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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엔 중앙은행 역할 커질 수밖에 없다던 이창용의 세 번째 승부수 [조지원의 BOK리포트]

적격담보 범위 확대 등 대출제도 개편

SVB 사태로 최종대부자 기능 강화키로

‘채무불이행 위험’ 대출채권 포함이 핵심

美 日 EU도 받아주고 은행 수요도 확인

한은, 은행 대출채권 등 각종 정보 수집

“주머니 사정도 모르고 돈 못 빌려준다”

李총재 발언대로 한은 역할 점차 커질 듯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한국은행 대출제도 개편 방향 기자설명회. 왼쪽부터 이창용 총재, 임건태 신용정책부장, 홍경식 통화정책국장, 우신욱 금융기획팀장. 사진제공=한은




지난달 27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의결한 ‘대출제도 개편’은 중요도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한은은 표면적으로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확산)을 막기 위한 예금취급기관의 유동성 안전판(backstop) 역할 강화를 내세웠다. 그 유동성 공급 이면에는 충분한 정보 공유가 전제돼 있다.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의 수시 정보공유는 물론이고 은행이 가진 대출채권에 대한 상시적 정보공유 체제를 구축해 ‘최종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인 중앙은행의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심산이다.

이는 이창용 한은 총재가 취임 후 던진 세 번째 승부수이기도 하다. 첫 번째가 지난해 7월과 10월에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0%포인트씩 올리는 ‘빅스텝’, 두 번째가 금융통화위원들의 최종금리 수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포워드 가이던스(사전적 정책방향 제시)’다. 빅스텝은 고물가 등 대내외 여건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포워드 가이던스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총재 임기 중 손에 꼽힐 주요 행보로 보인다. 그는 지난해 취임사에서 “경제여건이 어려워질수록 중앙은행의 역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라고 하는 등 한은의 역할 확대를 수시로 강조했다.

이번에도 이 총재는 ‘대출제도 개편’ 간담회에 직접 나와 “한은 입장에선 대단히 큰 변화”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지난 4월 미국 출장길에서 “한국에서 SVB(실리콘밸리은행) 사태가 발생하면 뱅크런 속도가 100배는 빠를 것”이라고 운을 띄워놓더니 지난 6월 창립 73주년 기념사에선 “상시적 대출제도 등 위기 감지 시 즉각 활용 가능한 정책수단 확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사전 예고까지 했다. 그는 당시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권이 없다는 이유로 문제를 방치할 수 없다”라는 작심 발언까지 더했다.

미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사 전경. 로이터연합뉴스



새마을금고 아닌 SVB 디지털 뱅크런 막으려 도입


이번 한은의 대출제도 개편을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여기서 말하는 대출은 개인이 은행 등에서 받는 신용대출이나 주택담보대출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은 한은과 거래할 수 없다. 한은이 금융기관에 하는 대출은 통화정책수단 중 하나로 평소 단기시장금리 변동성을 제어하거나 일시적인 결제 부족 자금을 지원해 지급 제도를 원활하게 하는 수단이다. 특히 금융위기 상황에서 자금을 공급해 시스템을 안정시키는 최종대부자 기능이 중요하다. 이번 대출제도 개편은 올해 3월 발생한 SVB 디지털 뱅크런을 계기로 도입된 만큼 위기 시 유동성 공급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하나 더 알아둬야 할 것은 한은은 손실 최소화 원칙 등에 따라 금융기관에 무담보 대출을 하지 않는다. 금융기관은 국고채·통안채 등 신용등급이 높고 유동화가 쉬운 담보를 제공해야만 한은으로부터 유동성을 지원받을 수 있다. 또 여기서 금융기관은 은행을 의미하기 때문에 새마을금고 등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지원은 ‘최종대부자 기능’을 규정하는 예외적 규정인 한은법 80조에 따라서만 가능하다. 지금까지 한은법 80조가 발동된 것은 1997년 이후 단 세 번뿐이다.

한국은행 신축 통합별관. 사진공동취재단



핵심은 디폴트 우려 있는 대출채권 담보 포함


다시 돌아와서 한은이 이번에 발표한 대출제도 개편은 세 가지 내용이다. ①은행에 대한 자금조정대출의 대출금리 인하와 적격담보 범위 상시 확대, 대출만기 연장 등 중앙은행 대출제도 접근성 제고 ②상호저축은행·새마을금고 등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에 대한 한은법 80조 신속 지원 ③한은 대출 적격담보에 예금취급기관의 대출채권 추가 등이다.

①번은 이미 있던 제도에서 일부 완화 조치를 상시화하고 조금 더 유리한 조건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고 ②번은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의 수시 정보공유를 토대로 금통위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점에서 이번 개편의 핵심은 ③번으로 볼 수 있다. ③번에서 예금취급기관이라고 했으나 엄밀하게 따지면 은행이고, 비은행 예금취급기관까지 포함할진 결정되지 않았다.

은행이 개인·기업 등에 돈을 빌려주고 확보한 대출채권은 저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채무불이행(디폴트) 위험을 지니고 있다. 국고채나 통안채, 심지어 우량 회사채 등 시장성 자산은 누가 보유하든 시장에선 같은 평가를 받기 때문에 유동화가 어렵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이 가진 우량 회사채 등도 은행과 마찬가지로 적격담보로 인정키로 한 것이다. 그러나 신용위험이 있는 비(非)시장성 자산을 담보로 받고 유동성을 지원한다는 것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지나치게 신중한 한은에서는 그야말로 큰 결심이다.




뱅크런 위험 크지 않은데 굳이 대출채권까지 포함한 이유


사실 학계나 금융계에선 ①번에 이어 ②번까지만 잘 이뤄져도 우리나라에서 뱅크런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본다. 최근 새마을금고 뱅크런 위기도 은행들이 새마을금고중앙회가 가진 채권을 환매조건부채권(RP)으로 인수하는 방식을 통해 지원하기로 하면서 급격히 안정됐다. 그리고 은행들의 뒤엔 한은이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도 한은은 예금취급기관의 대출채권까지 담보로 받아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③번안을 과감하게 발표했다. 이는 은행과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이 보유한 시장성 증권이 충분해 자금조달 여력을 갖추고 있으나 최근 몇 년 사이 디지털화가 심화하면서 뱅크런이 상상도 할 수 없던 속도로 나타나자 새로운 대책이 필요해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건 SVB 사태에서 얻은 교훈이다. SVB는 3월 9일 하루 만에 예금 420억 달러가 빠져나갔고 10일에도 1000억 달러 규모의 인출이 예상되자 미국 감독 당국이 다급히 폐쇄를 결정했다. 7월 말 기준 우리나라 외환보유액(4218억 달러)의 3분의 1 정도가 이틀 만에 빠져나갈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그런 측면에선 이번 대책이 발표 시점상 새마을금고 뱅크런을 막기 위한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SVB과 같은 디지털 뱅크런 방지가 주된 목적이다.

올해 1월 16일 서울 강남구 한국은행 강남본부에서 현금 운송 관계자들이 시중은행에 공급될 설 자금 방출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또 하나 문제는 예금취급기관들이 뱅크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보유 중인 증권을 시장에 투매하는 경우다. 지난달 우리나라에서도 새마을금고중앙회가 자금 확보를 위해 채권을 대량 매도하는 과정에서 채권금리가 오르는 등 금융시장 불안이 우려된 바 있다. 예금취급기관들은 자산의 70~80%를 대출채권으로 보유 중인 만큼 한은이 이를 적격담보로 받아주면 필요한 유동성을 적기에 받아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혹시 모를 금융시장 불안도 방지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 유럽중앙은행(ECB), 영란은행, 일본은행 등 주요국 중앙은행 대부분이 대출채권을 적격담보에 포함하고 있다는 점도 한은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배경이 됐다. 다만 현행 한은법 65조에 따라 금통위가 대출채권에 임시적격성을 부여하는 등 별도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법 개정까지도 필요한 사안이지만 한은은 현행법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나가겠다는 강한 의지다. 사실 법 개정 없이도 가능하다는 것은 그간 한은이 이렇게까지 나설 이유가 없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은행 입장에선 쓸모없는 대출채권 맡기고 채권은 재활용


그렇지만 대출채권을 적격담보로 받아 유동성을 공급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한은이 어떤 대출채권을 적격담보로 포함할지를 판단해야 한다. 차주마다 신용도가 다르고 대출 종류도 모두 다르다. 대출채권을 받더라도 어느 정도로 담보가치 인정비율(haircut ratio)을 적용할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최우량 신용등급인 차주라도 3억 원짜리 대출채권을 담보로 3억 원을 그대로 내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은행에선 보유 중인 대출채권 평가를 받으려면 관련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한은과 전산시스템을 구축하고 인력도 새로 배치해야 한다. 한은도 대출채권의 담보 활용이 가능한지 법적 검토 등을 해야 한다. 신용등급에 따라 어느 정도로 담보가치를 매길지 연구도 필요하다. 이러한 절차를 거치면 실제 도입까진 1년 안팎 정도가 걸릴 수 있다고 했으나 다른 중앙은행 중에선 3년까지 걸린 사례도 있다.

이처럼 복잡한 과정을 거치더라도 은행 입장에선 수요가 있다는 것이 한은의 평가다. 한은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선 뱅크런이 발생하면 가지고 있는 채권이 빠르게 소진되기 때문에 이왕이면 자산 대부분을 차지하면서도 쓸 곳이 없는 대출채권을 평소에 평가를 받아 놓고 있다가 위기 시 중앙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지원 받을 수 있다면 활용할 이유가 충분하다”며 “대출채권 대신 국고채 등 채권을 활용할 수 있다면 사실상 담보 효과가 넓어지는 효과가 나타난다”고 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한국은행 대출제도 개편 방향 기자설명회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한은



최종대부자 역할 확대할수록 정보 관여 깊어질 수밖에


이러한 대출제도 개편 방향이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한은은 결과적으로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의 수시 정보(②번)와 은행의 대출채권 정보(③번)를 확보하게 된다. 금통위원들이 한은법 80조에 따라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에 대해 신속하게 유동성 지원을 결정하려면 사전에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금통위가 긴급여신을 결정한 이후 금융기관의 업무와 재산 상황을 조사·확인할 수 있는 것과는 별개로 여신 제공 전에 정보를 확보해두겠다는 것으로 새마을금고와 같은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의 상황을 더 깊게 들여다보겠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한은은 이미 금융당국과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라고 자신했다.

한발 더 나아가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의 대출채권까지 적격담보에 포함하려면 더 많은 권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은행보단 신용 위험이 높기 때문에 한은이 충분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도록 공동검사와 자료제출요구권에 관한 제도적 여건이 갖춰지면 그 이후에나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의 대출채권을 적격담보 범위에 넣을지 말지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한은이 뱅크런을 막기 위한 최종대부자 기능에 적극적일수록 개별 금융기관의 지급 능력이나 유동성 사정 등을 면밀히 살필 수밖에 없다. 다만 이같이 적극적인 행보와 관련해 한은은 대출 심사를 위해 정보를 확보해두는 차원이지 중앙은행의 역할과 기능을 전면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한은 관계자는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빌리는 사람의 주머니 사정을 알아보지도 않고 돈을 빌려줄 수 없는 것처럼 중앙은행도 마찬가지로 자금을 지원하려면 은행 등 금융기관의 담보나 유동성 사정을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Bank of Korea)을 중심으로 국내 경제·금융 전반의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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