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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프고 친구들 그리울땐 '마루'로 모여라"

'2000원 어린이 식당' 마루 정봉임 대표

음료수·아이스크림 등 무료

어른 손님 안받는 핫플 부상

정부지원 없이 민간 후원 운영

'이웃과 함께 하는 삶'에 뿌듯

정봉임 어린이 식당 ‘마루’ 대표가 초등생들의 쪽지로 가득 찬 메모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식당이 맞나 싶을 정도로 깔끔한 공간.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면에 커피 머신과 아이스크림 기계가 보인다. 부엌이 없었다면 혹시 카페에 들어온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할 정도다. 한쪽 벽을 보니 초등생들이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메모들이 가득하다. ‘그냥 아이스크림 먹거나 쉬러 왔습니다. 마루를 만들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올게요’ ‘마루야 안녕, 항상 심심할 때 머무를 수 있는 쉼터가 돼 줘 고마워’ 등등.

경기도 부천시 심곡동에 자리 잡은 어린이 식당 ‘마루’는 문을 연 지 2년밖에 안 됐지만 인근 초등생들에게 벌써 ‘핫플’이 됐다. 돈이 없어도 아무 때나 와서 놀 수 있고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점심 식사는 유료지만 2000원만 내면 된다. 그나마 힘들면 안 내도 그만. 그저 와서 즐겁게 놀다 가면 그뿐이다. “어른들이 카페를 찾는 것처럼 어린이들도 친구들과 자유롭게 오가며 편하게 놀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쉼의 공간은 필요하니까요.” 정봉임 대표가 밝힌 마루의 존재 이유다.

‘마루’의 자원봉사자들이 주방에서 점심 식사 메뉴를 준비하고 있다.


마루는 부천에 자리 잡은 몇몇 어린이 식당과 마찬가지로 정부 지원 없이 민간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 운영된다. 차이가 있다면 ‘청개구리 식당’ ‘두루두루’ 같은 곳은 점심 식사가 공짜지만 마루는 돈을 내야 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돈을 받는 데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공짜로 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곧 접었다. 초등생에게 ‘나도 어엿한 손님’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고 싶었다고 한다. 정 대표는 “돈을 안 받으면 주변으로부터 가난한 아이라는 낙인이 찍힐 수도 있고 무료 급식소 같다는 의견도 나와 결국 유료로 하기로 했다”며 “대신 어린이들은 돈을 내고 먹기 때문에 자신감 있게 손님으로 올 수 있고 우리도 음식값을 받은 이상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값이 싸다고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 월요일은 치킨과 떡볶이·어묵국, 목요일은 수제 돈가스와 우동, 나머지 요일은 그때그때 다른 메뉴 등으로 구성된 수준급 식사가 나간다. 메모판에 ‘너무 맛있어요’라는 글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이유다.



경기도 부천 어린이 식당 ‘마루’. 식당 앞에는 ‘시민들이 만든 식당’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한때는 어른도 이용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포장도 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곳을 찾는 어린이들에게 집중하기 위함이다. “예전에는 어른들에게도 6000원에 점심을 팔았지만 그러다 보니 아이들에게 줄 음식이 모자라더군요. 포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이 5~6인분씩 사가니 정작 식당에 오는 아이들에게 줄 게 없었어요. 아이들이 그냥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생각에 모두 없앴죠.”

정부 지원 없이 민간 후원으로만 운영되는 단체가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재정이다. 마루도 마찬가지다. 밥값으로 받는 2000원은 상징적인 금액일 뿐 원가도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그래도 버틸 수 있는 것은 뜻밖의 선물이 있었던 덕이다. 정 대표는 “어느 날 한 후원자가 월세에 보태 쓰라고 600만 원을 주고, 근처 병원에 있던 수녀가 80만 원을 선뜻 내놓은 적도 있다”며 “이러한 기적이 재정 부담에 압도되지 않고 식당을 운영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고마워했다.

어려움이 없을 수는 없다. 얼마 전에는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밀려오는 어린이 손님을 감당하기 힘들어 쓰지 않던 공간을 식사 장소로 개조했는데 시로부터 불법 증축이라는 통보를 받아 이달 말까지 원상 복구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월세도 120만 원에서 올해 130만 원으로 올랐다. 그는 “가뜩이나 매달 300만 원 가까이 적자를 보는 상황이었는데 여기에 철거 비용과 월세 인상까지 겹치다 보니 부담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정봉임 대표


그럼에도 민간 자원봉사자로만 20년 넘게 활동한 정 대표에게 어린이·이웃과 함께 사는 일을 한다는 것은 누구도 느낄 수 없는 뿌듯함을 주는 모양이다. 그는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는 말을 어떻게 하면 실천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한다”며 “이 식당에서 아이들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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