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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경 "임상 기획 단계부터 맞춤형 지원…K바이오의 R&D 코디 될것"

[서경이 만난 사람]

◆오유경 식약처장

대담=김민형 바이오부장

"국내 제약사 소수 파이프라인에 올인…임상 실수땐 자금난 시달려

융복합규제 석박사 600명 양성 등 심사 역량 높여 '제품화' 뒷받침

의료기기 수출 글로벌 톱5 위해선 '디지털 접목 혁신제품'이 열쇠"

오유경 식약처장 성형주 기자




“의약품 임상시험은 설계나 방향 설정을 할 때 조금만 실수해도 바로잡으려면 굉장히 많은 돈이 들어갑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서류만 받아 검토할 것이 아니라 이른 단계, 즉 기획 단계부터 머리를 맞대고 함께 이야기를 해나간다면 신약 개발 비용과 시간은 줄이고 성공률은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29일 서울 목동 서울식약청 처장 집무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식약처는 K바이오의 연구개발(R&D) 코디네이터가 되겠다”고 힘줘 말했다. 오 처장은 한 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에서 식의약 ‘규제 기관’의 수장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진흥 정책’을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현재의 자리에 주어진 소명인 국민 건강 지킴이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과거 제약사 연구원, 약학대 교수 등 다양한 민간 영역에서 경험했던 규제 기관의 한계를 혁파하는 데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대담=김민형 바이오부장 kmh204@sedaily.com

윤석열 정부는 출범 첫해인 지난해 ‘바이오·디지털 헬스 글로벌 중심 국가 도약’을 국정 과제로 선정했다. 2년 차에 접어든 올해 과제 수행을 위한 구체적인 목표로 2027년까지 연 매출 1조 원 이상의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 2개 창출, 의료기기 수출 세계 5위 달성 등을 내걸었다.

오 처장에게 우리나라가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을 보유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를 물었다. “우리나라의 기초 역량은 다 좋아졌습니다. 학계에는 우수한 기술을 개발하는 브레인이 많이 늘었습니다. 업계 역시 36개의 자체 개발 신약을 만들어냈을 정도로 신약 개발 역량을 갖췄죠.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글로벌 백신·치료제 등을 다루면서 역량이 향상됐습니다. 각각의 역량은 다 좋아졌는데 이 세 가지 원석을 잘 아우르는 연계성은 여전히 부족한 점이 아쉽습니다.”

구슬 서 말을 꿰는 역할을 식약처가 할 수 있다는 게 오 처장의 지론이다. 그는 “국내 제약사는 글로벌 빅파마들처럼 여러 신약 후보 물질(파이프라인)을 동시에 개발하기가 힘들다”면서 “보유 자금이 적기 때문에 소수의 파이프라인에 거의 ‘올인’하면서 개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임상 설계 등에서 실수할 경우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진단했다.

식약처가 업계의 이런 실수를 줄여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오 처장의 판단이다. 그는 “식약처는 기업이 비임상 단계부터 R&D 코디네이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놓았다”며 “업계는 식약처를 너무 무섭다고 하지 말고 ‘친절한 식약처’로 생각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식약처는 파이프라인 개발부터 허가에 이르는 전 단계를 효율적으로 연계하기 위해 △개발 단계에서 R&D 코디 △제품화 단계에서 맞춤 상담 ‘위드유(With-U)’ △시장 진입 단계에서 신속심사(GIFT)를 지원하고 있다. 기술 개발부터 제품화까지 맞춤형 규제 지원을 하는 것이다. 특히 국가 R&D 과제의 경우 사업단에 식약처가 일원으로 들어가는 방식 등으로 규제의 정합성을 확보할 방침이다. “범부처 과제에는 7~8년짜리 미래를 바라보는 장기 과제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과제 수행 결과 좋은 기술이 개발돼 새로운 차가 나왔다고 생각해봅시다. 7~8년 후의 기술을 잘 알 수 없는 식약처가 그제서야 ‘새로운 기술이 나왔네’라며 규제 가이드라인을 구축하면 그 차는 이미 출시됐는데도 달릴 수 없죠. 차를 설계할 때부터 식약처가 길과 내비게이션을 함께 만들어놓아야 새로 개발되는 즉시 시장에 판매돼 속도전에서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같은 고품질 규제 설계와 제품화 지원을 위해서는 식약처의 심사 인력 확대와 능력 향상이 필수다. 오 처장은 특히 융복합 규제 역량을 갖춘 인재가 육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디지털 의료 기기 등 융복합 제품이 나오고 있는데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융복합 규제 역량을 배운 사람은 없다”며 “식약처는 전국 8곳의 대학원에 규제과학 과정을 개설해 2027년까지 융복합 규제 역량을 갖춘 규제과학 석박사 600명을 양성할 계획”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이 인재가 식약처에 들어온다면 훨씬 앞에서 스타트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식약처는 또 산업현장 규제 전문가 2만 4120명 등을 육성한다. 식의약규제과학혁신법 제정을 추진하고 한국규제과학센터의 기능도 확대해 규제과학 허브의 역할을 정립한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공급망 악화에 따른 감기약 등 의약품 부족 현상을 수차례 경험했다.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 개발을 국가 과제로 추진하는 우리나라의 위상에는 걸맞지 않은 모습이다. 전문가들과 제약 업계는 이런 현상의 근본적 이유 중 하나로 정부의 약가 인하 정책을 꼽는다. 저렴한 약을 많은 국민들에게 공급해 건강을 지키고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려는 정책 방안에는 공감하지만 과도한 약가 인하 정책은 신약 개발 의지마저 꺾는다는 지적이다. 오 처장은 이에 대해 “식약처가 약가 정책의 주무 부처는 아니기 때문에 언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지난해 말 발생했던 감기약 대란 때 정부가 ‘약가 인상+감기약 생산량 확대’ 패키지를 시행한 결과 공급이 늘어 감기약 판매량 제한 같은 극단적 조치 없이 무난히 넘긴 일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아세트아미노펜 650㎎의 약가는 1996년 114원에서 지난해 51원까지 떨어졌다. 제약 업계는 이 가격으로는 수익을 내기 힘들어 생산량을 줄였다. 감기약 대란이 발생할 조짐을 보이자 보건복지부는 약가를 26년 만에 처음으로 70~90원으로 인상했고 이후 제약 업계는 생산을 늘려 위기를 넘겼다. 오 처장은 “첨단 바이오 의약품을 만드는 우리나라에 아세트아미노펜 합성 기술이 없지 않은데 왜 원료 의약품을 중국·인도에 의존하는지 짚어봐야 한다”며 “국민 의약품인데도 보험 약가가 50원 미만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의료기기 수출 세계 5위 달성을 위해서는 ‘K의료 제품 메가(MEGA·MEdical product Go Abroad) 프로젝트’를 가동해 전략적인 수출 지원에 나선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의료기기 수출 규모는 2019년 37억 1000만 달러에서 2020년 66억 4000만 달러로 급등했다. 2021년에는 86억 3000만 달러로 80억 달러마저 돌파했다. 수출 규모가 가파르게 증가하고는 있지만 아직 세계 10위권 밖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수출 비교 우위에 있어 글로벌 신수요 창출이 가능한 3개 제품군, 30개 품목에 3년간 국내외 행사 연계 정책과 제품 패키지 홍보, 해외 인증 애로 해소를 위한 규제·품질 관리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333 수출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3개 제품군으로는 디지털·신개발 의료기기 등 신기술 의료기기, 체외진단 의료기기, 영상진단장비 등이 거론된다.

오 처장은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는 데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기술 접목이 열쇠가 될 것으로 본다. 지난해 식약처장으로는 처음으로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는 바이오나 화학 의약품 등 제약 분야에서는 추격 국가지만 반도체나 정보기술(IT)을 활용한 디지털 의료 제품 분야에서는 ‘퍼스트무버’입니다. 세계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디지털 경쟁력을 활용하면 우리가 디지털 의료 기술에서는 국제 규제를 선도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임상부터 사후까지 의료기기가 가진 특성에 맞는 규제의 틀을 새롭게 마련하고 다양한 규제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습니다.”

이미 가시적인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식약처가 개발한 AI 의료기기 허가 심사 가이드라인은 지난해 5월 미국·유럽·영국·캐나다 등 11개국이 국제 규제 공조를 위해 만든 국제의료기기규제당국자포럼(IMDRF)에서 공식 채택됐다. AI 의료기기 허가 심사 가이드 라인을 발간한 것은 우리나라 식약처가 처음이다. 오 처장은 “국내 기업이 만든 의료기기가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우선 안전하고 효과적인 혁신 제품을 개발해야 하고 세계에서 통용되는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며 “만약 세계 기준이 우리나라의 규제 기준과 같다면 우리 기업이 그 기준을 넘기가 훨씬 쉬울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이어 “이를 위해 의료기기 단일심사프로그램 등 협의체 가입을 통해 우리 역량을 세계적으로 입증하고 규제 당국 간 다자 협력과 양자 협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전했다.

오 처장은 2021년 7월 서울대 약대 106년 사상 첫 여성 학장으로 선임됐다. 이듬해 5월 윤석열 정부의 초대 식약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20년 넘게 항암제 등 의약품을 표적세포로 전달하는 약물 전달 연구 분야를 개척해온 약학 전문가다. 식약처 외부 전문가로 수장을 맡은 지 8개월이 지났다. 그는 “식약처에 대해 소통이 잘되지 않고 허가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시간을 끈다는 부정적 시각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막상 내부에 들어와 일을 해보니 직원 한 명 한 명이 최선을 다하고 있고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하는 기관도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마스크가 부족할 당시 한 달 동안 집에 가지 못한 직원들의 이야기를 전할 때는 눈시울을 살짝 붉혔다. 이에 오 처장은 올해 대국민 소통과 홍보 강화에 역점을 두기로 했다. 그는 “식약처가 국민의 안전을 위해 애쓰고 산업 발전을 위해 힘을 쏟는 모습이 국민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며 “잘 알려지지 않은 정책은 성공한 정책이 아니기 때문에 식약처는 올해 울타리 밖에서 국민과 소통하는 데 힘을 쏟을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She is…

△1965년 경남 창원 △1986년 서울대 약학과 △1988년 서울대 약학 석사 △1988년 보령제약 개발부 △1994년 미국 뉴욕주립대 약학 박사 △미국 하버드대 의대 세포생물학과 연구원 △1996년 SK케미칼 생명과학연구개발실 △1997년 특허청 약품화학과 심사관 △1999년 차의과학대 의학과 교수 △2005년 고려대 생명과학대 교수 △2009년 서울대 약대 교수 △2013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2021년 서울대 약대 학장 △2022년 한국약제학회 회장 △2022년 5월~ 식약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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