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여당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수해 추가경정예산안을 일축하는 데는 가용 자원이 넉넉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당장 재난용 목적예비비 2조 8000억 원, 부처별 재해대책비 4000억 원을 포함해 올해 재해예비비로만 총 4조 3000원을 사용할 수 있다. 여기에 국고채무부담행위에서 1조 5000억 원, 일반예비비 1조 8000억 원까지 끌어다 쓸 경우 가용 자원은 총 7조 6000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 8월 수도권 집중호우 피해가 3000억 원, 같은 해 8월 태풍 힌남노 피해 규모가 2000억 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재원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야당의 추경 주장에 경계의 날을 바짝 세워야 할 만큼 현재 우리 경제 여건이 좋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는 올해 4년 만에 대대적인 세수 결손이 확실시된다. 올 5월 이후 연말까지 지난해와 똑같은 규모의 세금을 걷는다고 가정하더라도 올해 세수는 세입 예산(400조 5000억 원) 대비 41조 원이 빌 것으로 점쳐진다.
설상가상 중국 경제 부진 등으로 경기 회복도 지연되고 있다. 최근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을 1.3%로 내려 잡았을 정도다. 가뜩이나 울고 싶은 터에 자연재해에 뺨까지 맞은 형국인 셈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정부 여당도 아직은 추경 편성에 선을 긋고 있지만 언제 상황이 급변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정부 안팎에서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위 관료는 “그간 올해 성장률이 1%대만 기록해도 (정부 내에) 추경 편성을 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 공감대 같은 게 있었다면 (폭우 피해가 발생한) 지금은 (추경 편성 불가 방침을) 장담하기 어렵다”며 “재해 복구에 가용할 재원이 있다 해도 추경의 강한 유혹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야당은 수해 추경을 노골적으로 얘기하고 있다. 아직 피해 규모조차 정확히 추산되지 않은 상황임을 감안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추경에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실제 연초 30조 원 규모의 난방비 추경을 주장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최근에도 ‘35조 원의 민생 추경’을 주장하면서 “국채 발행까지 고려하자”고 나섰다. 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당시 5년간 10번의 추경 편성으로 국가채무가 415조 원이나 늘었다”며 “이게 윤석열 정부의 재정 운용에 부담을 주고 있음을 모르지 않을 터인데 공당으로서 책임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수해를 빌미로 긴축 기조에 변화가 생길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윤석열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긴축 선언까지 했다 해도 현금성 복지 지출 구조조정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라 이번 수해 피해의 파장이 경기 부진 등과 맞물려 어떻게 튈지 예단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필상 서울대 특임교수는 “이번이 끝이 아니라 자연재해가 반복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기후 변화에 세수 부족까지 커질 경우 정부 여당도 한정된 재원 속에 백기를 들 수 있다”며 “세수 펑크에 직면해서도 증세가 아니라 경기 활성화에 방점을 찍은 정부로서는 보다 강단 있게 리더십을 발휘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재해 극복을 위한 가용 자원 등을 소상히 밝혀 추경 논란을 정면 돌파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여당의 지지율이 뒷걸음질 치면 여당 내부에서도 추경에 반대하는 여론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선거 앞에 정부 여당이 건정 재정을 지키려면 이번 수해 대응을 신속하고 민심 동요가 없게 잘 처리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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