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모로코 출장길에서 잠재성장률 하락 가능성을 수차례 언급한 가운데 한은이 재추정 작업에 나서면서 우리 잠재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지 관심이 고조된다. 잠재성장률은 중립금리와 직결돼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중립금리는 경제가 인플레이션 압력 없이 잠재성장률 정도의 성장을 할 수 있는 이론적 금리 수준을 말하는데 잠재성장률이 낮아지면 중립금리도 하락할 수밖에 없다.
다만 금리 인상 사이클이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현시점에서 잠재성장률 하락을 공식화하는 것은 한은으로서도 부담스럽다. 금리 고점 유지 기간과 금리 인하 시점이 중요한 지금 잠재성장률을 하향 조정한다면 현재 금리 수준이 긴축적이라는 인식이 생겨 금리 인하 기대감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은 내부에서는 실무적인 문제 또한 고려하고 있다. 팬데믹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야 잠재성장률에 미칠 영향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는데 아직 일부 영향이 남아 있다. 팬데믹 영향을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한 국제적인 합의도 아직 없다. 정확한 측정을 위해서는 국내총생산(GDP) 데이터를 추가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잠재성장률은 장기 시계열이 필요한데 마침 국민계정 기준년을 개편하는 작업이 내년 하반기에 마무리된다. 한은 관계자는 “경제 상황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발표 시점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한은의 발표 시점은 불확실하지만 학계에서는 잠재성장률이 점차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에 대체로 동의한다. 가장 큰 요인은 인구구조 변화다. 합계출산율은 2022년 0.78명에서 올해 역대 최저인 0.6명대로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그간 자본축적이 이뤄지면서 자본 투입 기여도가 점차 하락하는 상황인데 노동 투입 기여도마저 빠르게 떨어지는 것이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생산성을 높이는 일인데 이마저도 제자리걸음 중이다. 한은 추정 결과 총요소 생산성의 기여도는 2016~2020년 1.0%포인트에서 2021~2022년 0.9%포인트로 오히려 0.1%포인트 감소했다. 한계기업을 제때 시장에서 퇴출하지 않으면 신생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면서 비효율성이 커지는데 한국경제인연합회가 올해 5월 분석한 결과 상장사 17.5%가 한계기업으로 나타났다. 2016년(9.3%)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측정 방식에 따라 편차가 크지만 주요 기관들 역시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점차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20~2030년 1.9%에서 2030~2060년 0.8%로 낮아진다고 전망했다. OECD 38개국 가운데 2030년 이후 잠재성장률이 한국과 같은 곳(캐나다)은 있어도 낮은 국가는 한 곳도 없다. 프랑스(1.2%), 일본(1.1%), 미국(1.0%) 등 이미 성숙기를 지난 주요국보다 낮아진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본 수익률 하락은 불가피하더라도 노동을 효과적으로 배치하면서 생산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며 “정부 초반에는 이러한 개혁 과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졌고 선거를 앞두고 더 추진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잠재성장률과 중립금리 하락이 중장기적으로 통화정책 여력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립금리 수준이 낮아지면 금리 인상·인하 모두 어려워진다. 인하할 때는 제로금리까지 거리가 줄어들고 인상할 때는 경제가 받는 충격이 커진다. 특히 최근 미국에서는 중립금리가 팬데믹을 거치면서 올랐다는 분석이 일각에서 제기되는데 우리나라는 오히려 중립금리가 낮아질 것을 고민하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미국의 고금리가 장기화하더라도 우리나라는 금리를 내려야 한다면 지금의 한미 금리 역전 상태가 장기 고착될 수 있다.
이 총재가 12일(현지 시간) 국제금융협회(IIF) 대담에서 “한국은 심각한 인구구조 문제로 잠재성장률과 중립금리가 낮아질 것인데 글로벌 중립금리가 올랐을 때 우리 중립금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중요하다”며 “앞으로 통화정책 운용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시사점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 미국과 달리 빠르게 성장하다 이제야 성숙 단계로 진입하기 때문에 잠재성장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며 “다만 다른 나라보다 잠재성장률 하락세가 빠른 것은 문제인 만큼 생산성을 높이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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