 상생할 수 있으므로 윈윈 전략을 장기적으로 잘 짜면 효과가 클 것입니다.”

라훌 라지(40·사진) 인도 자와할랄네루대 한국학과 교수는 25일 서울경제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미중 패권 전쟁으로 한국이 인도에 더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인도와의 상생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갈지는 잘 모르는 듯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올해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인구 대국으로 부상하는 인도는 값싼 노동력과 초대형 시장을 가진 데다 기초과학과 정보기술(IT), 바이오, 우주 등 적지 않은 분야에서 기술력이 뛰어나다. 라지 교수는 “한국은 제조업·반도체·배터리·나노·전기자동차 기술이 탁월한 데 비해 인도는 소프트웨어·우주·생명공학 기술이 뛰어나 윈윈할 수 있다”며 “한국은 인도와 어떻게 주고받을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한편 인도 유학생과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먼저 한국학을 전공한 이유가 궁금하다.

△2000년대 초중반 한국이 첨단 기술에서 발전하고 대중 문화에서도 성공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과 식민지 경험과 전쟁의 폐허를 딛고 도약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한국과 인도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양국은 수천 년의 긴 역사와 문명을 갖고 있다. 가야의 김수로 왕과 인도 허황옥 공주가 부부였다는 설화가 있지 않나. 불교도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전파됐다. 한국과 인도의 독립기념일이 8월 15일인데 양국 대사관은 공동으로 독립을 기념한다. 양국 국민은 조상을 숭배하고 가족 간 유대감이 강하며 열심히 일한다. 양력에다 힌두교력과 음력을 각각 같이 쓰는 것도 공통점이다. 다만 인도는 언어·종교 등이 매우 다양한데 시간을 잘 지키지 않고 완벽하지 않더라도 ‘괜찮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미중 패권 전쟁의 와중에 한국 기업의 탈(脫)중국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베트남 등 아세안과 인도가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7000여 개에 이르지만 인도에 있는 한국 기업은 700여 개에 불과하다. 올해는 한·인도 수교 50주년으로 한국은 인도의 ‘동방 정책’에서 중요한 나라 중 하나이다. 양국은 중국의 행동에 대해 우려하면서 매년 2+2(국방·외교장관급) 대화를 한다. 하지만 양국 협력에 여러 장애물이 있다. 인도는 지방정부와 연방정부의 정책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국 언론은 인도의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부정적 기사를 많이 다뤘지만 인도의 백신 자체 개발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대규모 제조·수출에 대해서는 잘 보도하지 않았다.



-한국이 인도를 중시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인도 전문가가 부족하고 인도에 체류하는 과학기술인도 거의 없는 실정인데.

△한국은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 4강국에 주로 신경을 쓰다 문재인 정부에서 아세안과 인도에 초점을 맞춘 남방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는 공적개발원조(ODA) 100억 달러 프로젝트를 발표했으나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다. 많은 한국 대학이 인도 대학과 양해각서(MOU)를 맺었으나 대부분 협약서에 그쳤다. 양국 대학의 인력 교류와 공동 연구는 아주 부족한 상태이다. 양국은 이해원 한양대 명예교수 등 민간이 먼저 움직인 뒤 정부 차원에서 뉴델리에 ‘한·인도 연구·혁신센터’를 만들었으나 아직 두드러진 활동이 없다. 뱅갈로에 있는 한국과학기술원(KIST)의 ‘인도·한국 과학기술협력센터’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상대적으로 인도 진출에 훨씬 적극적이지 않나.

△일본은 인도와의 관계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일본국제협력기구(JICA)는 인도의 교육 인프라 구축을 지원해왔다. 인도 정부가 인도공과대(IIT) 몇 곳을 출범시키면서 외국과의 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장려했다. JICA는 하이데라바드에 신설된 IIT-H캠퍼스와 연구센터 구축에 23억 3500만 엔을 제공했고 도쿄대 등 여러 대학교가 인재 유치를 위해 현지 사무실을 운영하고 장학금도 늘려왔다. 일본은 2017년 말부터 인도인 인턴을 받아 3~5년의 기술 실습 프로그램도 가동했다. 장기적으로 총 30만 명의 인턴을 일본에 보내는 것이 목표다. 반면 한국은 인도에 초점을 맞춘 장기 외교정책 목표를 갖고 있지 않다. 윤석열 정부가 인도를 중시하는 정책을 폈으면 한다.



-한국은 1990년대 초반에 인도에 관심을 뒀다가 시들해졌다. 그 뒤 문재인 정부가 남방 정책을 폈으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한국은 반도체·배터리·전기차·디스플레이 분야 등의 글로벌 리더인데도 일본에 비해 인도에 적극 진출하지 않았다. 인도는 한국의 첨단 제조업과 방위 기술 등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인도는 많은 선박과 잠수함이 필요한데 한국이 이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 현재 인도가 필요한 수십억 달러 규모의 AIP잠수함(디젤·전기 추진 이외에 별도의 추진 동력 시스템)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



-소프트웨어·우주·생명공학 등 인도가 뛰어난 분야도 적지 않은데.

△인도는 훌륭한 소프트웨어와 한국보다 30년가량 앞선 우주기술을 비롯해 생명공학과 약학 연구에서도 유능해 한국과 윈윈이 가능하다. 인도는 반도체 제조를 위해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인도에서 배터리를 포함한 전기차와 태양전지 현지 생산을 통해 인도 정부의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인도는 경제구조에서 사회주의적인 문화가 있다는 지적도 받지만 과학기술과 경제 성장 측면에서 잠재력이 크다는 평가가 있다.

△미국 테슬라가 전기차 판매에만 관심이 있고 제조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시장을 개방하지 않은 것처럼 그 말도 일리가 있지만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인도 정부는 과학 예산을 크게 늘렸고 과학기술 중심으로 ‘새로운 인도 경제’를 구축하려는 열망이 있다. 특히 제약과 우주 분야에서 강력한 입지를 확보했다. 우주 분야의 경우 비용 대비 효율성이 뛰어나다. 하나의 발사체로 100개 이상의 위성을 쏘아 올리는 세계 기록도 갖고 있다. 지난해 화성 궤도 탐사선이 8년간의 임무를 종료했고 내년에는 지구 저궤도 유인 우주비행선을 쏘아 올릴 예정이다. 다만 인도의 혁신지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점은 고쳐나가야 한다.



-포스코의 인도 진출 실패 사례를 참고하면서 양국이 윈윈하는 차원에서 새 판을 짤 필요가 있겠다.

△포스코가 2005년 인도와 13조 원의 투자 MOU를 체결했다가 토지 수용 과정에서 지역 주민의 강한 반발로 2017년에 이를 사실상 포기했다. 이러한 선례가 경제협력의 장애물이 돼서는 안 된다. ‘좋은 와인이 익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말처럼 인도는 시간이 걸리는 나라이다. 한국 정부는 장기 전략을 세우고 인도는 정책의 일관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 한국은 인도 관광객과 유학생의 관심을 끌기 위한 방안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인도인에 대한 비자 절차 완화도 필요하다.

-인도 뱅갈로·하이데라바드·델리 등에 혁신 클러스터가 있다. 대학 등의 혁신 생태계를 소개한다면.

△인도는 뱅갈로·델리·뭄바이를 중심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스타트업 생태계를 가졌다. 인도공과대(IIT)와 인도경영대학원(IIM)이 최전선에 있다. 특히 인도의 많은 유니콘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IIT델리 출신이다. IIT델리 출신 중에는 뱅갈로에서 전자상거래 업체 플립카르트를 창업해 2018년 미국 월마트에 77%의 지분을 넘기고 160억 달러를 받은 사람도 있다. 인도 정부는 2020년 대학 국제화를 촉진하기 위해 해외 유수 대학의 인도 캠퍼스 설립과 인도 최고 대학의 해외 캠퍼스 설립을 장려하기로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미국·러시아 간 등거리 외교로 실익을 챙긴다는 지적이 있는데.

△인도는 어떤 국가와도 군사 동맹을 맺지 않고 국익에 기반을 둔 실용적 외교를 한다. 인도는 미국과도 가까운 파트너가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과거 서방 국가들이 파키스탄에 무기를 공급하고 인도에 동일한 무기 제공을 거부할 때 러시아와 국방 파트너가 돼 원만한 관계를 맺고 있다. 석유·가스의 80% 이상을 수입하는데 저렴한 러시아산을 외면할 수는 없다. 동시에 우크라이나에 필수 의약품과 의료 장비를 제공하기도 했다.



-인도인들은 해외에 많이 진출해 모국과 시너지를 내고 있는데.

△인도는 화교와 함께 세계 최대 규모의 ‘디아스포라(타국에서 사는 공동체 집단)’를 갖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 등에 인도 출신 최고경영자(CEO)도 많고 IT 개발자도 많다. 미국과 영국의 일류 대학에는 인도 출신 학자도 많다. 영국에서는 인도계 영국인인 리시 수낵이 총리로 선출됐고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의 어머니도 인도인이다. 영향력 있는 인도 디아스포라는 다국적 기업 유치 및 국제 외교에 큰 도움이 된다. 1998년 핵실험으로 국제 제재를 받다가 이후 미국과 민간 핵협정에 서명했을 때도 해외 거주 인도계 인사들의 도움이 컸다.

◆He is…

1983년 인도 비하르주에서 태어나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뉴델리의 자와할랄네루대에서 한국학을 공부한 뒤 국제관계학과 한국학 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으로 유학 와 한양대에서 한국학 전공으로 국제관계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화케미칼과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일한 뒤 2014년 경주대 조교수, 2016년 세종대 조교수로 재직했다. 한양대에서 한국학 겸임교수로도 활동했다. 2017년부터 한국국제문제학회 교육위원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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