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구글의 저명한 연구자였던 니키 파머, 아시시 바스와니가 구글에서 나와 생성형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을 만든다는 의사를 밝히자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VC)이 투자를 위해 몰려들었다. 두 창업자는 2017년 생성형AI의 토대를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 ‘트랜스포머 모델’ 연구에 깊이 관여했다. 이들이 스타트업 ‘에센셜AI’를 세우고 펀딩에 나선 지 채 몇 주가 되지 않아 기업가치는 5000만 달러(약 660억 원)로 치솟았다. 제품과 비즈니스 모델이 구체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규모다.
8일(현지 시간) 금융 정보 업체 피치북이 집계한 데이터에 따르면 기업용AI를 활용한 기술 시장 규모는 2026년 980억 달러(약 130조 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430억 달러 선으로 추산되는 올해와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 규모다. 경기 침체의 여파로 전반적인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가 말라붙어 올 1분기 미국 벤처 투자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55%나 감소한 370억 달러에 그쳤다. 하지만 AI 분야는 유일하게 매출과 고객 확보 없이도 ‘묻지 마 투자’가 이뤄지다 보니 AI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는 연구자들도 앞다퉈 창업에 뛰어들고 있다. 캐나다 토론토 기반의 래디컬벤처스 조던 제이컵스 대표는 “인지도와 명성이 있는 연구자의 경우 말도 안 되는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창업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현 상태를 진단했다.
전직 애플 엔지니어링 임원인 임란 초드리와 베사니 본조르노가 창업한 AI 기반 클라우드 플랫폼 휴메인의 경우 올 3월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빅테크 거물들로부터 1억 달러의 투자금을 추가 유치했다. 음성 기반 AI 스타트업 일레븐랩스 역시 최근 실리콘밸리 대표 VC인 앤드리슨호로위츠(a16z)로부터 기업가치를 1억 달러로 평가받고 거액의 투자를 유치했다.
심지어 시드 투자 유치 직후 투자자들의 빗발치는 요청으로 시리즈A를 연달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묻지 마 투자 열기가 고조되자 일각에서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미국 뉴욕의 VC인 퍼스트마크의 맷 터크는 “마치 골드러시 같다. 앞서 봤던 과열된 사이클에서 상당수가 좋게 끝나지 않았다”며 “이 시장은 갑자기 설익은 아이디어로 등장한 수백만 개의 회사들을 지탱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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