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무역이 ‘4C’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Chip)가 글로벌 정보기술(IT) 경기 침체로 큰 폭의 마이너스 수출을 이어가고 있다. 최대 시장이자 무역 흑자국인 중국(China)에 대한 수출이 7개월째 감소하고 무역수지도 적자로 반전됐다. 2026년 본격 시행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철강을 비롯한 주요 수출 산업에 새로운 규제가 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가속화된 미중 갈등(Conflict)은 반도체 등 주요 산업에 대한 보조금 전쟁, 핵심 기술 수출 통제 등과 맞물리면서 글로벌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4C는 한국 무역과 통상 활동 전반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현재까지의 모습을 보면 부정적인 요소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수출 부진과 무역수지 적자 행진이 1년 이상 지속되면서 한국 무역의 경쟁력을 점검하고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 세계 경제의 글로벌화와 자유무역 질서를 적극 활용하는 모범생으로 세계 7대 무역 강국의 지위를 확보하는 성과를 달성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개되는 글로벌 무역과 통상 환경은 기존과 전혀 다른 전략과 대응 방안을 요구한다. 미국·유럽연합(EU) 등 주요 경제권이 반도체 등 핵심 품목의 비교우위 확보에 나서고 공급망 안정을 위해 자국 내 제조업 유치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공정한 자유무역을 통한 세계 경제 발전이라는 구호는 무색해졌다.
이처럼 급격히 진행되는 글로벌 무역, 통상 질서 재편 과정의 한가운데에 있는 한국 무역이 4C라는 터널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도약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성공 DNA를 되살려야 한다. 특정 품목이나 국가에 대한 부진이 전체 무역구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산업별·국가별 전략이나 대책보다 더 큰 차원에서 한국 무역의 프레임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것을 목표로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야 한다.
성공 DNA를 되살리는 측면에서 올해 50년째를 맞은 한국의 중화학공업 정책 선언을 되돌아보자. 1973년 1월 12일 박정희 대통령은 신년 기자 간담회에서 ‘전 국민의 과학화 운동’을 제시하고 과학기술 발달을 기반으로 선진국이 될 것이라며 1981년 수출 100억 달러, 1인당 국민총소득(GNI) 1000달러, 중화학공업 비중 50% 이상 등의 구체적인 정책 목표를 제시했다. 1972년 우리 수출 규모가 16억 달러, 1인당 GNI가 340달러였고 중화학공업의 비중도 33.5%(1971년)로 산업화의 기반이 없다시피한 상황에서 이러한 정책 목표는 장밋빛 일색인 말의 잔치로 여겨졌다.
그러나 목표 달성을 위한 세부 전략이 체계적이고 과감하게 추진돼 조선 공업 육성 방안, 기계 소재 공업 건설 방안 및 철강재 수출 계획, 정밀기계공업 육성 방안, 전자공업 장기 육성 방안, 비철금속제련단지 계획 등이 마련됐다. 기능사 및 기술자 제도를 통한 인력 양성 방안, 종합무역상사 제도를 통한 수출 확대 방안도 속속 추진됐다. 그 결과 1981년 수출은 213억 달러, 1인당 GNI는 2030달러로 목표치를 크게 초과했다. 또 적극적인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편 결과 1986년에는 우리나라의 무역수지가 사상 최초로 31억 달러 흑자를 달성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이처럼 한국 무역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역과 통상 전반을 아우르는 전면적이고도 혁신적인 프레임을 구축해야 한다. 중화학공업 정책 성공을 통한 경제 도약이라는 성공 DNA를 다시 한 번 점검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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