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란 발을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딛는 행위다. 가장 단순한 행위지만 현대인들은 이를 통해 마음 속 고민을 치유한다. 철학자, 예술가에게 걷기는 아이디어를 주는 자극제가 된다.
신간 ‘걷기의 즐거움’은 이같은 걷기에 착안해 시인, 소설가, 철학자 등의 작품에서 걷기 부분을 발췌해 만든 책이다. 걷기에 대한 글을 쓴 이들의 면면은 제인 오스틴, 핸리 데이비드 소로, 찰스 디킨스, 버지니아 울프, 마크 트웨인, 조지 엘리엇 등 화려하다. 작품의 행태도 시, 에세이, 소설 등 다양하다.
독자들은 이들의 작품에서 걷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서 나온 걷기가 대표적이다. 책에서 발췌한 부분은 엘리자베스의 언니 제인이 빙리가에서 간호받게 되자 엘리자베스가 3마일(약 4.8km)되는 거리를 걸어가는 내용이다. 엘리자베스는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들판을 가로 지르며 걷는다. 소설에서 이 에피소드는 엘리자베스가 빙리의 친구 다이시와 친분을 쌓게 되는 계기로 작용한다. 걷기에 주목한 이 책에서 이 부분만 따로 보면 상류사회와 그 예법을 풍자한 작가의 의도를 더 선명하게 엿볼 수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걷기’ 에세이에서는 그가 걷기를 예찬하는 이유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에세이에서 적어도 하루에 네 시간은 걸어야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은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숲과 언덕, 들판을 헤매며 산책한다고 했다. 그는 “낙타는 걸으면서 사색하는 유일한 짐승이라고 한다”며 “낙타처럼 걸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마크 트웨인은 걷기가 즐거운 이유를 ‘대화’에서 찾는다. 15~20분 동안 다른 사람과 산책하다보면 각자가 아는 모든 것에 대해 토론하고 잘 알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서도 끝없이 대화를 진행하게 된다. 하루 산책으로 다양한 주제를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외에 찰스 디킨스의 글에서 저녁 늦은 시간 도시를 걸어 다니며 노숙자가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샬롯 브론테의 글에서 빅토리아 시대 여성이 도시를 걸으며 느끼는 해방감을 묘사했다.
책을 읽고 나면 한 걸음 한 걸음이 어제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책을 엮은 수지 크립스가 “이 책이 독자들을 밖으로 불러내 인간 존재의 토대가 되는 걷기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더불어 스스로 살아있다는 느낌도 심어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고 말한 이유다. 1만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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