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핵심 대외 확장 정책인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10주년을 맞아 개최된 ‘제3회 일대일로 정상포럼’을 취재하기 위한 과정은 마치 고대 중국에서 서방으로 향하던 실크로드를 이동하는 것처럼 험난했다.
올해 중국의 최대 외교 행사인 정상포럼을 위해 포럼 사무국은 취재를 희망하는 각국 기자들에게 이미 한 달여 전인 9월20일까지 신청을 마치라고 지난달 초 통보했다. 신청을 한 뒤에도 3주 가량의 심사 과정을 거친 이후에야 취재 승인이 떨어졌다.
현장 취재나 미디어 센터 출입을 하기 위해선 출입증을 직접 수령해야 했다. 중국 외교부 담당자는 이를 13일 오후 10시(현지시간)가 넘어서야 알렸다. 출입증을 받으려면 14~16일(오전 8시~오후 6시) 사흘 동안 본인이 직접 베이징의 한 호텔로 가야 했다. 지난 15일 휴일이었음에도 호텔 로비는 출입증을 받으려는 각국 기자들로 북적였다.
현장 취재를 위해서는 또 다른 절차를 거쳐야 했다. 18일 오전 10시 열리는 개막식과 오후 6시30분(예정) 개최되는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위원 겸 외교부장의 포럼 결산 기자회견에 참가하려면 사전 등록이 필요했다. 선착순이라고는 했지만 통보 직후 신청하고도 떨어진 경우가 있고 뒤늦게 신청했지만 선발된 사례도 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선정되는지 문의했지만 “알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운이 좋게도 개막식 현장 취재의 기회를 얻었다. 16일 오후 6시가 다 된 시간에 ‘11호 버스’라는 이름의 위챗(중국판 카카오톡)방이 개설됐다. 한국 매체에는 6개사에게만 현장 취재 기회가 제공됐다.
중국 외교부 담당자는 당장 코로나19 유전자증폭(PCR) 검사가 필요하다고 알렸다. 개막식에 참석하려면 행사 시작 12시간 이내에 검사를 받아 음성이라는 증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개별적으로 검사를 받거나 정해진 장소(국가컨벤션센터호텔 로비)에서 17일 오후 1~4시)에서 받을 것을 안내했다. 지난 3월 열린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이후 처음 받는 코로나19 PCR 검사였다. 당시에는 전날 지정 호텔에 묵으며 검사를 받아야 했던 것과 비교하면 합숙 의무는 사라져 통제 조치가 다소 완화됐다.
여전히 코로나19 재감염, 3차 감염 등의 사례가 발생하고 있지만 PCR 검사 의무는 중국에서도 사라진 상태다. 시 주석을 비롯한 각국 정상급 대표단 등이 참석하는 행사를 감안해서인지 혹시 모를 사태를 방지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7개월 여만에 사전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17일 오후 지정 호텔로 향했다. 이미 엄청난 인파의 취재진이 가득했으나 다행히 동료 기자들의 도움으로 긴 줄을 서진 않았다. 동료들의 경우 꼬박 1시간10분을 기다린 후에야 검사를 받았다. 아무런 증상이 없음에도 혹시라도 양성이라는 결과가 나타나 어렵게 얻은 취재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걱정도 들었다. 다행히 아무런 통보를 받지 않아 당일 취재는 가능했다.
대망의 정상포럼 개막식 날이 밝았다. 취재진은 모두 미디어센터가 위치한 국가컨벤션센터로 오전 6시까지 집합해야 했다. 새벽 안개를 헤치며 집합 장소에 도착하자 미리 준비된 도시락이 제공됐다. 샐러드와 샌드위치, 우유, 과일까지 상당한 배려가 느껴졌다. 식사를 마치고 6시45분경 각자 배정된 12대의 버스에 올랐다.
개막식이 열리는 인민대회당까지 출근길 러시아워룰 뚫고 도착하니 8시가 다 됐다. 인민대회당에 처음 들어서는 외신 기자들은 인증샷을 남기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유경험자들은 서둘러 입구를 향해 뛰었다. 선착순 입장을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섰으나 사방에서 끼어든 인원들로 인해 금세 입구는 아수라장이 됐다. 서로 부딫히며 밀어내기를 반복하다가 인민대회당에 겨우 들어설 수 있었다.
인민대회당 보안검색대에서는 공항 출입국보다 더 까다로운 검색이 이뤄졌다. 스마트폰은 1대만 휴대가 가능했고, 보조배터리는 아예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다. 생수를 비롯한 음식물도 일체 반입이 금지됐다.
검색대를 통과해 다시 2층 행사장으로 향하기 위해 줄을 섰다. 잠시 후 “이 쪽으로 오라”는 안내에 줄은 흐트러졌다. 방송 장비를 맨 촬영기자를 비롯한 체격이 좋은 남성 기자들이 앞에서 뛰기 시작했다.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행사장이 아닌 또 다른 대기실이었다. 거친 숨을 내쉬며 땀을 닦던 외신 기자들은 “이게 중국이다”, “우리가 가는 길이 일대일로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곳에서 다시 30여분을 기다리고 나서야 비로소 개막식이 열리는 행사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단상을 중심으로 양쪽에 세계 각국의 국기가 배열됐다. 중국은 일대일로에 동참한 국가가 150여개에 달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현장에는 태극기도 자리했다.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 일대일로 참가국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지만 중국 기준으로는 참가국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날 해양협력포럼에 참석한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도 “해양협력포럼에 초청받아 검토하던 중에 외교부에서 가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받아 초청받은대로 온 것”이라며 “정부대표단, 그런 특별한 의미는 부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중앙에는 앞줄부터 정상, 뒤로는 참가국의 관계자들 좌석이 배치됐다. 취재진의 좌석은 맨 뒤에 별도로 마련됐다. 맨 앞줄 가운데 자리는 주빈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오른쪽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왼쪽에는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각각 자리했다. 푸틴 대통령 오른쪽으로는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좌석이 배치됐다. 자리마다 각국 국기와 이름표, 생수, 물컵, 식순표 등이 배치됐다. 생수는 한 병에 한화 약 5500원인 백두산(중국명 장백산) 천연광천수가 올라갔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는 것처럼 중국과 러시아 정상 옆에는 보안 요원이 배치됐다.
오전 9시45분이 되자 착석해달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고 장내 정리 정돈이 이뤄졌다. 이어 개막식이 예정된 10시를 조금 넘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입장했고, 메인 출입구를 통해 시 주석을 필두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각국 정상급 대표단이 입장했다.
딩쉐샹 중국 국무원 부총리의 사회로 개막식에 막이 올랐다. 이윽고 시 주석이 기조연설에 나서 일대일로 10주년의 성과와 향후 목표 등에 대해 약 25분간 발표했다. 이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아비 아머드 알리 에티오피아 총리,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등의 순서로 연설했다. 중국은 각국 대표단과 취재진을 위해 중국어, 영어, 프랑스어, 인도네시아어, 아랍어, 베트남어, 러시아어 등 14개 언어로 동시통역 서비스를 제공했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포함되지 않았다.
행사 이후에도 개별 행동은 금지됐다. 인민대회당을 나와 각자 타고온 버스에 그대로 탑승해 다시 미디어센터로 돌아온 이후에야 자신이 원하는 장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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