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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팹리스 톱 50' 중 국내업체 1곳뿐…'3중고'에 우는 토종 팹리스 [biz-플러스]

[변곡점 맞는 K반도체 40년]

서울경제 DB




반도체 산업의 ‘두뇌’ 격인 팹리스(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이 미국이나 대만은 물론 중국에도 밀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팹리스 기업들의 글로벌 매출 비중이 1%대에 그치는 가운데 올 들어 대다수 기업이 적자로 돌아서 생존까지 위협받고 있다.

7일 시장조사 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국내 상위 10대 팹리스 업체(2022년 매출 기준·삼성전자 시스템 LSI 사업부 제외) 중 글로벌 순위에서 50위권 안에 이름을 올린 건 LX세미콘 한 곳뿐이었다. 2위인 어보브반도체가 80위에 그쳤고, 실리콘마이터스(82위)·제주반도체(91위)·텔레칩스(95위) 등 100위 안에 포함되는 업체도 5개에 불과했다.

지난해 기준 2048억 달러에 달하는 글로벌 팹리스 매출액 중 국내 10대 기업의 매출 합산치는 24억 달러 수준으로 비중은 1.17%에 그쳤다. 이는 엔비디아의 2분기 매출액(135억 달러)의 18%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나마 유일하게 조 단위 연간 매출을 올리는 LX세미콘을 제외하면 비중은 0.5% 아래로 내려간다. 심지어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호황기 영향으로 1년 만에 전 세계 팹리스 매출액이 11.5% 증가하는 동안 국내 10대 업체들의 매출 합산액은 7.6% 감소했다.

‘유니콘’은 고사하고 생존 경쟁…상위 10개사 중 절반이 ‘적자’


반도체 업황이 악화한 올해 들어선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비상장사인 실리콘마이터스를 제외한 9개 업체 중 5곳(어보브반도체·넥스트칩·픽셀플러스·피델릭스·코아시아)이 올해 상반기 적자를 기록했다. 그나마 이익을 낸 회사들의 사정도 좋지는 않다. 작년 상반기 2375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던 LX세미콘은 올해 상반기 전년 대비 80% 급감한 469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나머지 회사 중에서도 100억 원 이상 이익을 낸 곳은 한 곳도 없었다. 퀄컴, 엔비디아 등 세계 팹리스 시장의 65% 이상을 점유한 미국, 연 매출 23조 원에 이르는 팹리스 미디어텍을 보유한 대만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중국조차도 일찍이 팹리스 육성을 시작해 이미 3000여 개가 넘는 중소업체들이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토종 팹리스 업체인 네메시스의 왕성호 대표는 “인공지능(AI), 전장 등 반도체 신규 시장이 열리고 있는 상황에 발맞춰 팹리스 육성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재 부족·좁은 내수·지원 미흡…계속되는 악순환


한때 국내에도 ‘팹리스 붐’이 일었던 적이 있다. 1990년대 후반 설립된 1세대 팹리스인 코아로직·엠텍비전 등의 업체는 피처폰 열풍을 타고 2000년대 초중반 전성기를 맞았다. 카메라용 칩 등을 삼성·LG전자라는 안정적인 고객사에 납품하며 매출 1000억 원을 훌쩍 넘겼고 당시 글로벌 상위 20개 팹리스 명단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열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시장 대응에 실패하며 2010년대 들어 수익성이 악화했다. 코아로직은 현재 중국계 전자 회사에 매각된 상태이고 엠텍비전은 2014년 상장폐지됐다.

팹리스 붐이 가라앉고도 10년이 지났다. 팹리스 업계에서는 적자 전환하거나 창업주가 떠나면서 바이오 등 신산업으로 아예 업종을 바꾸는 회사가 속출했다. ‘유니콘 팹리스’가 나오기는커녕 산업의 존폐 여부를 우려해야 하는 실정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인력 부족, 좁은 내수 시장, 부실 지원’이라는 삼중고가 팹리스 산업 발전의 한계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인재 부족이다. 영세 업체 위주로 생태계가 꾸려지다 보니 인재를 유인할 자금력이 부족하다. ‘공장 없는’ 사업 모델의 특성상 우수한 설계 인재 유치가 팹리스 사업의 성공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석·박사급 고급 인력은 고사하고 학부생조차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국내 반도체 산업 분야의 기술 인력 부족 수는 △2017년 1423명 △2018년 1528명 △2019년 1579명 △2020년 1621명 △2021년 1752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그나마 팹리스 업체가 사람을 구한다 해도 일정 기간 이상 경력을 쌓은 인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으로 줄줄이 유출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내 팹리스 업체 대표는 “전기전자공학 전공자를 구하는 것도 어려워 비전공자를 교육시켜 현장에 투입하는 게 최선이 된 지 오래”라고 말했다.

설계 인력의 부재는 기술 개발 한계로 직결된다. 고객사들이 원하는 설계 기술과 사양은 하루가 다르게 다양해지는데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회사 하나를 제대로 먹여 살릴 ‘스타 제품’의 부재로 이어진다. 2000년 이후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을 일군 인텔이나 엔비디아,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무선 시스템온칩(SoC)를 내세운 퀄컴 등만 봐도 스타 제품의 중요성을 체감할 수 있다. 스타 제품이 없다 보니 수익성 낮은 제품을 국내 대기업 한두 곳에 납품하는 식으로 사업구조가 굳어진다. 고객사 풀이 한정되다 보니 가격 경쟁에서도 협상력을 잃고 수익성이 더욱 하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왕성호 네메시스 대표는 “스타 제품이 안 나오다 보니 액정표시장치(LCD) 드라이버 등 기술 장벽이 낮은 단품을 삼성·LG에 납품해서 먹고사는 비즈니스 모델이 국내 팹리스 업계에 정착됐다”며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무너지기 너무 쉬운 취약한 구조”라고 강조했다.

팹리스 94곳이 지원금 585억 나눠…"스타 제품은 꿈도 못 꿔"


AP연합뉴스


국가 지원도 실리와는 거리가 멀다. 양산이나 사업화 대신 연구개발(R&D)에 치중돼 있을 뿐더러 많지 않은 금액을 여러 개 과제가 나눠먹는 구조여서다. 일례로 올해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반도체 분야 신규 지원 대상 과제 분석 결과 지원금 585억 원을 94개 세부 과제가 나눠 갖는 구조다. 단순 계산해봐도 개별 과제당 지원금은 6억 원에 불과하다. 반도체 공정 미세화에 따라 설계 개발 비용이 점차 높아지는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기는 어려운 구조다.

부가적으로는 대규모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의 부재도 영향을 미쳤다. 작은 스타트업까지 ‘백화점식’ 칩 제작을 해주는 대만 TSMC와 달리 삼성전자·DB하이텍 등 국내 업체들의 경우 생산능력(CAPA)과 수익성 한계로 스타트업보다는 대형 고객사 위주로 사업을 전개한다는 것이다. 반도체 호황이었던 2021~2022년 글로벌 팹리스 업체들이 최고 실적을 연달아 경신하며 승승장구했음에도 국내 팹리스들은 파운드리 부족으로 물건을 만들지 못해 오히려 수익성이 하락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겪기도 했다.

'팹리스→디자인하우스→파운드리→패키징(후공정)으로 이어지는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 전반의 부실을 막기 위해서는 적재적소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장조사 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2025년 팹리스 시장 규모는 메모리반도체(2205억 달러)의 2배인 4773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대규모 시장이라는 뜻이다.

유재희 반도체공학회 부회장은 “반도체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대형 팹리스 업체의 존재는 필수적”이라며 “팹리스 업체와 학계 간 인력 매칭, AI·전장 등 신규 시장 진입을 위한 국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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