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채 수익률이 1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연내 금리 하락에 베팅한 국내외 장기채권 관련 상장지수펀드(ETF) 투자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의 긴축적 통화정책이 연내 막을 내릴 것이라는 기대로 개인투자자들은 올 들어 3조 원에 달하는 장기채 ETF를 사들였지만 고금리가 장기화할 가능성에 손실 폭은 계속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4일 편드 평가사 KG제로인에 따르면 국내 상장된 미국채 30년물 투자 ETF는 지난달 27일을 기준으로 최근 석 달 동안 평균 13.99% 하락했다. 같은 기간 국내 국채 10년·30년물 및 미국채 10년물 투자 ETF의 평균 수익률이 -5%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30년물 미 국채 ETF 손실 폭이 두드러진 셈이다.
개별 상품으로는 레버리지 상품인 ‘ACE 미국 30년 국채 선물레버리지(합성H)’의 최근 3개월 수익률이 -26.40%로 최대치를 기록했고 ‘KBSTAR 미국 장기국채 선물 레버리지(합성H)’ 역시 같은 기간 20.17% 급락했다.
수익률이 계속 떨어졌지만 미국이 연내 긴축 기조를 끝내고 금리가 곧 정점에 이를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개인투자자들은 소위 ‘물타기’ 투자로 꾸준히 장기채 ETF를 사들였다. 연초 이후 국내 증시에 상장된 국내외 채권 ETF 중 개인투자자 순매수 1~3위를 각각 기록한 ‘ACE 미국 30년 국채 액티브(H)’와 ‘TIGER 미국채 30년 스트립액티브(합성H)’ ‘KODEX 미국채 울트라 30년 선물(H)’ ETF는 4일 각각 연저점을 갈아 치웠다. 이들 세 개 ETF에는 최근 3개월 동안 1557억 원의 순매수가 몰렸다.
국내외 10년·30년물 국채에 투자하는 ETF의 전체 순자산은 올 들어 2조 9656억 원이나 증가했다. 금리 상승이 막바지에 달했다는 관측에 최근 석 달 동안 1조 2198억 원이 불어났다. 해외에 상장된 미 국채 ETF까지 범위를 확대하면 투자 규모는 더욱 커진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미 국채 수익률을 3배로 추종하는 ‘디렉시온 트레저리 불 3X 셰어스(티커:TMF)’는 올 들어 서학개미 순매수 1위에 오를 만큼 인기였지만 주가는 연초 이후 반 토막 수준이다.
미국의 장기 국채 금리가 떨어지기는커녕 상승세를 지속하는 것은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연준 인사들이 고금리 지속 등에 대한 매파성 발언을 계속 내놓는 데다 미국의 제조업 및 고용 지표가 예상보다 양호하게 나오고 있어서다. 국제유가가 상승세인 것도 부담이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주요 기관들이 설정한 심리적 저항선인 4.3% 금리가 깨진 후 4.5%까지 단숨에 무너져 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됐다”며 “금리가 오를 만큼 올랐다는 심리가 역풍을 맞은 형국”이라고 설명했다.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3일(현지 시간) 4.81%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 8월 이후 1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국이 당분간 금리 인하를 단행할 주요 이벤트가 발생할 확률이 낮은 만큼 미 국채금리는 불안 심리 속에 강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박민영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금리 인상이 종료됐다는 시각도 있지만 내년 인하 시점을 놓고는 불확실성이 크다”고 짚었다. 강송철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금리 변동에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단기채 상품 위주로 접근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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