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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노동 개혁의 ‘어긋난 세팅’

양종곤 사회부 차장





“‘삼성 저격수’ 김상조 교수를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임명했는데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까지 ‘재벌 개혁론자’로 앉히는 것은 당초 예상했던 정부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당시 관가를 취재하며 들은 말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 중기부 장관 후보자는 박성진 포항공대 교수였다. 김대중 정부 때처럼 ‘제2의 벤처 붐’을 일으키고자 벤처 생태계에 해박한 전문가를 내각에 들이려 한 것이었다. 하지만 박 교수가 낙마하면서 중기부 초대 장관은 재벌 개혁론자로 평가받던 홍종학 전 국회의원이 임명됐다. 당시 언론은 홍 장관 취임 이후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 공정위원장까지 모아 ‘재벌 저격 삼각 편대’라고 불렀다. 제2의 벤처 붐을 꿈꿨던 문재인 정부는 성과는 내지 못한 채 재벌 개혁 이미지만 굳혔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해온 노동 개혁을 보면 문재인 정부의 이 ‘어긋난 세팅’이 떠오른다. 노동 개혁의 출발점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의 임명이었다. 노동계 출신인 그는 역대 정부의 노동 개혁 논의에 참여해 실패의 원인을 잘 알고 있었다. 기대한 대로 이 장관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혁의 우선 과제로 꺼냈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 개혁을 속도전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박근혜 정부 때의 ‘노사정 합의→전문가·정부안 도출’이라는 순서를 뒤집었다. 즉 전문가·정책안을 먼저 마련하고 정부안이 나올 때마다 국민과 국회, 노사정 논의 테이블로 올리는 새로운 방식을 선택했다. 이는 과거 정부 때처럼 노사정 합의가 필요충분조건이 된다면 실제 정부안이 도출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역대 정권이 노동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도 실패의 쓴 잔을 마신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 정권이 내세운 논의 구도는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정부가 마련한 개혁안을 논의할 테이블 자체가 마땅히 없는 탓이다.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존재감이 없다. 제1노총인 한국노총은 경사노위 탈퇴마저 고민하고 있다. 국회는 개혁안 통과가 어려운 여소야대 지형이다. 결국 당정은 노동 개혁안 1호인 근로시간제 개편안이 여론에 막히자 공정채용법으로 개혁 간판을 바꿨다. 노동 개혁의 두 축은 임금과 근로시간인데 임금 쪽은 출발도 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앞으로 2호, 3호로 이어질 개혁안의 결과가 뻔하다.

정부가 노동 개혁안을 놓고 노동계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은 넉넉하지 않아 보인다. 노동조합 간부의 분신과 경찰의 노조 농성 유혈 진압 사태까지 일어났다. 이 같은 상황이 현 정부가 선택한 노동 개혁의 논의 구도일 리 없다. 최근 당정 회의에서 경사노위 역할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노동 개혁 논의에서 경사노위가 제 역할을 못 한다면 추진 절차를 다시 그려야 한다. 어긋난 세팅을 그대로 둔 채 성과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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