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경기 불황으로 ‘짝퉁’ H형강이 대거 시장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건축 현장에 사용될 수 없는 비(非)KS H형강 수입이 불황을 틈 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주차장 구조물 붕괴 사고도 부적합 판정을 받은 콘크리트를 사용한 것이 원인으로 알려지면서 저가·부적합 건자재가 현장에 확산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11일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비KS H형강 수입량은 24만 1684톤으로 22.4% 증가(전년 동기 대비)했다. 반면 KS인증을 받은 H형강 제품 수입량은 20만 톤으로 1년 사이 8% 감소했다.
H형강은 대형 구조물 골조나 토목공사에 쓰이는 대표 강재다. 건설기술진흥법상 총공사비 2억 원 이상 전문 공사 등에서는 KS인증 제품이나 이와 동등한 제품을 사용하도록 법제화돼 있다. 비KS 제품은 일반적으로 항복강도와 인장강도가 낮아 구조물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시공 시 오차 발생 위험도 크다.
비KS H형강은 편법으로 수입되고 있다. 제품에 ‘마구리판’으로 불리는 철판을 용접해 ‘기타 철구조물’로 들여오는 방식이다. 국내에 수입되면 마구리판을 떼어내고 H형강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대거 들어온 비KS 형강 제품이 현재 어디에서 쓰이는지는 업계에서도 전혀 추적되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 경기 불황에도 비KS H형강 수입량이 22%나 늘었는데 이는 단순한 부자재용이 아니라 실제 건축 구조물에 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정부나 철강협회 차원에서 적극적인 조사와 관리 감독을 실시해 불량 강재를 시장에서 선제적으로 퇴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건설 시장 침체가 이어지면서 ‘짝퉁’ 건설용 강재가 대거 유입되고 이에 따라 철강 업계도 ‘이중고’를 겪고 있다. 건설용 저가 수입산 제품 확산으로 내수 가격이 하락하고 판매량도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정자교 붕괴나 GS건설이 짓고 있는 인천 검단 아파트 현장 주차장 붕괴도 부실 자재가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건설 시장 침체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안전이 희생되고 있는 형국이다.
10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건설 수주 예상 규모는 207조 원으로 전년 대비 7.5%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금리 상승과 자금 시장 불안 등으로 건설투자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건설 시장은 국내 철강 업계의 대표적인 전방 산업이다. 건설 시장이 침체하면 철강 업계는 직격탄을 맞는다. 5월은 전통적인 건설 성수기로 전국 각지에서 공사가 본격 속도가 나는 시기다.
하지만 철근 가격은 하락세다. 업계에 따르면 이달 톤당 철근(SD400) 유통 가격은 99만 원으로 지난달보다 1만 원가량 하락했다. 가격이 하락한 것은 지난달 철근 판매량이 10년 사이 최저치인 84만 톤을 기록한 탓이다. 국산 H형강 제품 가격도 최근 하락세다. 건설 성수기지만 국내 철강사들이 생산한 형강 가격은 2개월 만에 하락세로 접어들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보다 현재 판매량이 더 적은 분위기라 가격도 상승세를 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입산 불량 자재가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급속도로 퍼지며 국내 철강사의 정식 제품은 창고에 쌓이고 있다. 형강 제품은 연간 250만~280만 톤이 건설용 강재로 쓰인다. 수입은 지난해 기준 45만 톤 수준이다. 여기서 국내 건축구조물이나 토목공사에 쓰이면 안 되는 비KS H형강은 연 25만 톤 수입되고 있는데 현재 어디에서 쓰이고 있는지 추적이 되지 않고 있다.
2016년 국가기술표준원은 건축물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2016년 H형강을 비롯한 건설용 강재 24종에 대해 항복·인장강도를 상향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추진했다. 2018년부터 새로운 KS제품 사용이 의무화되면서 국내 토목-건축 공사에서도 신KS로 개정된 제품만 사용이 가능하고 과거 쓰이던 SS400 등 비KS 제품은 사용할 수 없다. 이 제품은 항복·인장강도 모두 기준 미달이고 과거 기준을 따랐기 때문에 현재 구조 설계에서 오차가 날 수밖에 없다.
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에도 6만 톤 규모의 비KS H형강이 수입된 것으로 파악된다. 전년 대비 52%나 증가했다. 부적합 건설용 강재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 제품들이 모두 실제 건설·토목 현장에서 구조물로 쓰이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유입량이 워낙 많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사실상 실제 건축용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철강협회 관계자는 “부적합 철강재가 무분별하게 수입돼 암암리에 건설 현장에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현재 국토부와 철강 업계가 불법·편법 사용을 막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라 사실상 건설 업계와 수입 업계의 자정 노력이 없으면 현실적으로 막기가 어렵다”고 호소했다.
국토교통부도 칼을 빼들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품질검사 대행기관 뿐만 아니라 건설사업자 등도 품질검사 결과를 건설공사 안전관리 종합정보망(CSI)에 입력을 의무화 해 품질관리의 신뢰성을 제고하고자 건설기술 진흥법 개정작업이 현재 진행하고 있다”며 “향후 관계기관 합동점검을 실시하여 품질관리를 부실하게 하는 건설현장 등에 대하여는 엄중 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