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기술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젊은 인재의 유출을 막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이들이 즐기면서 연구할 수 있는 플랫폼이 갖춰져야 합니다.”
케이 조(한국명 조광욱)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교수는 5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제1회 세계한인과학기술인대회’에 연사로 참석해 정부와 과학기술계에 이같이 조언했다. 이번 대회는 지난해 9월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 진행한 재미 한인 과학기술인 간담회에서 한인 과학자 간 교류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마련했다.
동양인 최초로 영국왕립학회의 ‘올해 뉴로사이언스(신경과학) 우수연구자’로 선정됐고 동양인 최초로 울프슨연구업적상도 받은 조 교수를 포함한 한인 석학 4인은 이날 ‘2030년 지속 가능성의 전진: 최첨단 기술과 과학 혁신’을 주제로 마련된 ‘사이언스 토크콘서트’에 참석해 한국 과학기술의 지속 발전 방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연사로는 조 교수를 비롯해 한국인 최초의 미국물리학회장으로 선임된 김영기 미국 시카고대 물리학과 석좌교수, 양자컴퓨터 연구를 주도하는 김기환 중국 칭화대 물리학과 교수, C형 간염 바이러스 치료의 새로운 지평을 연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석좌교수가 나섰다.
석학들이 내세운 공통 키워드는 ‘인재 양성’이다. 조 교수는 과학자의 처우 개선을 우선 과제로 꼽았다. 그는 “과학이 중요한데도 많은 젊은 과학자들이 (산업계로) 이직을 하는 게 현실”이라며 “결국 (정부가) 과학 연구를 위한 시스템을 마련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이어 “과학자가 먹고사는 걱정 없이 연구하는 환경, 이를 개인적인 경험에 빗대어 ‘낭만’이라고 부르고 싶다”면서 “저는 젊은 시절 낭만을 갖고 과학을 했는데 요즘 젊은 친구들은 과연 낭만이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없다면 저를 포함한 기성세대에게 그 책임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연구 성과에 대한 합당한 보상 등 과학기술인에 대한 처우 개선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조 교수는 “글로벌 제약사에서 고액의 연봉을 제시하며 이직 제안이 왔을 때 저는 울프슨연구업적상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에 학계를 떠나지 않았다”며 “각종 보상을 포함한 처우 개선책을 한국 정부도 고민해달라”고 제안했다. 이어 “인재 양성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반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젊은 과학자들을 길러내는 데 어려움이 컸던 게 사실”이라며 “팬데믹이 한 번으로 끝나리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에 인재 양성 전략이 (한국 과학기술 발전에)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환 교수와 김영기 교수는 융합 연구가 활발해지는 환경과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에 주목하면서 인재 양성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기환 교수는 “30년 전 양자컴퓨터 이야기가 처음 나올 때만 해도 이것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못했다”면서 “최근 들어 저의 ‘이온트랩 기반 양자컴퓨터’ 등의 연구로 양자컴퓨터의 연산 성능이 슈퍼컴퓨터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발전하면서 신약을 발굴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문제의 해법을 찾을 인재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영기 교수는 “70년 전 미국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가 대규모 고에너지 입자가속기를 제안한 후 불과 30년 만에 입자가속기가 출현했다”며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을 따라잡으려면 인재의 다양성을 키우는 것이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 같은 사람은 1000명이 있어도 하나의 생각만 하지만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1000명이라면 그만큼 다른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말했다.
세션 토론에 참석한 최덕용 호주국립대 교수는 “호주에서는 대학끼리 얼마나 협력해서 (논문을) 출간했느냐를 인덱스(경쟁력 지표)로 삼는다”며 김영기 교수의 견해에 동의했다. 정광희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 석좌교수도 “기초과학은 ‘분자기계’ 연구처럼 일생을 두고 한 분야에 장기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런 과학자가 당장 논문을 내지 않더라도 10년·20년에 걸쳐 또 제자들이 이어받아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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