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오랜 앙숙이었던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의 중재로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우크라이나전에 집중하는 가운데 중동에서 중국이 영향력을 과시한 것으로 중국의 외교적 승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10일(현지 시간)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란과 사우디는 이날 외교 관계를 단절한 지 7년 만에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 2016년 사우디가 이란의 반대에도 시아파 유력 성직자를 사형시켜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각각 이슬람 시아파와 수니파의 종주국으로 중동의 주도권을 다투는 이란과 사우디는 단교 이후 예멘과 시리아 내전 등에서 서로 적대 진영을 지원하며 갈등을 빚어왔다.
이날 양국은 공동성명에서 2개월 내 상대국에 대사관을 다시 열기로 합의했다. 또 상호 주권 존중과 내정 불간섭 원칙을 강조하며 2001년 체결된 안보협력협정과 그 밖의 무역·경제·투자에 관한 합의를 활성화하기로 했다.
이날 합의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을 확정한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열린 중국 베이징에서 이뤄졌다.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NSC)의 알리 샴카니 의장은 사우디와의 집중적인 협의를 위해 6일 베이징에 도착한 뒤 무사드 빈 무함마드 알아이반 사우디 국가안보보좌관과 4일에 걸친 회담 끝에 국교 정상화에 최종 합의했다.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은 “대화와 평화의 승리”라며 “앞으로도 세계의 주요 문제를 다루는 데 건설적인 역할을 지속해 주요 국가의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중국의 역할을 평가절하하면서 합의 유지 가능성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조정관은 “우리는 (중동) 지역의 긴장 완화를 위한 모든 노력을 지지한다”면서도 “이란이 사우디와의 협상 테이블에 나온 것은 중국의 초청 때문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또 “미국이 중동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주장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합의 지속 여부도 두고 봐야 한다. 이란은 자기 말을 지키는 정권이 아니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하지만 워싱턴 조야에서는 이번 합의로 미국이 체면을 구겼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이 중동 지역에서 서서히 발을 빼는 것을 아랍 국가들이 인식하는 가운데 중국이 주요한 외교적 승리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미국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의 마크 두보위츠 대표는 “중국은 중동에서 미국의 입김이 약해지는 진공 상태를 선호한다”며 “이번 합의는 미국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매우 큰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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