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의료원. 송화영 영상의학과 과장(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이날 오전 건강검진을 받은 내원객의 흉부 엑스레이 영상을 판독하고 있다. 제일 왼쪽 모니터를 통해 전자의무기록(EMR)을 확인한 송 과장의 나머지 2대의 모니터로 향한다.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왼쪽 모니터 속 엑스레이 영상에는 오른쪽 쇄골 바로 아래 늑골(갈비뼈) 부위에 빨간색 병변이 선명하게 표시돼 있다. 가만히 들여다 보니 23%라는 수치도 함께 표기돼 있었다. 성남의료원이 올해 초 도입한 루닛(328130)의 흉부 엑스레이 인공지능(AI) 영상분석 솔루션 '루닛 인사이트 CXR'을 진료 현장에서 활용하는 모습이다.
◇ 흉부 엑스레이 영상 속 10가지 비정상 소견…최대 99% 정확도로 겁출
루닛 인사이트 CXR은 흉부 엑스레이 영상을 인공지능(AI)으로 실시간 분석해 의료진의 판독을 돕는다. 폐 결절은 물론 폐가 쭈그러 들어있는 무기폐, 폐 조직에 칼슘이 비정상적으로 침착되어 있는 석회화, 심장비대, 폐경화, 섬유화, 종격동 비대, 흉수, 기흉 등 흉부 엑스레이 영상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10가지 비정상 소견을 97~99%의 정확도로 잡아낸다.
결핵 선별검사에도 사용할 수 있다. 병변이 존재할 가능성을 AI가 판단해 확률 값으로 제시하고 판독자가 설정한 역치(threshold) 값에 따라 표시 색깔도 바꾼다. 해당 환자에 대해 AI 솔루션이 제시한 정보는 ‘오른쪽 늑골 3번과 4번 인근 폐 부위에 23%의 확률로 의심 병변 1개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송 과장은 “오른쪽 늑골과 겹치는 부분이라 엑스레이 영상만으로 병변 여부를 특정하기 어려운 케이스”라며 “판독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한 CT(컴퓨터단층촬영) 검사 결과와 대조해 보니 실제로 폐 병변이 있었다. 다행히 악성은 아니라 추적 관찰이 필요한 경우”라고 말했다.
AI를 활용한 영상 판독은 말 그대로 진단을 보조하는 수단이다. 공상과학(SF) 영화에서처럼 가까운 미래에 AI가 의사를 대체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에 힘이 실렸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부터 12년 전 IBM의 슈퍼컴퓨터 '왓슨'은 미국의 TV 퀴즈쇼 '제퍼디'에서 인간 챔피언을 물리치고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시작하며 폐암 환자 진료에 도전장을 냈다. 이후 MD앤더슨 암센터 트레이닝을 거친 '왓슨 포 온콜로지'가 등장했고, 국내에서도 가천대길병원을 비롯해 유수 의료기관에 도입되며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왓슨은 치명적 한계를 드러내며 5년을 채우지 못한 채 진료 현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전문가들은 의료 AI 활용이 가장 활발한 영상의학과에서조차 숙련된 전문의를 대체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흉부 엑스레이 검사에서 발견된 소견만으로 폐에서 발생 가능한 수많은 질환을 진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검자의 과거 병력, 동반질환, 기타 검사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에 기술이 발달할수록 현장 경험이 풍부한 전문의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송 과장은 “병변 의심 확률이 10~20% 수준일 땐 영상의학과 전문의조차 판단하기 까다로운 경우가 많다"며 “육안으로 걸러내기 어려운 병변을 정량화해서 표현해주는 AI 솔루션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선상에 있는 질환을 감별할 때 정확도를 높여주는 효과가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 AI 솔루션 도움 받아…숨어있는 ‘의심 병변’ 판독에 집중
개원한지 3년 남짓 된 성남의료원은 흉부 엑스레이 검사 자체가 처음인 고령 환자가 제법 된다. 공공병원의 특성상 건강검진 수요도 많다. 1·2차 의료기관에서 폐암 등의 진단을 받고, 전원 의뢰되어 오는 환자들이 대부분인 민간 대학병원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송 과장은 “이전 영상과 비교하기 힘든 상황에서 단 한장의 흉부 엑스레이 영상만으로 정확한 판독 소견을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스러울 때도 많은 게 사실이었다”며 “AI 솔루션을 도입한 이후부터 정상인 소견에 더 확신을 갖고 의심 병변을 판독하는 데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소개했다. 최근에는 성남의료원에서 생애 처음으로 흉부 엑스레이 검사를 받은 70대 여성 환자에게서 초기(1기) 폐암을 잡아낸 사례도 있었다. 송 과장은 “16% 확률로 병변이 의심된다'는 AI 소견을 참고해 CT(컴퓨터 단층촬영) 검사를 추가 의뢰했는데 폐암이 발견됐다”며 “환자가 수술을 받고 무사히 퇴원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니 AI 솔루션의 유용성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AI 솔루션 유용한데 아직 수가 인정은 안돼…"공공의료 인프라 보완 효과 클 것"
AI를 통한 영상 판독은 이처럼 현장에서 유용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별도 수가가 잡히질 않는다. 민간병원은 물론이고 예산이 빠듯한 공공병원들은 더욱 도입하기 힘든 구조다. 데모 버전을 쓰며 도입을 고민하던 성남의료원은 보건복지부가 AI 등 첨단 의료기기를 도입해 공공의료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작년 말 진행한 지역거점공공병원 기능보강사업의 수혜를 입었다. 성남시의료원을 비롯해 전국 10개 지방의료원이 루닛 인사이트 CXR과 함께 유방암 진단을 보조하는 ‘루닛 인사이트 MMG’ 도입을 진행 중이다.
의료 AI 등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취약성이 드러난 공공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지역간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루닛은 AI 의료기술과 클라우드 플랫폼을 융합한 AI 스크리닝센터를 전국 보건소에 마련하는 모델도 선제적으로 제시했다. 각 보건소가 기본적으로 보유한 엑스레이 기기에서 촬영한 흉부 영상을 AI 기술이 실시간 분석해 의료진이 주요 폐질환의 이상 유무를 판단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방식이다. 검진 결과 이상이 있는 경우 건강관리 프로그램 또는 지역사회 내 상급종합병원과 연계해 치료할 수 있다. 호주 정부는 올 초부터 국영 유방암 검진 프로그램에도 ‘루닛 인사이트 MMG’를 도입했다. 송 과장은 “병원 입장에서는 새로운 시스템을 들여올 때 비용 효과를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유용성과 별개로 도입이 쉽지 않다”며 “AI 영상 분석 등 혁신 기술이 공공병원에 도입되면 저소득층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 궁극적으로 공공의료 본연의 취지에도 부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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