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충청·경상·호남 등 비(非)수도권 지역에 10년 동안 60조 1000억 원을 투자해 지역 산업 생태계 고도화에 나선다. 지방대학에도 반도체학과를 개설해 반도체 인재를 육성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삼성은 15일 이 같은 내용의 지역균형발전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에 20년간 300조 원 규모의 초대형 투자 계획을 내놓은 데 더해 삼성전자 관계사들도 지역 산업 생태계를 동반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을 공개한 것이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지역 풀뿌리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고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국가균형발전이 가능해진다”며 “지역별로 특화 사업을 지정해 각 지역이 해당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은 이에 따라 제조업 분야 국내 사업장을 권역별로 나눠 집중 투자를 단행하기로 했다. 단순히 시설 투자를 늘리는 수준을 넘어 지방 중소기업과 인재 육성에 대한 지원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충청권은 반도체 패키지 특화·경상권은 스마트폰 제조 중심지로
지역별 특화 투자 산업을 살펴보면 충청권에는 반도체 패키지 특화단지(천안·온양)와 첨단 디스플레이 클러스터(아산), 차세대 배터리 마더팩토리(천안) 등이 조성된다. 이 중 삼성SDI가 천안에 조성하는 마더팩토리는 첨단 생산 기술과 핵심 공정을 선제 개발해 해외 공장으로 확산시키는 ‘글로벌 표준 공장’의 역할을 맡는다. 최근 배터리 산업 특성상 해외에 생산 시설을 더 확대하게 되더라도 컨트롤타워 기능은 천안에 두겠다는 의미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아산 클러스터에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퀀텀닷(QD) 등 고부가 제품의 생산 비중을 높이기로 했다.
경상권에는 차세대 적층세라믹콘덴서(MLCC·부산), 스마트폰 마더팩토리(구미), 첨단 소재 특화 생산 거점(구미), 차세대 배터리 소재 연구소(울산) 등이 만들어진다. MLCC는 반도체에 전력을 일정하게 공급하는 일종의 ‘댐’ 역할을 하는 부품으로 현재 일본 업체들이 세계 시장의 60%를 점유하고 있다. 삼성전기는 향후 MLCC용 소재 내재화를 위한 연구에 집중 투자해 부산을 첨단 MLCC 특화 지역으로 육성하기로 했다. 갤럭시S23, 폴더블폰 등 삼성전자 플래그십 스마트폰이 연간 1300만 대 생산되는 삼성전자 구미 사업장은 ‘글로벌 스마트폰 마더팩토리’로 지정된다. 구미에서 개발한 생산 기술을 전 세계 공장으로 확산시킨다는 계획이다.
삼성은 이와 함께 현재 광주 사업장에서 생산 중인 가전제품을 프리미엄 제품군(群) 중심으로 확대 재편해 스마트 가전 생산 거점으로 키우기로 했다.
지역상생에도 10년간 3.6조 투자
삼성은 지역에 60조 1000억 원을 투자하는 것 외에도 지역 기업을 위한 각종 상생 프로그램에 10년간 3조 6000억 원을 지원한다. 반도체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국내 협력사와의 공동 연구개발(R&D)에 5000억 원을 투입하고 중소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에 대한 반도체 시제품 생산 지원 서비스(MPW) 확대에도 5000억 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중소기업의 온실가스 감축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투자 지원을 위해 1조 원 규모의 ‘ESG펀드’를 조성하는 한편 지방 산업단지 입주 중소기업과 오·폐수 재이용 기술을 공유하고 현재 서울과 대구에서 운영 중인 벤처·스타트업 양성 프로그램 C랩을 광주 등에도 구축할 방침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국내 주요 대학들과 운영 중인 반도체 계약학과를 지방 소재 대학에도 신규 개설해 인재 육성에 힘쓰기로 했다. 지역 청년들을 위해 청년활동가를 지원하는 한편 보호종료청소년자립지원사업 등 사회 공헌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해나갈 예정이다.
재계에서는 삼성의 이번 지역균형발전 정책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철학이 반영됐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해 회장 취임 이후 지방 사업장을 집중 방문해 “건강한 생태계를 조성해 상생의 선순환을 이뤄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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