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이 보유한 개인 신용대출 연체액 대부분이 중저신용자에 쏠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중은행이 가계대출을 조이고 부실채권을 상·매각하는 방법으로 건전성 관리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중저신용자를 중심으로 건전성 악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의 가계신용대출(무점수 제외) 연체액은 11월 말 기준 3067억 원으로 지난해 말(2727억 원)보다 12.5%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부실채권 관리를 통해 연체액이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던 올 9월 말(2151억 원)과 비교하면 42.6%나 증가한 수치다.
특히 중저신용자의 연체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11월 말 기준 전체 연체액 가운데 중저신용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96.8%에 달한다. 연체자 100명 중 97명이 코리아크레딧뷰로(KCB) 기준 신용점수가 861점에 못 미치는 중저신용자인 셈이다. 중저신용자의 연체 비중은 지난해 말 97.5%에서 올해 3분기 96.5%로 소폭 줄었다가 다시 반등했다. 같은 기간 고신용자 비중은 2.5%에서 3.5%로 늘었다가 지난달 3.2% 수준으로 떨어졌다. 상여금 유입이나 부실채권의 매·상각 등 분기 말 요인으로 3분기 말 중저신용자 비중이 줄어드는 착시 효과가 나타났다가 이후 다시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은행들이 건전성 관리를 위해 부실채권을 매 분기 말 대거 정리하고 있지만 중저신용자를 중심으로 연체액이 지속해 쌓이는 모습이다. 국내 은행이 9월 한 달간 3조 원 규모의 연체채권을 매·상각하면서 4대 시중은행의 중저신용자 연체액도 올 3분기 말 2151억 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576억 원(-21.1%) 줄어드는 추이를 보였다. 하지만 2개월 만인 11월 말 기준 중저신용자 연체액은 818억 원(38.0%)이나 급증한 2969억 원을 기록하며 연초 수준을 넘겼다. 국내 은행이 10월에도 1조 3000억 원 규모의 부실채권을 추가로 정리했음에도 연체액이 늘어난 것이다. 지난 2개월간 고신용자 연체액은 76억 원에서 98억 원으로 22억 원(28.9%) 늘었지만 중저신용자에 비해서는 증가 폭이 상대적으로 작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중저신용자 연체액이 큰 폭으로 늘었다면 고신용자에서 중저신용자로 분류되는 고객이 늘었을 가능성도 있다”면서 “차주들이 상환에 어려움을 겪으며 신용이 악화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연체율 상승 우려에 시중은행이 중저신용자를 중심으로 대출 문턱을 더욱 높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11월 말 기준 4대 은행의 중저신용자 연체율은 최대 1.94%에 달해 고신용자(최대 0.05%)보다 훨씬 높은 상황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주택담보대출을 제외한 가계대출의 10월 연체율(0.71%)과 비교해도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금감원 측은 신규 연체 증가와 연체율 지속 상승 등을 이유로 들어 “(은행들이) 향후 건전성 약화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면서 “은행의 대손충당금 등 손실 흡수 능력을 선제적으로 확충하는 한편 연체·부실채권 정리 확대를 지속해서 유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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