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를 놓고 정부와 의료계의 논의가 한 달 만에 다시 시작됐다. 다만 정부가 2025년 대학 입시에 필요한 의대 정원 확대를 위해 대학별 수요 조사에 나선다고 밝히자마자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조사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함께 반드시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못을 박았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까지 2025년 입학 정원 배정을 완료하고 추가 증원을 검토하는 2단계 방식으로 의대 정원을 확대할 방침인데 의료계와 소통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2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대 수요 조사와 의학교육점검반, 정책패키지 마련 등의 내용을 담은 ‘지역 및 필수의료 혁신이행을 위한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우선 정부는 이날부터 의대를 대상으로 학생 수용역량과 증원 수요 조사에 착수했다. 복지부와 교육부가 합동으로 각 대학교와 교원·시설 등과 같은 교육 인프라와 투자 계획을 조사하고 각 대학은 내부 협의를 통해 증원 수요를 작성해 정부에 알리는 방식이다.
각 대학에서 제출한 증원 수요에 대한 타당성 검토도 시행된다. 복지부는 교육부 관계자와 의학계·교육계·평가전문가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의학교육점검반’을 구성할 계획이다. 의학교육점검반은 11월 중 의대가 제출한 서류를 검토하고 현장점검팀의 점검 결과를 토대로 점검 보고서를 작성한다. 복지부는 작성된 수요 조사를 바탕으로 의대 증원 규모를 정하고 교육부가 후속 절차를 진행해 2024년 상반기까지 대학별로 정원 배정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조 장관은 “대학에 증원 여력이 있는 경우 2025학년도 정원에 우선 고려하고 증원 수요는 있지만 추가적인 교육 역량을 확보해야 하는 경우는 2026학년도 이후 단계적으로 증원할 것”이라며 “의사 인력 확충의 시급성을 감안해 2025학년도 정원은 기존 대학을 중심으로 우선 검토하고 지역의 의대 신설도 지속해서 검토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2단계 로드맵을 발표한 직후 열린 의료현안협의체 회의에서 의협은 사실상 정부 방침에 어깃장을 놓은 입장을 발표했다. 의협은 “각 대학이 정원을 얼마나 늘리기를 희망하는지 조사하는 수요 조사는 이해상충에 따라 왜곡된 조사로 전락하게 될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며 “의대 정원 확대를 바라는 대상의 희망만으로 결과가 도출된다면 조사의 객관성은 상실되고 과학적인 근거 분석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의협은 이어 “객관적이고 과학적이지 못한 근거가 바탕이 된 잘못된 정책은 국가 재정의 낭비와 사회적 부작용이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미 일부 의료계 강경파 인사들은 공개적으로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과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전날 의협 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현재 정부가 졸속 강행하는 의대 정원 확대는 대한민국 의료의 근간을 위태롭게 할 포퓰리즘임을 분명히 하고 이를 절대 거부한다”고 밝혔다.
의협이 사실상 정부의 수요 조사 방침에 딴지를 놓으면서 의료계와의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고민이 커지게 됐다. 정부는 다음 달 2일 보건의료 전문가, 소비자단체 등이 참여하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등 사회적 논의도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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