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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홍 "10개월간 논의 진척 없어" 강행 의지…의협 "강력 투쟁" 엄포

[의대 정원 확대 공식화]

응급실·소아과·지방 진료대란에

필수 의료인프라 붕괴 우려 커져

의협은 긴급회의 열고 대응 예고

정부, 19일 예정된 발표는 미룰듯

조규홍(가운데) 보건복지부 장관이 17일 서울 중구 서울시티타워에서 열린 제5차 의사인력전문위원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보건복지부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를 위한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필수의료·지역의료 붕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파격적인 의대 정원 확대 논의로 이어졌고 의료계의 반대를 넘고서라도 강행하겠다는 분위기다. 이에 의사협회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 강력한 투쟁에 나서겠다며 엄포를 놓는 등 양측 간 신경전이 격화되고 있다.

17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제5차 의사인력전문위원회를 열고 “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가 총 14차례에 걸쳐 논의를 해왔지만 10개월 동안 논의가 진전되지 않았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의대 정원 확대를 공식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아직까지 의대 정원 확대 규모가 결정되지 않았다는 게 정부의 공식 입장이지만 앞으로 의협 등 의료계와 협상에 나설 때 주도권을 잡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다만 정부는 19일로 예정됐던 의대 정원 증원 숫자와 추진 계획 발표를 추후로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의대 정원을 파격적으로 늘리겠다는 방침은 변함이 없다.

의대 입학 정원은 2006년 이후 17년간 3058명으로 묶여 있다. 정부는 2000년 의약분업을 계기로 줄었던 351명(10%)만큼 다시 늘리는 방안, 정원이 적은 국립대를 중심으로 521명을 늘리는 방안 등을 검토하다가 1000명 이상 파격적으로 증원하는 방안을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의대 입학 정원을 파격적으로 늘리려는 배경에는 이대로 가면 응급실·외과·소아과·지방의료 등 필수의료 인프라가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의료 현장에서는 응급실·중환자실 의료진 부족 등으로 응급 환자가 치료할 병원을 찾아 전전하다가 안타깝게 숨지는 소위 ‘응급실 뺑뺑이’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올해 3월 대구에서는 10대 청소년이 4층 건물에서 떨어진 후 2시간 넘게 응급실을 찾다가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구급차에서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5월에는 경기 용인시에서 후진하던 차량에 치인 70대 노인이 구급차에서 생을 마감했다. 소아청소년과가 잇따라 폐업하며 소아 환자와 보호자들이 병원 문이 열리기 전부터 몇 시간씩 대기하는 ‘소아과 오픈런’도 일상이 됐다.

지방의료 붕괴도 심각하다. 강원도 속초의료원 응급실은 전문의 5명 가운데 3명이 잇따라 퇴사하며 올해 1월부터 주 4일로 단축 운영하는 등 파행을 겪었다. 응시자가 없어 인력 수급을 못 하다 전문의 연봉을 4억 원대로 올리고 응급의학과 전공의 4년 수료자까지 응시 자격을 확대한 후 부족한 의사 수를 메울 수 있었다.



전문가들과 정책연구기관·시민단체도 의대 정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현재 의료 이용 수준으로 평가한 의사 인력의 업무량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인구 최대치가 전망되는 2050년 기준 2만 2000명 이상의 의사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사이의 인구당 의사 수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 격차를 지금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당장 2535명의 의대 정원 증원이 필요하다. 김 교수는 “의대 정원을 당장 최소 1000명 이상 늘리되 필수의료에 충분한 인력이 투입될 수 있도록 제도를 함께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안에 대해 정치권은 여야 모두 이견이 없이 긍정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는 상태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의료 인력 확충을 위한 의대 정원 확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2025년에는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추산에 따르면 2035년 기준으로 2만 7232명의 의사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 역시 “의대 정원 확대는 정부 정책으로 추진하면 된다”며 “다만 공공의대 설립, 지역의대 신설, 지역의사제 도입을 위한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의 관건은 의료 현장의 최전선에 있는 의료계를 어떻게 설득하느냐다. 정부는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의료계는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수가를 올리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이날 의협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은 국가 전체 의료를 파멸로 직행하게 할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의사 출신인 박인숙 전 의원도 “필수의료·지역의료 붕괴에 대한 근본 대책이 빠진 채 의대 정원만 파격적으로 늘리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비싼 생수를 붓는 격”이라며 “의사 수 증가는 수요 증가로 이어져 국민 의료비는 물론 건강보험료도 폭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이날 오후 7시 서울 용산 의협회관에서 열린 ‘긴급 의료계 대표자 회의’ 전 기자들과 만나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 방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할 경우 14만 의사와 2만 의대생은 모든 수단을 동원한 강력 투쟁에 들어갈 것”이라며 “2020년 파업 때보다 더 큰 불행한 사태가 나올 수 있다”고 총파업과 집단 휴진 카드를 꺼낼 수 있음을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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