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은행은 보증서 관리와 압류 관리 업무를 맡는 비정규직 근로자가 두 분류로 나뉜다. 그런데 두 직군은 같은 일을 하더라도 불과 근로시간 30분 차이로 처우가 너무 다르다. 하루 8시간 이상 일하는 기간제 통상근로자는 매월 20만원 중식비와 10만원 교통보조비를 받는다. 하지만 하루 7시30분을 일하는 단시간 근로자는 두 지원 모두 받지 못했다. 이렇게 차별을 당한 근로자는 1215명으로 이들이 받았어야 하는 지원비는 21억6000만원이다. B은행은 황당한 계약직 운용지침을 만들고 시행해왔다. 기간제·단시간 근로자만 출근시간이 영업시간 10분 전으로 규정된 것이다.
내로라하는 시중은행들이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해왔던 차별이다. 상대적으로 임금 수준이 높은 금융기관에서도 비정규직 차별이 만연하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24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14개 금융기관과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한 금융업 간담회를 열었다. 고용부가 참석 기관과 근로조건 보호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사전에 실시한 기획 감독에 따르면 참석기관 14곳 중 12곳에서 비정규직 차별을 비롯해 법 위반 사항 62건이 적발됐다.
C은행은 은행이 직접 고용한 운전기사와 파견 형태 운전기사를 차별했다. 직접 고용 근로자에게는 특별상여금으로 통상임금 100%를 지급한 반면, 파견직에게는 정액 50만원만 지급했다. D 증권은 정규직 근로자에게만 추석 명절 귀성비로 60만원을 지급했다. 이외에도 참석 기관은 총 4억원 규모 임금체불(금품 미지급)과 임신근로자와 출산휴가 규정 등 7건의 모성보호 위반이 드러났다. 이는 기본적인 노동 권익 침해다. 일부 기관은 심지어 고용부의 시정지시 거부 절차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부는 이번 금융기관의 비정규직 차별을 심각한 사안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 비정규직 근로자는 약 812만명으로 임금 근로자 10명 중 4명꼴이다. 이들은 정규직 근로자가 100을 벌면 50~60 수준 밖에 벌지 못할 만큼 정규직과 임금 격차가 크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재정 상황이 양호하고 ‘좋은 일자리’로 알려진 금융기관에서 법까지 위반한 비정규직 차별이 일어난 것이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이날 간담회에서 “금융기관에 대한 기획감독 결과를 발표하고 개선사항을 논의하는 무거운 자리”라며 “금융업은 국민의 기대 수준이 높은 만큼 부응하기 위한 책임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노동계는 정부에 대책과 금융기관에 각성을 요구했다. 고용부는 매년 금융업을 비롯해 비정규직 다수 고용 사업장에 대해 근로감독을 해왔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이날 성명을 내고 “기획감독 결과는 사용자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 보호를 외면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부끄럽고 처참한 결과”라며 “고용부는 실효성 대책을 제시하고 사용자는 비정규직 차별을 즉각 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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