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알뜰주유소 분리 입찰을 추진하는 것은 알뜰주유소 공급가격을 내리고 도서·산간 등 벽지의 수급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입찰 물량이 분산되는 만큼 한국석유공사와 농협경제지주의 협상력이 떨어져 정유사의 알뜰주유소 공급가격이 올라갈 것이라는 우려도 내놓는다.
8일 관련 부처와 업계에 따르면 현재 석유공사와 농협경제지주는 석유제품을 공동으로 구매한 뒤 이를 자영 알뜰주유소, NH알뜰주유소, EX알뜰주유소를 통해 판매한다. 최저가 낙찰제로 정유사와 수입사 중 중부권과 남부권에 공급할 회사를 한 곳씩 선정한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국내 정유 4사의 공장 위치와 유통비용 등을 고려했을 때 최저가 낙찰제에서 실질적인 경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본다. 이번 입찰제 개편으로 석유공사와 농협경제지주가 중부권과 남부권에서 각각 공급사를 선정하면 정유사에 더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지고 경쟁이 활성화될 수 있다.
특히 농협의 경우 NH알뜰주유소를 통해 도서·산간 등 벽지에 공급하는 물량이 많다. 도시 지역의 자영 알뜰주유소에 주로 물량을 공급하는 석유공사와는 유통 구조가 다르다. 이에 따라 정유사들은 더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입찰에 응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농협이 난방에서 등유 의존도가 높은 농촌 지역에 공급할 물량을 더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반면 이번 개편으로 일각에서는 알뜰주유소의 석유제품 가격이 올라갈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현재 알뜰주유소 물량이 큰 만큼 정유사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최저가 입찰제에 응하고 있지만 물량이 나뉘면 정유사의 협상력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석유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입찰 주체가 쪼개지면 아무래도 물량이 적어지는 만큼 협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유의미하게 낮은 가격으로 낙찰돼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시장 왜곡으로 알뜰주유소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개선하지 않으면 소비자 후생이 감소할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설윤 경북대 경영학부 교수는 “알뜰주유소가 다른 민간 주유소 사업자에 비해 우월한 지위를 부여받고 있어 시장의 왜곡이 발생한다”며 “(일반 주유소 폐업으로) 전체 주유소 수가 줄어들면 소비자의 주유 탐색 비용이 늘어나고 오히려 생존 주유소들의 판매 가격 인상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알뜰주유소 대비 일반 주유소 사업자들의 어려움은 커지고 있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알뜰주유소는 1136개에서 1305개로 14.9% 증가했다. 전체 주유소에서 알뜰주유소가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9.1%에서 11.7%로 늘어났다. 반면 일반 주유소는 1만 1336개에서 9839개로 13.2% 줄어든 상태다. 주유소를 폐업하기 위해 필요한 철거 비용과 환경개선부담금 등이 1억~3억 원에 달해 폐업 대신 휴업을 택한 주유소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일반 주유소의 감소세는 더 가파를 수 있다. 전기차 보급 확대로 주유소 폐업이 갈수록 가속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번 구조 개편을 넘어 알뜰주유소 제도의 법령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알뜰주유소 물량 비중이 커지고 정유 업계와 주유소 사업자에 끼치는 영향은 막대하지만 석유사업법과 하위 법령 어디에도 알뜰주유소 제도의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곽윤혁 법무법인 유택 변호사는 “한국석유공사법에 있는 ‘석유공사가 석유 유통 구조 개선을 위한 사업을 할 수 있다’ 정도의 규정으로는 알뜰주유소 제도, 특히 입찰 계약을 포괄할 수 없다”며 “알뜰주유소 제도는 석유 판매의 근간을 좌우할 수 있는 수준에 달했기 때문에 이를 정책만으로 규율하는 것은 법치주의 본질에도 반하는 요소가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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