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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기업 제일 무섭다"…지구 400바퀴 돈 '기업인 원팀' 기적 쓴다

■엑스포 결정 D-5…오너DNA 앞세워 역전 발판 마련

초기 "유치어렵다" 부정적 시각

총수·CEO 지구촌 누비자 '반전'

'반집 계가 싸움' 수준까지 추격

최태원 유치위원장 180개국 접촉

이재용·정의선·구광모·구자열 등

해외 나갈때마다 부산 한표 호소

이재용(왼쪽)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올해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30 부산엑스포 공식 리셉션에서 함께 목발을 들어 보이며 미소 짓고 있다. 최 회장의 목발 ‘부상 투혼’은 부산엑스포 유치에 대한 기업인들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명장면으로 평가받는다. 연합뉴스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전이 초박빙의 접전으로 펼쳐지고 있다. 국제박람회기구(BIE)는 이달 28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총회를 열고 2030 엑스포 개최국을 선정할 예정이다.

우리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경쟁 국가와 비교해 본격적 득표 활동을 개시한 시점이 1년가량 늦어 “게임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판세가 한 치 앞을 보기 어려운 ‘반집’ 계가(計家) 싸움까지 접어들었다는 게 정부 내부의 평가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23일 “사우디 측에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한국 기업이 제일 무섭다’고 하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며 “지구를 400바퀴 돌며 원팀으로 뛰어준 기업인들이 역전의 발판을 놓았다”고 말했다.

2030 엑스포는 182개 BIE 회원국들이 한 국가당 한 표씩 행사하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유엔이나 국제통화기구(IMF)처럼 국가적 영향력이나 경제력에 따라 더 많은 표를 행사하는 방식이 아니다. 바꿔 말하면 한 나라라도 더 많은 국가를 훑은 후보가 더 유리하다는 이야기다.

이 같은 저인망 공략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인사들이 바로 재벌 총수와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다. 고(故) 정주영·이건희 회장이 각각 1988 서울 올림픽과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성사시켰던 것처럼 국내 기업인들도 국가적 사명감을 갖고 있다는 게 재계 인사들의 설명이다.

정의선(가운데) 현대차그룹 회장이 올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30 부산엑스포 공식 리셉션에서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유럽의 중진국 정도 되는 국가조차도 국내 대기업 총수가 방문한다고 하면 대통령부터 총리까지 직접 줄을 서 기다릴 정도”라며 “대기업의 요청이 정부보다 더 ‘말발’이 셀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부산엑스포 공동유치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대표적 사례다. 최 회장이 올 6월 프랑스 파리를 방문해 목발을 번쩍 들며 부산 지지를 호소한 순간은 엑스포 유치 여부를 떠나 기업인들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한 장면으로 회자된다. 최 회장과 SK그룹 CEO들이 만난 고위급 인사만 180여 개국, 900명이 넘는다. 그는 이달 초부터 이미 프랑스 파리에 가 있었지만 최 회장을 만나고 싶다는 유럽·중남미 국가들의 요청이 이어지면서 최근 한 달도 못 되는 기간에 7개국을 직접 방문했다. 거리로 환산하면 2만 2000㎞, 지구 반 바퀴에 해당하는 대장정이다.

삼성전자가 영국을 상징하는 택시인 블랙캡에 부산엑스포 유치를 응원하는 광고를 래핑해 홍보전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제공=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이달 초 이름도 생소한 남태평양의 쿡제도를 방문했다. 태평양 도서국들이 참여하는 지역 협의체인 ‘태평양도서국포럼(PIF)’ 정상회의에 맞춰 유치 활동에 나선 것이다. 이 회장은 이들 국가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삼성의 글로벌 사회 공헌 프로그램인 ‘삼성 솔브포투모로우’를 소개하면서 한 표를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글로벌 생산 거점을 방문하거나 해외에서 정부 차원의 유치 이벤트 행사가 열릴 때마다 자리를 함께하며 부산엑스포 유치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 8월 대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그룹 차원의 전담 조직을 결성한 후 20여 개국 고위급 인사들과 40회 이상 접촉했다.

구광모 LG 회장 역시 지난달 아프리카로 날아가 BIE 회원국을 돌며 지지를 요청했다. 경쟁국인 사우디에 기밀이 흘러나갈까 봐 대외에 제대로 홍보조차 하지 못했다. LG의 한 관계자는 “부산엑스포 유치가 단순히 LG를 떠나 국가 기업 생태계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구 회장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신동빈 롯데 회장도 글로벌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활용해 국내외 정·재계 주요 인사와 글로벌 기업 리더들을 대상으로 유치 활동을 펼쳐왔다. 지난 6월에는 주한 대사 30여 명을 부산으로 초청해 지지를 요청했다.

구광모(왼쪽) LG그룹 회장이 지난해 10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와 만나 부산엑스포 지지를 요청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LG


고령의 나이에 건강도 돌보지 않고 현장을 누빈 기업인들도 많았다. 구자열 무역협회 회장은 올 2월 말부터 약 보름에 걸쳐 카리브 5개국을 방문해 총 18회에 걸친 양자 면담을 진행했다. 구 회장은 과거 독일에서 열린 산악자전거대회에 참가해 7박 8일 동안 650㎞를 완주할 정도로 ‘강골’로 잘 알려져 있지만 카리브 출장 직후 곧장 건강검진부터 받았다고 한다. 협상이 주특기인 기업인들에게도 엑스포 유치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해볼 만한 대목이다.

엑스포 유치전이 국가를 떠나 기업인들에게 또 다른 기회의 창을 열어줬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다. 대기업 총수들이 아프리카 같은 미지의 국가들을 샅샅이 훑으면서 새로운 시장에 대해 눈을 뜨고 희토류와 같은 자원 개발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다. 국내 한 대기업의 대관 담당 임원은 “어쨌든 주어진 환경 안에서 또 다른 사업 기회를 찾는 게 오너들의 경영 DNA”라며 “당장 가시적으로 보이지는 않아도 엑스포 유치 활동이 향후 나비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동빈(왼쪽)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6월 주한 대사들과 함께 부산항 북항을 방문해 엑스포 지지를 요청하고 있다. 사진제공=롯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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