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윤관석·이성만 의원의 탈당 이후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며 쇄신 의지를 보였지만 결국 다시 ‘방탄’의 길을 택했다. 같은 식구였던 두 의원에 대한 동정표에 더해 검찰 수사에 대한 반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잇따른 도덕성 논란으로 타격을 입은 민주당이 윤·이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을 주도하면서 방탄 프레임을 탈피하기 어렵게 됐다.
12일 정치권에서는 윤·이 의원의 체포동의안 부결 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라는 반응이 나왔다. 당초 민주당 안팎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방탄 정당 이미지가 고착화되는 것과 도덕성 논란이 불거지는 상황을 우려해 가결이 우세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총 투표 수 293표 중 윤 의원은 145표, 이 의원은 155표의 부결표를 얻어냈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112명과 정의당 6명 전원이 당론대로 가결표를 던졌다고 가정하면 민주당에서 무더기 동정표가 쏟아진 것으로 해석된다.
윤·이 의원은 민주당 의원들을 상대로 친전을 돌리는 등 부결표 확보를 위해 총력을 기울여왔다. 윤 의원은 본회의 당일 진행된 민주당 의원총회에 찾아가 회의장으로 입장하는 의원들을 향해 “잘 부탁드린다”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아울러 페이스북에도 글을 올려 “정치 검찰의 총선용 짜맞추기 기획 수사가 목적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 의원 역시 동료 의원들에게 두 차례 친전을 보내 “검찰의 정치적 목적이 담긴 무리한 수사”라고 호소했다.
특히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본회의 발언이 민주당의 입장 선회에 영향을 미쳤다. 한 장관은 표결에 앞서 “돈 봉투를 받은 것으로 지목되는 약 20명의 민주당 국회의원이 여기 계시고 표결에도 참여하시게 된다”며 “돈 봉투 돌린 혐의를 받는 사람들의 체포 여부를 (돈 봉투) 받은 혐의를 받는 사람들이 결정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민주당 의원들은 고성을 지르며 항의했다. 김한규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표결 후 “한 장관의 고도로 계산된 정치적 발언 때문에 모욕감을 느꼈다는 의원이 많았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도 “원래는 부결 분위기가 아니었다”면서 “한 장관이 민주당 의원 20명을 잠재적 범죄자처럼 표현한 것이 부당하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전했다.
민주당이 또 한 번 자당 출신 의원들에 대한 체포동의안에 부결표를 던지면서 방탄 프레임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게 됐다. 앞서 윤석열 정부에 들어선 뒤로 민주당 소속 중 노웅래 의원과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모두 부결된 바 있다. 특히 이번 사례의 경우 이 대표가 직접 돈 봉투 사건을 사과하고 지도부의 권유로 윤·이 의원이 자진 탈당까지 한 상황이어서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불가피해졌다. 게다가 돈 봉투 사건이 확산한 후 민주당 ‘쇄신 의총’에서 의원 전원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정치를 바꾸겠다”고 결의문까지 발표했다.
최근 잇따라 악재를 만난 민주당이 핵심 지지층 결집을 위해 한 선택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리얼미터가 미디어트리뷴 의뢰로 5일과 7~9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0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민주당 지지율은 전주 대비 0.5%포인트 올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돈 봉투 사태에 이어 김남국 의원의 가상자산 의혹, 혁신위원장 사태 등 민주당이 연달아 위기를 겪었음에도 지지율이 오른 것은 지지층이 결집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는 ‘정치 검찰’에 대항하는 체포동의안 부결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민주당이 겹악재를 만난 상황에서 핵심 지지층을 결집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윤·이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도 부결시켜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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