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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혼은 아니지만 '동성커플' 차별은 안 돼…법적 지위 인정으로 이어질까?[서초동 야단법석]

김용민·소성욱씨 건보공단 상대로 소송 2심 승소

법원 판단에 평가 엇갈려…당분간 파장 이어질 전망

지난 21일 서울고법 행정1-3부(이승한 심준보 김종호 부장판사)는 소성욱 씨가 건보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연합뉴스




동성부부의 배우자에게도 법적으로 가족에게만 적용되면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이번 판결에 대한 반응은 법관의 자의적인 판단이라는 비판과 함께 헌법에 명시된 혼인과 가족의 개념이 확장되는 계기가 될 것이란 평가로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일각에선 동성부부의 사실혼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현행법의 한계에도 동성부부의 법적 권리가 인정됐다는 데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 연합뉴스


가족이라는 개념의 확장?…"다양한 공동체 차별 해소돼야"


지난 21일 서울고법 행정1-3(재판장 이승한)는 소성욱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피부양자 등록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소씨 측 손을 들어줬다. 소씨는 2017년부터 동거해온 동성 배우자 김용민씨의 피부양자로 자격을 인정받았지만 동성부부라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피부양자 등록이 취소됐고, 이에 소씨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소송의 쟁점은 동성 배우자가 사실혼 배우자로 인정되는 지 여부로 좁혀졌다. 그동안 건강보험은 피보험자와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지만 동거, 부양 의무가 있는 이성(異性) 간 사실혼 배우자를 피부양자로 인정해왔다.

앞서 1심 재판부는 "민법과 대법원.헌법재판소의 판례, 우리 사회의 일반적 인식을 모두 보더라도 혼인은 여전히 남녀의 결합을 근본 요소로 한다고 판단된다"며 "이를 동성 간 결합까지 확정해 해석할 근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사실혼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같이 사는 부양 가족으로 건강보험, 국민연금 등을 적용받을 수 있지만 동성 배우자는 사실혼 관계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소씨가 건강보험 가입자인 김씨에게 생계를 의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건강보험은 소득이나 재산 없이 피보험자에 의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피부양자로 인정하고 있는 만큼 사회보장제도의 목적에 맞게 동성 배우자 역시 경제적인 여건 등을 고려해 피부양자 자격 인정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2심 재판부는 "시대 상황에 따라 사회보장 차원에서 보호대상이 되어야 할 생활공동체 개념이 기존의 가족 개념과 달라지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 이전에도 사회 곳곳에서 동성커플의 법적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다양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앞서 국내외에 거주하는 한국 국적 성 소수자 커플 1056명은 헌법에 명시된 혼인과 가족생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해 주거권·노동권·사회보장권·건강권 등 생활 전반에 걸쳐 차별을 겪고 있다며 동성커플에 대한 어떤 공적 인정도 하지 않는 것은 헌법과 국제인권법 위반이라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인권위는 지난해 4월 국회의장에게 성 소수자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주거·의료·재산분할 등 공동체 생활 유지에 필요한 보호기능 등이 포함된 법률을 제정하도록 권고했다. 당시 인권위는 "새롭고 다양한 가족 형태가 출현하고 그 비중이 날로 증가하지만 현행 법제도는 여전히 전통적 가족 개념을 근거로 해 다양한 생활 공동체가 보호받지 못하고 오히려 차별받는다"며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놓기도 했다.

이번 재판부 역시 판결문을 통해 "성적 지향은 선택이 아닌 타고난 본성으로 이를 근거로 성격·감정·능력·행위 등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영역의 평가에 있어 차별받을 이유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며 "기존의 차별들은 국제사회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으며 남아 있는 차별들도 언젠가는 폐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19년 서울 도심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이들이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편견과 차별 없는 사회로 가는 첫걸음 VS 월권 행위


법원의 결정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선진사회로 나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 반면, 다른 한쪽에선 헌법에 위배된 자의적인 결정이라는 비판도 쏟아졌다.

특히, 개신교계는 법원의 결정을 맹비난하고 나섰다. 한국교회연합은 성명을 통해 "동성 커플에게도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법원의 판단은 대한민국의 헌법과 민법을 모두 무시한 자의적이고 편향적인 판결"이라며 "이는 법관의 월권이자 재량권 남용"이라고 비판했다. 한국교회총연합은 "상급심인 대법원 판결에도 어긋나는 편향적 판결은 실정법 국가인 우리나라의 법질서를 어지럽히는 월권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여성단체인 바른인권여성연합은 "헌법으로 규정한 가족 개념을 뒤흔드는 매우 위험한 판단"이라며 "이 사건은 이성애자를 중심으로 수 천년간 이어진 가족제도의 근간을 흔들고자 하는 성혁명에 그 기초를 둔 가족제도 붕괴운동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인권위는 우리 사회가 이번 판결을 통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없어야 함을 다시 확인하게 된 것을 기쁜 마음으로 환영한다"며 "성소수자들이 혐오와 차별 없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동등하게 모든 권리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했다.

대법원. 연합뉴스


공은 대법원으로…“어떤 판결 나와도 소송 줄이을 것”


법원의 동성부부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인정에 법조계는 물론 각계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건보공단 측은 선고 직후 상고 의사를 밝힌 상태지만 대법원 결정과는 별개로 2심 판결을 근거로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사실혼 배우자와 마찬가지로 동성부부의 동등한 법적 지위를 인정해달라는 소송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 역시 선고 직후 미칠 사회적 파장을 의식해 이번 판결의 의미에 대해 동성부부의 '법적 지위'가 아닌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이라고 강조했다. 또 ‘동성부부’ ‘동성배우자’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고, '이들에 대한 법적 지위를 인정했다'는 취지의 표현은 오히려 판결의 내용에 반한다며 정확한 표현은 '동성결합' 및 '동성결합 배우자'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른 사회보장제도 전반에서 동성부부를 포함한 소수자들의 권리가 확대되는 계기가 될지도 주목된다. 이에 대해 소씨를 대리한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류민희 변호사는 "사회보장제도의 목적에 따라 동성커플의 보호성을 인정한 판결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동성커플도 사회보장제도인 유족연금 등 다양한 영역에서 법적 지위를 인정받게 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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