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중소기업이 힘들다고 해도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이 악질적으로 직원 월급을 안 주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경기도에서 석재 기업을 운영하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당정이 3일 발표한 상습체불근절대책을 놓고 이렇게 평가했다. 통상 사업주에 대한 제재 강화는 경영계의 우려를 키워왔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반응이다. 임금 체불 문제는 사업주 입장에서도 근로자를 위해 근절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미 형성됐다는 방증인 셈이다.
이날 대책의 핵심은 상습체불 사업주에 대한 제재 강화다. 최근 1년 내 근로자 1인당 3개월분 이상 임금을 체불하거나 5회 이상 체불 총액이 3000만 원 이상이면 상습체불 사업주로 규정할 방침이다. 이 사업주는 정부 지원금 혜택이 제한되고 공공 입찰 시 감점 등 불이익을 받으며 신용 제재도 받을 수 있다. 현행 제재는 3년간 2회 이상 유죄 확정과 1년간 체불 총액이 3000만 원을 넘은 사업장의 명단을 공개하고 정부 지원 사업 참여를 제한하는 수준이다.
당정은 공공 입찰을 통해 실적을 내는 중소기업이 적지 않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강도 높은 제재를 결정했다. 이에 대해 엘리베이터 분야 B 중소기업 대표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조달 시장에 악성적인 임금 체불 업체의 참여를 막는 것은 당연하다”며 “상습체불 업체가 공공조달 사업을 한다는 게 알려지면 다른 중소기업도 피해를 입는다”고 평가했다. 3월 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경제5단체 부회장들의 면담에서도 임금 체불을 근절하려는 정부 대책에 별다른 이견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대책의 한 축인 근로 감독과 수사 강화가 어떻게 이뤄질지도 대책 성패의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임금 체불에 대한 처벌 수위는 매우 낮은 편이다. 그동안 처벌 사례를 보면 체불액 대비 벌금액이 30%를 넘지 않는 경우가 전체 사건의 78%에 달했다. 고용부는 하반기 임금 체불 근절 기획 감독을 하고 반복 체불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업장에 대해 재감독을 원칙으로 정했다. 악의적 체불 사업주는 구속 수사까지 나설 방침이다.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근로 감독 인력이 크게 부족한 상황에서 목표대로 촘촘한 감독과 수사가 이뤄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
역대 정부가 임금 체불 문제를 피해 구제 우선 차원으로 접근해왔다는 점에서도 이번 대책은 주목된다. 정부는 임금 체불 피해를 겪은 근로자를 위해 정부가 대신 변제하고 변제금을 돌려받는 방식의 대지급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강제적 추심을 할 수 없고 변제를 하지 않더라도 제재 수단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악덕 사업주가 이 제도를 악용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고용부는 사업주별로 대지급금 한도를 설정할 수 있는지 등 제도 개선에 나설 방침이다.
이번 대책이 시행되려면 국회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고용부 안팎에서는 당정안이 어렵지 않게 입법화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이 나온다. 이미 여야가 임금 체불 방지를 위한 대책이 담긴 여러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기 때문이다. 상당수 개정안에는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등 당정안보다 제재 수위가 높은 대책도 담겼다.
근로시간제 개편안 탓에 흔들리던 노동 개혁도 다시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의힘은 당 차원의 노동개혁특위를 출범하는 등 노동 개혁에 대한 본격적인 힘 싣기에 나섰다. 국정과제를 속도감 있게 추진해 최근 동반 정체 상태인 정부와 여당의 지지율을 반등시킬 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당정은 공정채용법 추진을 비롯해 올 8월까지 근로시간제 개편, 포괄임금제 등 주요 노동 개혁 과제에도 머리를 맞댈 예정이다. 이 장관은 “임금 체불은 근로자와 가족의 생계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라며 “일한 만큼 정당하게 보상받는 것은 약자 보호와 노동 개혁의 초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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