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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 사우디가 불붙인 美中 ‘중동 포섭’ 경쟁…韓 외교·경제 기회 삼아야

◆신냉전 전선으로 급부상한 중동

美 아프간 철수등 ‘권력 공백’으로 중동 역학관계 변화

중국 ‘평화 중재자’ 자처하며 틈새 노리고 세 확장 나서

中 지렛대 삼은 빈 살만 게임에 美도 중동 재복귀 시도

韓 시장 다변화 차원 ‘비교우위’ 내세워 실용 외교 펴야


# 사우디아라비아 주재 이란 대사관이 이달 6일 7년 만에 수도 리야드에 다시 문을 열었다. 중국의 중재로 베이징에서 사우디와 이란이 외교 관계 정상화에 합의한 지 약 3개월 만이다.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이란과 사우디는 아랍에미리트(UAE), 이라크, 카타르 등 여러 중동 국가들과 함께 페르시아만 항해 안보를 위한 합동 해군 창설 방안에 대한 논의도 벌이고 있다. 중국은 이 회담 중재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중동의 외교 지형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이슬람 수니파의 종주국 사우디와 시아파의 맹주 이란이 2016년 이후 단절됐던 외교 관계를 복원한 가운데 1979년 이란혁명 이후 40년 넘게 적대 관계였던 이란과 이집트도 관계 회복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내전에서의 잔혹 행위로 12년간 서구는 물론 아랍 국가들에도 배척당했던 시리아의 ‘학살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사우디의 주선으로 최근 아랍연맹(AL)에 복귀했다. 사우디·이란 간 대리전이 된 내전이 10년 가까이 이어져온 예멘에서는 사우디가 이끄는 연합군과 후티 반군 간 휴전 협상이 진행 중이다. 중동에 긴장 완화, 이른바 데탕트 기류가 역력하다.

그런데 이 모든 장면에 미국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과거 중동에서 존재감이 없던 중국이 미국의 공백을 파고들며 눈에 띄게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3월 10일 베이징에서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을 사이에 두고 악수를 나누는 무사드 빈 무함마드 알아이반 사우디 국가안보보좌관과 알리 샴카니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 의장의 모습은 중동 지정학의 기류 변화와 그 속에서 달라진 중국의 입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중동 평화의 중재자’를 자처하고 나선 중국은 이제 분쟁의 또 다른 진앙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화해를 끌어내겠다는 의지도 내비치고 있다.



올해 3월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회동한 무사드 빈 무함마드 알아이반(왼쪽) 사우디 국가안보보좌관과 알리 샴카니(오른쪽)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 의장이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악수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동에서 쇠퇴하는 미국의 영향력


역사적으로 중동 질서의 중심에는 늘 미국이 있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글로벌 석유 생산 기지인 중동은 미국에 가장 전략적 가치가 높은 지역이었다. 특히 1980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걸프만을 장악하려는 외부 세력은 미국을 공격한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일명 ‘카터 독트린’을 발표한 뒤로 미국은 중동 석유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 지역 안보를 책임져왔다.

2011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선언은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급격하게 쇠퇴하는 출발점이 됐다. ‘셰일 혁명’으로 에너지 자립도를 높인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을 빼기로 하자 미국의 안보 우산을 신뢰할 수 없게 된 역내 국가들은 독자적인 외교 노선을 밟기 시작했다. 특히 중동의 최강국이자 미국의 오랜 동맹인 사우디는 2018년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을 두고 인권 문제를 제기한 미국과 급속도로 멀어졌다. 그 틈을 메울 외교적 대안으로 급부상한 것이 중국이다. 사우디 입장에서 미국의 경쟁국이자 이란과 우호적 관계를 갖는 중국과의 전략적 관계 강화는 중동에서 고개를 돌리는 미국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이란을 통제하기 위한 좋은 지렛대다. 사우디뿐만이 아니다. ‘아랍의 봄’ 이후 자유민주주의를 앞세우는 미국에 불만을 키워온 중동의 전제정치 국가들에 ‘내정 불간섭’ 원칙으로 다가서는 중국은 중요한 교역 대상국을 넘어 우호적 외교 상대로 받아들여진다. 블룸버그통신은 “중동이 미중 신냉전의 핵심 전선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사우디 균열 파고드는 中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한 틈을 파고드는 중국의 행보는 공격적이다. 석유의 72%를 수입하는 중국 입장에서 원유 수입의 절반가량을 의존하는 중동은 경제 안보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핵심 지역이기도 하다. 올 4월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UAE의 수도 아부다비에 첫 해외 사무소를 연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에는 중동 국가들과의 에너지 거래에 달러화 대신 위안화 결제 시스템을 제시하며 중동 석유 시장을 위안화 국제화의 교두보로 삼으려 하고 있다. 올 3월 UAE는 중국에 대한 천연가스 수출 대금을 위안화로 결제하기로 했다. 외신들에 따르면 사우디 등은 새로운 무기 공급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에 무기 대금을 위안화로 지불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연임에 성공한 뒤로 지금까지 경제적 이익 추구에만 집중됐던 중국의 중동 전략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지난해 10월 20차 중국 공산당 대회 이후 새로운 국제 질서 주도자 역할을 자처한 중국이 이 지역 갈등의 중재자로서 중동 정세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 주석이 지난해 12월 리야드에서 열린 21개 아랍국 정상들과의 첫 정상회의에서 아랍권의 전면 협력을 선언한 것은 중국과 중동 관계에 새로운 이정표가 됐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태평양에서의 미중 대립 우회로로 일대일로 전략을 펴는 중국이 중동에서의 미국 권력 공백을 활용하려 하고 있다”면서 “과거 이 지역에서 정무적·군사적 개입을 피하고 경제적 이득만 노렸던 중국이 3연임 후 시 주석의 ‘브랜드’로 삼으려는‘글로벌 안보 구상(GSI)’의 첫 케이스로 점찍은 것이 사우디·이란 중재”라고 설명했다.

사우디는 이 같은 의도를 지닌 중국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최근 중국이 주도하는 정치·경제·안보협의체 상하이협력기구(SCO)에 ‘대화 파트너’로 합류하고 중국·러시아가 주축인 브릭스(BRICs) 공식 가입을 요청한 것이 대표적이다. 외교가에서는 사우디가 브릭스의 여섯 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해 자본 조달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이달 7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사우디 외무장관과 회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美 상대로 벌이는 빈 살만의 게임


중국과 사우디의 밀월이 깊어지자 다급해진 것은 미국이다. 사우디가 비(非)서구 국제 질서를 형성하려는 중국·러시아·이란과 연대할 경우 미국의 에너지 확보와 중동에서의 이스라엘 안보, 글로벌 달러화 패권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미국외교협회가 발간하는 포린어페어스는 “중국·이란·사우디의 전략적 이익이 수렴하면서 미국은 역사적 도전을 맞게 됐다”고 지적했다. 중동 지역이 미중 대립의 새로운 전선으로 부상하는 가운데 중동 리더십에 중대한 위기를 맞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다시 ‘중동 끌어안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이달 사우디를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7일 리야드에서 열린 미·걸프협력회의(GCC) 장관급 회의에서 “미국은 중동에 계속 머물 것”이라고 선언했다. 미국은 중국의 일대일로에 맞서 사우디와 UAE 등 주요 아랍 국가들을 연결하는 철도망 건설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현재로서는 중동 내 30여 개의 군사기지를 거느린 미국의 리더십이 대체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중동 국가들이 미국 대신 중국의 손을 잡을 생각이 없듯이 중국 역시 중동에서 미국의 역할을 대신할 의도도, 능력도 없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인 교수는 “중동에서 모든 판은 결국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게임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면서 “중국의 사우디·이란 관계 중재도 워싱턴에 대한 지렛대로 미중 대립을 이용하려 한 빈 살만의 게임 카드일 뿐”이라고 분석했다. 사우디 정부는 중동에서의 리더십을 되찾기 위해 사우디와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미국을 향해 정밀 무기 금수 조치 해제, 민간 핵 프로그램 개발 지원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중동 리더십을 둘러싼 복잡한 역학 변화에서 승자는 사우디”라고 인 교수는 덧붙였다.

중동 외교 다변화는 韓에 기회


중국이 중재한 사우디와 이란의 화해 역시 일시적 현상에 그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외교 전문지 디플로맷에 따르면 과거 이란과 사우디는 세 차례나 관계를 단절했다가 복원하기를 반복해왔다. 종교적 갈등과 전략적 대립이 그만큼 뿌리 깊다는 뜻이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는 “지금은 사우디와 이란이 자기 파괴적인 대립에서 잠깐 쉬어가는 ‘차가운 평화’의 시기”라며 “두 나라가 약속을 파기해도 중재자인 중국에 해결 능력이 없다는 점도 불안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사우디 대 이란의 극심한 대립 구도를 일시적으로나마 완화한 지금의 역내 데탕트가 갖는 의미는 작지 않다. 인 교수는 “최근 중동의 변화는 미중 대립의 전선에서 벌어지는 중견 국가들의 게임 양태를 보여준다”며 “한국 입장에서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으로 중동 국가들이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외교를 다변화하고 미국도 유화적 태도로 돌아선 지금이야말로 한국이 중동 외교를 강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중동 국가들이 외교 다변화로 동북아를 향한 관심과 기대를 높였다는 점에서 우리 외교와 경제에 큰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장 센터장은 “중동 국가들이 아직은 한국과 중국·일본의 장단점과 특징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초보적 단계이므로 중국·일본과 차별되는 한국의 비교 우위를 잘 살려가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과도한 대(對)중국 교역 의존도를 줄이고 시장 다변화를 추구하는 측면에서도 중동 지역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신냉전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가치 동맹 강화와 국익 극대화에 초점을 맞춰 정교하면서도 실용적인 중동 외교를 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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