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로비의 그림] 한 걸음씩 태양을 향하고…창너머 바다와 마주하다

■그랜드조선 제주

로비 들어서면 화사한 작품이 마중

우고 론디노네의 '태양' 연작 2점

수채화에 무려 370가지 색상 조합

천장엔 최정화 친환경作 '연금술'이

각 층에는 다채로운 예술품 걸려

자연의 품에 안긴 따스함 느껴져

그랜드조선 제주의 웰컴 로비에서 만나게 되는 우고 론디노네의 ‘태양(SUN)’.




제주로 향하는 길. 이른 아침 항공편을 이용하거나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비행기를 탄다면 구름 위를 가로지르는 동안 태양을 좀 더 똑바로 쳐다볼 기회가 생긴다. 태양은 흰색이나 노란색, 혹은 빨간색 등 하나의 색으로 규정하기 어렵다. 여러 색을 갖는 빛의 스펙트럼 같은 과학 지식을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인간은 태양의 색을 확인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 앞에서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한다는 사실 앞에 겸허해야 한다. 똑바로 바라보고자 할수록 가늠할 수 없는 그 위대함을 알게 하는 자연. 제주 서귀포시 중문관광로에 자리 잡은 호텔 ‘그랜드조선 제주’에 들어선 순간, 로비의 그림이 그 진리를 또 일깨운다. 이탈리아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스위스인이자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현대미술가 우고 론디노네의 ‘태양(SUN)’이다.

10개의 아치가 환영 인파처럼 방문객을 맞이하는 웰컴 로비다. 겹겹의 아치형 천장이 이루는 환상적인 공간감의 마침표 지점에서 강렬한 주홍빛의 원 하나가 존재감을 발산한다.

그랜드조선 제주의 웰컴로비 안쪽에 걸린 우고 론디노네의 ‘태양(SUN)’


한 걸음 한 걸음 로비의 끝을 향해, 동시에 작품에 가까이 다가설수록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노란빛과 분홍에 가까운 보랏빛을 느끼게 된다. 제주와 뭍을 오갈 때 보았던 태양이 꼭 그런 느낌이었다. 붉은 기운을 내뿜으며 떠오른 해는 수평선을 벗어나자 은은한 노란색으로 바뀌었고 이윽고 나타난 흰빛은 직시하려 애쓸수록 눈부신 보라색 덩어리만 어른거릴 뿐이었다. 호텔에 들어선 방문객은 그림 한 점 덕에 태양을 향해 발을 내딛는 것 같은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론디노네는 독일 낭만주의 운동의 대표 화가인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1774~1840)에게서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프리드리히는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는 풍경화가 종교적 경건함과 상징성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 화가다. 흔히 볼 수 있는 주변 풍경에 마음의 눈으로 찾을 수 있는 심상(心像)을 담았던 프리드리히의 정신을 론디노네가 계승했다.



“나는 마치 일기를 쓰듯 살아 있는 우주를 기록한다. 지금 내가 느끼는 태양, 구름, 비, 나무, 동물, 계절, 하루, 시간, 바람, 흙, 물, 풀잎 소리, 바람 소리, 고요한 모두.”

론디노네는 1991년 스위스의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태양’ 시리즈가 시작된 것은 이듬해인 1992년부터다. 자연의 빛은 칼로 무 자른 듯 분명한 경계선을 만들지 않는다. 그는 퍼지고 스미는 빛의 변화를 점층적으로 색이 겹쳐진 동심원으로 표현했다. 그 모양이 마치 과녁 같아서 론디노네의 작품을 자주 다루는 큐레이터와 갤러리스트들은 편의상 ‘타깃 페인팅’이라고 칭한다. 물론 작가는 절대 그리 부르지 않는다. ‘태양’ 연작으로 분류하지만 정식 제목은 독일어로 작품의 제작 연도와 날짜를 띄어쓰기 없이 적는다. 전면 점화(點畵)를 완성한 김환기가 작품의 제작 연월일을 숫자와 로마자를 섞어 표기한 것과 비슷한 방식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론디노네의 ‘태양’은 붉고 노란 햇빛 말고도 초록이나 남색, 때로는 검은색의 태양도 존재한다. 론디노네는 태양 연작을 위해 무려 370개의 색상 조합을 만들었다고 한다. 작가는 이 외에도 수평선 위에 자리 잡은 태양을 수채화로 그린 ‘선라이즈 선셋(Sunrise Sunset)’ 연작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바다와 하늘·태양을 파랑·노랑·갈색·초록 등의 다채로운 색으로 변주하는 것이 흥미로운 작품이다.



저층 로비에서 한 층 올라가 체크인 데스크가 있는 1층 로비에서도 론디노네의 또 다른 태양을 만날 수 있다. 산책로 쪽에서 걸어서 호텔로 들어서는 경우 가장 먼저 마주치는 그림이기도 하다. 노란색에서 시작해 연두색·파란색·초록색으로 확장되며 원을 이룬다. 다른 곳에서라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곳 그랜드조선 제주에서만큼은 청귤과 풋귤, 제주의 푸른 바다가 연상되는 ‘태양’이다.

그랜드조선 제주의 웰컴로비 끝에 걸린 우고 론디노네의 ‘태양(SUN)’과 위쪽으로 드리운 최정화의 ‘연금술(Alchemy)’


아치 로비가 있던 저층으로 다시 돌아가 론디노네의 태양 앞에서 머리를 들어 천장을 보자. 핫핑크와 형광 주황 등 현란한 색상의 금속 조각이 꼭대기인 6층 천장에 매달린 채 저층 로비까지 호텔을 수직으로 관통하고 있다.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 작가 중 하나인 최정화의 대표작 ‘연금술(Alchemy)’이다. 최 작가는 소비 산업사회를 상징하는 플라스틱과 산업 용품을 ‘재활용’하듯 재료로 이용한다. 미술과 비(非)미술, 작품과 상품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는 “낮은 곳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된, 사라져가는 도시의 시각 환경”을 보여주고자 한다. ‘연금술’은 시장에서 파는 싸구려 플라스틱 용기 모양을 섬유강화플라스틱(FRP)으로 제작한 후 크롬 도금으로 반짝이는 색을 입혀 제작됐다. 비금속을 귀금속으로 바꿔놓는 신기한 연금술이 일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그릇들을 하늘에서 내려온 보석 동아줄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킨 셈이다. 눈썰미가 좋은 방문객이라면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리움미술관에서 같은 시리즈의 작품이 로툰다홀을 가로지르며 설치됐던 것을 기억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랜드조선 제주의 각 층 로비에서 모두 볼 수 있는 최정화의 ‘연금술(Alchemy)’


그랜드조선 제주의 각 층 로비에서 모두 볼 수 있는 최정화의 ‘연금술(Alchemy)’. 중문 바다와 함께 보노라면 자연 속 인간의 존재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작품은 계단으로 연결되는 로비 난간에 서서 중문 바다 쪽으로 뚫린 큰 창문을 마주하고 감상하면 특히 아름답다. 가장 인공적인 재료, 비현실적인 색상의 작품이 바다와 나무를 배경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광경에서 자연 안에 존재하는 인간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 응시할수록 반짝이는 표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더욱 크고 선명해진다.

2층 로비는 체크인 데스크와 고객 전용 라운지 ‘그랑제이(Gran J)’로 갈린다. 그랑제이에는 미국 현대미술의 거장 앨릭스 카츠의 ‘드가에 대한 오마주(Homage to Degas)’가 걸려 있다. 발레리나를 즐겨 그린 에드가 드가(1834~1917)에 대한 헌정의 그림이라는 사실은 무용수의 몸짓인 듯 팔을 들어 올려 머리 뒤로 넘긴 인물의 자세에서 짐작할 수 있다. 카츠는 추상표현주의가 주류였던 1950~1960년대 뉴욕 화단에서 꽃과 사람을 그린 몇 안 되는 화가였다. 홀로 거꾸로 간 셈이다. 앙리 마티스의 화풍을 이어받은 단순한 표현법으로 커다란 인물이 화면을 꽉 채운 것이 마치 옥외광고판 같은 그림들이었다. 흔히 그를 ‘팝아트’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그 틀에 가두기에는 너무나 심오하다. 단순한 구도로, 인물의 배경을 한 가지 색으로 처리하지만 찰나의 순간을 담은 듯한 깊이감을 보이는 게 특징이다. 빛의 방향과 강도가 달라지면 ‘드가에 대한 오마주’ 속 인물을 감싼 라임색 배경이 느낌을 달리하며 여러 이야기를 속삭인다.

그랜드조선 제주 내 라운지 그랑제이(Gran J) 안쪽에는 에는 미국 현대미술의 거장 앨릭스 카츠의 ‘드가에 대한 오마주(Homage to Degas)’가 걸려 있다.


각 층 엘리베이터 홀 벽에 걸린 영국 작가 게리 흄의 작품도 놓치기 아깝다. 흄은 ‘YBA(영국의 젊은 작가들)’의 한 사람이자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 영국관 대표 작가였던 인물이다. 고광택 산업용 페인트로 일상적 물건을 과감하게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새·인물·풍경 등을 흄 특유의 방식으로 단순하게 표현했다. 도심의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자연의 품에 안겨 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그림들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