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데이터를 수집하는 기술은 충분히 발전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솔루션이다. 단순히 수치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 반복되는 생활 패턴 안에서 변화의 흐름을 예측하고 조율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기술이 헬스케어의 새로운 방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UNIST와 헬스케어 기술 기업 필라이즈(Pillyze)가 공동 개발한 AI 기반 예측 기술은 이러한 변화 흐름 속에서 등장했다. 사용자의 식사, 수면, 운동 등 일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혈당반응을 예측하는 이 모델은 측정된 수치를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생활 조건의 흐름 속에서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를 수치화해 제시하는 구조다. 반복되는 조건들을 시계열로 분석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데이터가 입력되면 AI가 향후 변화 가능성을 사용자에게 사전 안내한다.
중요한 것은 이 기술이 어떤 특정 장비나 센서의 대체를 지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사용자가 이미 갖고 있는 일상 데이터를 통해 스스로의 리듬을 조율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다. 예를 들어 식사 시간이나 수면 주기, 운동량이 평소와 다르게 흐를 경우 다음 날 혈당이 평소보다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는 정량적 예측 결과를 제공한다. 이 예측은 사용자에게 즉각적인 개입을 요구하지 않지만 생활 리듬을 다시 점검하고 조절할 수 있는 실용적인 가이드를 제공한다.
기술의 핵심은 '예측 정확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생활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예측이 얼마나 직관적인 피드백으로 전환되는지가 관건이다. 필라이즈는 해당 모델을 자사 플랫폼 ‘슈가케어’에 적용하고 있으며, 일정 수준 이상의 데이터가 축적된 사용자에게 예측 기능이 제공된다. 이 기능은 별도의 기기 없이도 일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사용자는 자신의 생활 습관이 특정 생체 반응과 어떤 상관관계를 맺는지 구체적으로 인지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건강관리를 전문가에게 위임하거나 수치에만 의존하던 기존 구조와는 전혀 다르다. 사용자 스스로 데이터를 해석하고, 조율 가능한 단위를 발견해나가는 기술이 핵심이다. 필라이즈는 이 구조를 ‘가상 CGM(Virtual CGM)’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기술은 센서를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학습하고 해석하는 구조를 통해 생활 기반 예측이라는 새로운 범주의 인터페이스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AI 기술은 지금 건강을 대신 판단해주는 시스템이 아니라 사용자가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데이터를 정렬해주는 보조 기술로 진화하고 있다. 측정의 역할이 '기록'에서 끝났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수치를 읽는 기술보다 흐름을 구조화하고, 행동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 중심이 되고 있다. 사용자가 생활 데이터를 기반으로 예측 피드백을 받고, 이를 바탕으로 조절 가능성을 확보하는 구조는 헬스케어 기술의 작동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필라이즈는 누적 100만 명 이상 사용자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모델을 고도화하고 있으며, 해당 기술은 최근 UNIST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세계적 학술지(Scientific Reports)에 게재되며 학문적 타당성도 확보한 상태다. 기술의 구조는 단순하고 사용자 흐름에 맞춰 설계됐다. 별도의 기기 없이도 일정량의 데이터 축적만으로 기능이 작동하는 방식으로 구현됐다.
필라이즈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헬스케어 기술이 ‘얼마나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가’에 집중했다면 앞으로의 기술은 ‘그 데이터를 어떻게 구조화하고, 누구에게 전달하느냐’로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면서 “그 데이터를 사용자가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기술이 어떻게 맥락 속에서 해석을 제공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행동을 조정할 수 있게 만드는 기술이 헬스케어에서 더욱 주목 받을 수 밖에 없는 배경”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