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스승이 세상을 떠나면 수많은 부고 기사가 쏟아진다. 부고 기사의 내용은 그가 어떤 학교를 졸업했는지, 어떤 직책을 맡았는지, 어떤 학문 이론을 정립하고 무엇을 가르쳤는지 등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나열하는 데 그친다. ‘망자는 평소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어떤 취미를 가졌을까’ 등 ‘출신학교’ 보다 몇 배는 더 중요한 보이는 망자의 인생담은 부고 기사에 잘 담기지 않는다. 이러한 정보를 기사에 담기 위해서는 긴 시간을 들인 추가 취재가 필요하다.
미국 언론사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부고만 쓰는 제임스 R.해거티 매일 1~2시간을 들여 전세계의 뉴스에서 사망 소식을 찾는 부고 전문기자다. 그의 기사 속 주인공 중 상당수는 유명인이 아니다. 그저 우리 주변에서 볼 법한 필부필부의 죽음도 그에게는 중요한 기사 거리다. 그의 저서 ‘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는 그렇게 7년간 덤덤하게 기록한 800여 명의 부고를 담은 책이다. 사실 이 책의 원제는 유어스 트룰리(Yours, Truly), ‘그럼 이만, 안녕히 계세요’다. 책 속 주인공들이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인사인 셈이다.
망자들은 산 자들에게 자신의 일생 중 어떤 것을 알리고 싶을까. 생계를 유지하는 법, 사랑에 빠지는 법, 기쁨을 나누는 법, 성공하는 법과 실패를 피하는 법 등 자신의 삶에서 유용 했던 ‘알아두면 쓸모있는’ 정보를 남기고 싶지 않을까. 저자는 마치 망자들과 대화를 나누듯 그의 일생을 글에 한 자, 한 자 담아낸다. 저자의 부고가 세상의 다른 모든 부고와 다른 이유다.
사실 죽은 이의 생을 글로 써 세상에 공개하는 일은 쉽지 않다. 슬프지만 유머를 잃지 않아야 하고, 감동도 있어야 한다. 이런 아슬아슬한 감정의 줄타기는 철저한 취재와 자신 만의 철학이 있을 때 가능하다. 저자는 문학에 가까운 부고 기사를 쓰고 있지만 저널리스트로서 지켜야 할 엄격함을 잃지 않았다. 이를테면 ‘제 아무리 가족이 한 이야기라도 팩트 체크는 필수’라든가 ‘망자의 이력을 과장하거나 미화하지 않기’ 등이 그가 정한 규칙이다. 또 화려한 경력 보다는 망자의 삶의 이야기를 쓰는 데 더 집중했다.
저자가 영업기밀에 가까운 ‘부고를 쓸 때 주의해야 할 점’을 책으로 정리한 이유는 따로 있다. 독자들이 쓸 수 있을 때 자신의 이야기를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누가 내 부고를 쓸 것인가, 결국 가족이나 가장 가까운 이들이 쓰거나 혹은 그들이 전달한 내용을 기자가 쓸 것이다. 죽은 내가 봤을 때 ‘내 부고를 저들이 망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누구도 나보다 내 부고를 잘 쓸 수는 없다. 한 번 펜을 들어보자. 그리고 세상에 ‘안녕히 계세요’라는 인사를 건네는 연습을 해 보자.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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