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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인에 프로포폴 처방한 의사만 문제? '셀프 처방' 의심건수 4년간 10만건

유아인에 프로포폴 처방한 의사 '셀프 투약' 덜미

의료종사자, 프로포폴 등 마약류 접근 쉬워 오남용 취약

매년 8000명 '셀프 처방'…명의 도용·미적발도 많을듯

배우 유아인이 넷플릭스 영화 ‘서울대작전’ 제작보고회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 사진=김규빈 기자




프로포폴 등 마약류 4종을 투약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배우 유아인(37·본명 엄홍식)에게 프로포폴을 처방한 의사 A씨가 본인에게도 프로포폴을 투약한 혐의로 16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A씨는 유 씨의 프로포폴 투약 혐의와 관련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강남구 소재 의원에 방문한 경찰에게 프로포폴을 투약하고 있는 정황이 포착돼 현행범으로 체포된 것으로 전해진다. 법원에서 영장이 기각됐지만 이른바 '마약류 셀프 처방(자기 처방)'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사례다.

◇ 韓, 세계 최초로 프로포폴 마약류 지정…마이클잭슨 사망 사건이 결정타


프로포폴은 1977년 영국 화학회사 ICI가 개발한 진정제(마취제)다. 벤조디아제핀, 바비튜레이트 등 다른 정맥마취제와 마찬가지로 뇌에서 억제성 신호를 전달하는 GABA-A(Gamma Aminobutyric Acid A) 수용체에 주로 작용해 억제성 신경전달을 매개하고,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인 NMDA(N-Methyl-D-Aspartate) 수용체의 확성을 억제한다. 효과 발현이 1~2분, 지속시간이 2~8분 정도로 매우 짧은 데다 다른 마약제와 달리 도취감보다 무의식의 빈도가 높아 남용 약물로서는 한계가 있다고 여겨졌는데, 2009년 마이클잭슨이 프로포폴 남용으로 사망한 이후 프로포폴 남용의 심각성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 흥미로운 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11년 2월 세계 최초로 프로포폴을 마약류로 지정했다는 점이다.

◇ 연예인은 프로포폴 중독에 취약? 접근 쉬운 의료인도 위험


유아인 이전에도 배우 하정우, 가수 휘성 등 적지 않은 연예인이 프로포폴 투약으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중독에 취약한 집단에 대한 관심도 부쩍 높아졌다. 자극 추구적 성향이나 위험 회피적 성향이 강한 사람, 스트레스나 불안감이 높은 사람은 프로포폴 등 마약류 중독에 취약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의외로 의료인은 프로포폴 등의 약물을 획득하기 쉽다는 근무환경 때문에 마약류 중독에 취약한 집단이다. 프로포폴이 상용화된 직후부터 의사, 간호사 등 의료종사자의 남용 사례는 꾸준히 보고되어 왔다. 접근이 용이하다는 점 외에도 업무강도와 스트레스가 높다는 점이 의료종사자가 약물남용에 취약한 요인으로 꼽힌다.

학계에서는 1992년 프로포폴 자가 투여로 인해 의식불명인 채로 발견된 마취과 의사가 프로포폴 중독 첫 사례로 보고됐다. 국내에서도 2000년대 들어 피부과 여의사가 자택에서 피로회복용으로 프로포폴을 자가 투약하다 사망한 사건, 성형외과 의사가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프로포폴에 중독되어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건, 외과의원에서 일하던 간호사가 프로포폴 등 마취제를 60여 차례 투약한 혐의로 입건된 사건 등이 언론에 보도되며 논란이 일었다. 적발되지 않았거나 언론 등을 통해 드러나지 않은 사례까지 고려한다면 프로포폴 등 마약류에 중독된 의료인들의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홍상현 서울성모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대사의사협회지에 실린 논문에서 "의료종사자가 프로포폴 남용에 취약한 이유는 일반인들과 다르다"며 "작용시간이 짧고 도취감보다 무의식의 빈도가 높다는 프로포폴의 약리적 특성이 오히려 남용에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남용자 입장에서는 동료의 눈에 쉽게 띄지 않고, 약물을 이용해 도취감을 느끼려는 것이 아니라 잠깐 자고 일어날 뿐이라는 안도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 의사 마약류 ‘셀프 처방’ 4년간 10만 건 넘어


의료종사자 중에서도 의사들의 의료용 마약류 '셀프 처방'은 오남용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의사의 마약류 셀프 처방 의심 사례는 2018년 5월부터 2022년 6월까지 4년 1개월간 10만 5601건, 처방량은 355만9513정에 달했다. 마약류 셀프 처방이 추정되는 의사 수는 △2018년(5~12월) 5681명 △2019년 8185명 △2020년 7879명 △2021년 7736명 △2022년(1~6월) 5698명으로 집계됐다. 어림잡아 매년 8000명의 의사가 마약류를 셀프처방했다는 의미다. 같은 기간 마약류 처방 이력이 있는 의사의 5.6~8.1%에 해당한다.

식약처가 점검했던 사례 중에는 한 의료기관의 의사가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 치료 등 심리적 안정을 위한 목적으로 2018년 12월부터 2020년 3월까지 자나팜정(성분명 알프라졸람), 스틸녹스정(성분명 졸피뎀), 트리아졸람 등 향정신성의약품을 총 5357정 투약한 경우도 있었다. 이를 날짜로 환산할 경우 461일간 매일 11.6정씩 하루도 빠짐없이 투약했다는 얘기가 된다.

◇ 명의 도용 등 미적발 사례까지 고려하면 ‘오남용’ 더 심각할수도


최 의원은 타인 명의를 도용해 대리처방한 뒤 본인(의사)이 투약한 마약류 오남용 사례도 공개했다. 가령 의사 B씨는 2018년 12월부터 2020년 5월까지 할머니 명의로 진료기록을 허위로 작성하고 총 125회에 걸쳐 향정신성의약품인 스틸녹스정을 2308정을 처방한 다음 본인이 투약했다. 또 비슷한 기간 다른 의사의 아이디로 전자 진료기록부에 접속해 진료기록을 허위 작성하고 본인 앞으로 스틸녹스정을 59회에 걸쳐 1388정 처방하고 투약했다. 이러한 사실이 적발되고도 B씨는 1개월 15일의 자격정지 처분을 받는 데 그쳤다. 최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이후 마약류 투약과 처방 등으로 행정처분을 받은 의사 61명 중 7명은 셀프처방이었고, 나머지는 B씨와 같이 타인 명의 대리처방 또는 매수를 통해 본인이 투약한 것으로 확인됐다. 환자 명의 도용 뿐 아니라 다른 의사의 명의를 도용해 총 184회 3696정의 마약류를 처방받아 투약한 경우도 있었다.

◇ “의사, 마약류 셀프처방 못하게" 입법 시도 있었지만


올 초 국회에서는 의사의 마약류 셀프처방을 금지하는 방안도 추진된 바 있다. 최 의원은 지난 1월 마약류취급의료업자가 자신이나 가족에게 마약 또는 향정신성의약품을 투약 또는 제공할 수 없으며, 자신이나 가족에게는 마약 또는 향정신성의약품을 기재한 처방전도 발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사들이 마약류 셀프처방과 오남용이 심각하지만 정작 당국의 모니터링이 소홀해 관리감독 강화가 필요하다는 이유다. 실제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의사들이 자신이나 가족, 또는 그들과 가까운 다른 사람들에게 마약류를 포함해 대마초와 같이 중독되거나 습관화될 가능성이 있는 약물을 처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의사, 약사단체 모두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통과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식약처는 개정안의 취지에는 동의하나 의사가 본인과 가족에게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처방전을 발급하거나 투약하는 등의 행위 자체를 마약류 오남용으로 단정하기 어려워 입법을 통한 의무 부과 방식이 아닌 다른 정책수단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도 "모든 의료용 마약류가 오남용 우려가 있는 위험약물은 아니다. 개정안이 의사 본인과 의사 가족의 치료받을 권리를 부당하게 박탈하고 의사의 진료권 및 처방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을 통해 오남용 의심사례를 충분히 걸러낼 수 있다는 게 의협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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