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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尹대통령의 반국(飯局)은 낙제점

구경우 정치부 차장

구경우 정치부 차장




윤석열 대통령이 5월 방한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관저에 초대해 만찬주로 ‘경주법주 초특선’을 올렸다. 이 만찬은 윤 대통령이 강제징용 해법을 들고 방일한 데 대한 화답이자 12년 만에 재개된 셔틀외교를 기념하는 역사적인 자리다. 이날 내놓은 술이 한국 전통주가 아닌 쌀을 도정한 니혼슈(日本酒)의 아류라는 점에서 논란이 일었다.

정상 간의 만찬은 외교의 백미다. 어떤 메뉴가 올랐는지에 따라 양국의 관계도 가늠할 수 있다. 중국은 외교 식사를 아예 치열한 정치의 장인 ‘반국(飯局)’으로 부르기도 한다. 윤 대통령을 따라다니는 만찬 메뉴의 논란은 주변국들의 능수능란한 반국을 보면 더욱 아쉽다.

미국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을 하던 2014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방일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당시 최고의 장인 오노 지로의 스시야에서 대접했다. 이때 아베 총리가 내놓은 술이 고향 야마구치현의 명주 ‘닷사이(獺祭)’다. 닷사이는 우연찮게도 마치 경주법주 초특선처럼, 일본 최초로 주조 공정에 원심분리기를 도입하고 깔끔한 맛을 위해 쌀을 깎는 도정 비율을 77%까지 높인 ‘니와리산부(23)’를 내놓은 것으로 유명하다. 아베 총리는 이 자리에서 닷사이의 최고 등급 ‘소노사키에(その先へ·beyond)’를 선물했다. 국익을 위해 양보 없는 협상을 하지만 미일 관계는 더 높은 단계(beyond)로 가야 한다는 뜻을 담았다는 해석이 나왔다.



만찬 메뉴는 정치적 함의를 넘어 역사가 되기도 한다.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는 1971년 중국에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방중 형식을 두고 당시 특사로 온 헨리 키신저 대통령 국가안보 보좌관과 다퉜다. 저우언라이는 키신저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 하자 “밥을 먹자”며 붙잡고 오리구이인 ‘베이징카오야’를 대접했다. 반국에 임할 때면 국수로 미리 배를 채우고 나섰다던 저우언라이는 직접 오리를 싸주며 키신저의 화를 달랬다. 결국 1972년 닉슨 대통령이 방중하는 ‘핑퐁 외교’가 성사됐고 소련의 몰락은 시작됐다. 역사적인 ‘북경오리외교’는 베이징카오야가 세계적으로 더욱 유명한 음식이 되는 계기도 제공했다.

중국은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식사에 ‘불도장’을 올리기도 했다. 불도장은 청나라 금융기관인 관은국(官銀局) 관리가 상급 관청을 대접하기 위해 만든 음식이다. 개혁 개방을 선언한 중국이 자존심을 내려놓고 서구에 불도장을 올리며 투자를 갈구한 것이다.

정상들의 식사는 정치를 넘어 한국 음식과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경제적 기회를 만드는 자리다. 그런 점에서 보면 윤 대통령의 반국은 낙제점이다. 인상에 남는 메뉴로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기는커녕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삼남이 경영하는 회사의 와인을 올리는 등 구설만 남기고 있다. 준비하는 참모들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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