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발은 대략 10년 이상의 시간과 1조 원 이상의 자금이 들어가는 장기전인 만큼 꾸준함이 중요하다. 그러나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단기 상황에 따라 너도나도 비슷한 약을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가 유행이 지나면 슬그머니 개발을 중지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런 사이 주가 급변동 등으로 투자자의 피해만 속출하고 업계의 신약 개발 역량은 발전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9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신약 개발에는 후보 물질 발굴과 스크리닝에 3~4년, 최적화에 1~3년, 비임상시험과 독성시험에 1~3년, 임상시험 5~6년, 상용화 1~2년 등의 기간이 필요하다. 연구개발(R&D) 비용은 약마다 다르지만 1조 원은 기본이다.
그렇기 때문에 후보 물질 발굴부터 상용화까지 모두 수행할 수 있는 기업은 대형 제약사들뿐이다. 소규모 기업은 임상 1상 정도를 끝내고 큰 기업에 기술을 파는 전략을 취한다. 대형 제약사들은 소규모 기업이 개발한 초기 단계의 약물을 사오거나 기업 자체를 인수한 뒤 임상시험을 거쳐 상업화하는 전략을 쓰기도 한다. 글로벌 신약 개발 업계는 자체 개발뿐 아니라 기술 수출과 도입, 인수합병(M&A) 등이 일상적으로 일어날 정도로 역동적으로 돌아간다.
신약 개발은 어떤 미충족 수요에 대응하는 약을 만들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설정하고 어느 단계까지 개발해 어떻게 엑시트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뒤 착수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과거 사례를 보면 신약 개발 착수 선언이 유행처럼 번지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코로나19다. 수많은 국내 기업이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선언했지만 성공한 기업은 백신을 개발한 SK바이오사이언스(302440)가 사실상 유일하다.
제약 업계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처럼 테마가 형성되면 대형 제약사든 벤처기업이든 너도나도 관련 신약을 개발하겠다고 선언하는데 이들 중에는 진정성이 없는 곳도 상당하다”면서 “실패한 임상을 실패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거나 반대로 신약 개발을 흐지부지 중단하기 위해 일부러 실패할 수밖에 없는 임상을 설계하는 곳도 목격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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