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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끌다 이제야 터진 부동산 PF…‘질서 있는 정리’는 가능할까 [조지원의 BOK리포트]

태영건설 워크아웃으로 드러난 PF 부실

집값 30% 하락시 금융기관 건전성 영향

부동산 경기 반등시켰으나 PF 위험 지속

워크아웃으로 PF 옥석 구분 본격화될듯

한은 금리 인하 서두르지 않고 장기 긴축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태영건설 본사 모습. 연합뉴스




2022년 말부터 불안했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문제가 결국 1년 만에 수면 위로 드러났다. 도급순위 16위로 주요 건설사 중 하나인 태영건설이 지난해 12월 28일 기업구조개선(워크아웃)을 신청했고 채권단이 후속 절차에 돌입했다. 태영건설이 대주주 사재 출연이나 계열사 매각 등 자구노력을 제시해 채권단 75% 이상 동의를 얻으면 워크아웃이 시작된다.

금융당국이 집계한 금융권의 태영건설 관련 익스포저(위험 노출액)는 4조 5800억 원으로 금융권 총자산의 0.09% 수준이다. 일부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익스포저가 여러 금융사에 분산돼 있어 건전성에 큰 영향이 생길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다.

2022년 10월 레고랜드 사태 때와도 다르다. 당시엔 국가신용등급에 준하는 높은 신용도를 가진 지방자치단체가 시장 예상을 깨고 지급보증을 거부해 충격을 줬다. 이번엔 어느 정도 예측했던 일인 만큼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이 금리 등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았다. 레고랜드 사태로 도입됐다가 85조 원 규모로 확대된 시장안정조치도 준비돼 있다.

정부 당국은 물론이고 한국은행이 우려하는 건 이번 사태가 태영건설에서 끝나지 않고 다른 건설업체나 자금시장 전반으로 위기가 확산할 가능성이다. 건설업 특성상 일부 업체에서 발생한 유동성 리스크에 전체 업계가 영향을 받는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워크아웃 초기부터 등장해 경제와 금융시장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며 총력 대응을 언급한 것은 이러한 배경이다.

이와 함께 금융당국은 ‘건설업과 부동산 PF 시장의 연착륙’을 강조하고 있고, 한국은행은 ‘시장 메커니즘에 따른 부실 PF 사업장의 질서 있는 정리 유도’를 언급하고 있다. 정상 사업장엔 금융을 원활하게 공급하고 부실 사업장은 정상화하거나 경·공매 등을 통해 재구조화하면서 PF를 정리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 PF 사업성을 좌우하는 건 결국 부동산 경기다. 부동산 경기가 반등하지 않으면 PF 관련 부실은 점차 커질 수밖에 없다. 1년 전부터 알고도 해결하지 못한 PF 문제를 이제는 해결할 수 있을지, 앞으로 문제가 커진다면 어디가 위험한지, 이번 사태의 전개 양상을 어떻게 봐야 할지 등을 살펴봤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모습. 연합뉴스


◇2022년 하반기부터 알았던 PF 부실…어쩌다 1년이나 끌었나

당국과 한국은행은 부동산 PF가 위험하다는 건 2022년 하반기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한국은행이 2022년 12월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를 살펴보면 부동산 PF로 인한 리스크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때 보고서는 “부동산 가격의 급격한 조정은 부동산·건설업 등 관련 업종 기업의 수익성 등 재무건전성을 크게 저하시킬 수 있다”며 “부동산 PF 사업성을 악화시키면서 PF대출을 상대적으로 많이 취급한 금융기관의 건전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짚는다.

특히 한국은행은 집값이 고점 대비 15%, 30% 하락하는 시나리오에 따른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했다. 집값이 고점 대비 30% 하락하고 부동산 경기 위축이 3년 이상 지속한다면 대부분 업권에서 자본 비율이 상당 폭 하락해 자기자본비율 등 각종 규제기준을 밑도는 금융기관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이창용 총재가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집값이 고점 대비 30%까지 하락하는 건 문제 없으나 그보다 더 떨어지면 금융기관이나 부동산 PF에 어려움이 있다”고 언급한 근거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정부 당국과 한국은행은 지난해 연초부터 부동산 되살리기에 주력했다. 정부는 지난해 1월 규제지역 해제, 중도금 대출 제한 폐지 등을 포함한 전방위적인 주택시장 연착륙 방안을 내놓았다. 한국은행도 지난해 2월 이후 기준금리를 연 3.50%로 동결하면서 금리 인상을 멈췄다. 금융 당국에선 창구 지도 등을 통해 대출금리를 억눌렀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적용을 받지 않는 특례보금자리론 등 정책 모기지를 통해 주택 매수세를 끌어냈다.

고금리 상황에서 가계부채를 늘리는 부담을 감수한 결과 집값 하락세는 멈췄다. 서울 지역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를 기준으로 보면 집값은 2021년 고점 기록 후 2022년 말까지 24.8% 하락했다가 2021년 1~7월 중 11.2% 반등했다. PF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막으려 금리 인상마저 멈추면서 부동산 경기를 부양한 셈이다.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태영건설의 성수동 개발사업 부지 모습. 연합뉴스


◇가계부채 늘려 부동산 경기 방어했는데 PF 위험 여전

문제는 가계부채가 크게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PF 위험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23년 11월 말 기준 신용등급 A1과 A2 이하 PF-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간 신용스프레드는 2.65%포인트다. 2022년 9월 말까지만 해도 0.87%포인트 수준이었는데 레고랜드 사태 이후 크게 확대된 상태가 1년 내내 지속됐다는 건 그 기간 PF 불안이 계속됐다는 의미다. 부동산 경기가 좋아지면서 현금 흐름이 개선된다는 확신이 있어야 낮은 금리로 PF-ABCP를 사는데 전혀 그럴 조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쉬운 건 1년 동안 PF 옥석 가리기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국은 지난해 4월 부실 우려 PF 사업장과 관련해 채권 금융기관 주도로 채무조정을 통한 정상화 추진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전 금융권을 포괄하는 PF 대주단 협약을 개정·시행했다. 이후 일부 사업장에 대한 정리가 이뤄지고 있다지만 부동산 경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대형 사업장은 만기 연장에 급급했던 것도 사실이다. 당장 ‘르피에르 청담’만 봐도 4640억 원 규모의 브릿지론이 내년 5월까지 연장됐다. 선순위 채권자인 새마을금고중앙회가 만기 연장에 반대하다가 입장을 바꿨다.

금융기관들이 PF 만기 연장을 해왔던 건 1년만 버티면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바램과 성급한 금리 인하 기대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가 연내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이러한 인하 기대는 지난해 9월 이후 미국 경기·고용 지표가 호조를 보이면서 조정됐다. 그러면서 올해 4월 총선을 앞두고 부동산 경기를 띄울 것이라는 계산도 등장했다. 르피에르 청담과 같은 사업장은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정부가 어떻게든 살릴 수밖에 없다는 대마불사 심리도 깔려 있었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잘못된 시그널도 분명 영향이 있다. 손실을 감수하고 부실 PF 사업장을 정리하기 위해선 향후 부동산 침체가 길어져 손실이 더 확대될 수 있다는 확실한 신호가 있어야 하는데 부동산 경기가 반등할 수도 있다는 기대를 남겨둔 것이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지난 1년 동안 PF 구조조정이 체감되지 않는 것은 부동산 경기 반등을 기다렸기 때문”이라며 “당국이나 한은이 뭐라도 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버틴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다만 손실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정부가 직접 개입할 수 없다는 한계도 분명하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부실 사업장을 일률적으로 판단해 어디는 살리고 어디는 죽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정책당국이 직접 개입하기보단 대주단들이 자율적인 협약을 통해 사업 지속 또는 구조조정 여부를 신속하게 결정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경제·금융 수장들이 지난해 12월 29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거시경제 금융현안 간담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최 부총리, 김주현 금융위원장, 박춘섭 대통령실 경제수석. 연합뉴스


◇레고랜드 땐 시장이 문제였지만 이번엔 PF가 문제

이번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으로 PF 옥석 가리기엔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레고랜드 사태 당시엔 PF 자체보단 자금시장에 생긴 문제였다. 이번엔 시장은 괜찮으나 PF 사업성이 문제다. 고금리가 지속되고 공사 비용이 오르는 데 부동산 경기 회복마저 지연될 경우 사업성이 없는 PF는 엎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도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며 전국 3000곳이 넘는 PF 사업장에서 돌출 이벤트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 상태다. PF-ABCP 20조 3000억 원 가운데 82%인 16조 1700억 원이 내년 1분기 만기가 돌아오는 만큼 시간이 촉박하다.

특히 토지도 다 사들이지 못한 브릿지론에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부동산 PF대출은 사업 인가를 받기 전에 토지매입 자금 등을 공급하는 ‘브릿지론’과 사업 인가를 받은 이후 준공 시점까지 브릿지론을 상환하고 공사비를 공급하는 ‘본 PF대출’로 구분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브릿지론의 경우 위험지역 소재 사업장, 본 PF대출의 경우 공정률 60% 이상이나 분양률 40% 이하인 사업장을 ‘고위험 사업장’으로 판단한 바 있다.

브릿지론 단계에서 남은 땅을 마저 사려면 나머지 투자자들 구해야 하는데 부동산 경기 침체된 상태에선 쉽지 않다. 당국의 한 관계자는 “일반대출은 현재 담보가 있지만 PF대출은 미래 건물이 제대로 건설되고 잘 팔릴 것이라는 기대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며 “브릿지론은 나중에 어떤 형태의 건물이 완성될지도 모르는데 토지구매를 위해 대출이 이뤄진 것으로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으면 당초 기대했던 수준의 사업성 있는 담보물이 나올 수 있을지 불안해 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134조 3000억 원이다. 가장 규모가 큰 은행(44조 2000억 원)과 보험사(43조 3000억 원)는 연체율이 각각 0.0%, 1.1%로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증권사(6조 3000억 원) 연체율은 13.9%로 높은 데다 저축은행(9조 8000억 원)과 여신전문금융사(26조 원)도 각각 연체율이 5.6%, 4.4%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태영건설 본사 모습. 연합뉴스


◇지식산업센터 등 상업용 부동산 시장 흔들

용도별로 살펴봐도 아파트 등 주거용 사업과 지식산업센터 등 비주거용 사업 모두 쉽지 않을 전망이다. 먼저 주거용 부동산은 지난해 가계부채 확대 카드를 한 차례 꺼내 쓴 만큼 여력이 남지 않았다. 가계부채 증가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진 상태인 데다 ‘변동금리 대출 스트레스 DSR’이 단계적으로 도입되면 가계의 주택 매수 여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다만 신생아 특례대출이 지난해 특례보금자리론만큼 영향을 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상업용 부동산 전망은 조금 더 어두워 보인다. 지난해 12월 나온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를 살펴보면 공급 과잉이 이뤄지고 있는 물류센터나 중대형상가 등 상업용 부동산 시장 부진의 가능성이 심상치 않다. 물류센터는 코로나19 기간 발주된 사업장 준공이 지난해 집중되면서 공실률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수도권 물류센터 공실률은 2022년 3분기 4.0%에서 2023년 3분기 13.1%로 급등했다. 지난해 4분기 물류센터 신규공급 물량은 114만 8000평으로 지난해 3분기(38만 평) 대비 크게 늘어난 상태다. 소매상가도 세종시(25.7%)를 중심으로 공실률이 높아진 상태다.

한은 보고서엔 없으나 사실상 오피스 기능을 하는 지식산업센터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재택근무를 하지 않기 때문에 오피스 공실 문제가 크지 않다는 분석도 제기되지만 다른 형태의 오피스인 지식산업센터는 공실이 점차 늘고 있다. 이번 태영건설이 막지 못한 PF대출도 브릿지론 단계에 있는 성수동 지식산업센터 개발 사업과 관련돼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해 12월 20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2023년 하반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은 “물가 목표 확신 들 때까지 충분히 장기간 긴축”

정부는 건설 경기를 살리기 위해 내년 1분기 사회간접자본(SOC) 등에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입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상반기 중 공공 부문 전체의 SOC 투자를 역대 최고 수준으로 신속 집행하고, 계약 특례도 내년 상반기까지 연장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부동산 경기가 되살아나기 위한 주요 전제조건인 저금리 여건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내년 중 미 연준의 금리 인하가 이뤄지더라도 한국은행은 이와 무관하게 국내 물가 상황에 따라 통화정책을 운용하겠다는 입장이다. 한국은행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인 2%대로 수렴할 것으로 예상하는 시점은 올해 말에서 내년 초다. 미 연준의 금리 인하가 빨라진다면 오히려 더 부담 없이 국내 여건만 보고 판단할 여유가 생긴다.

한국은행은 올해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을 통해 “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2%)에서 안정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충분히 장기간 긴축기조를 지속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가계부채에도 유의해 통화정책을 운용할 필요가 있는 점을 고려하겠다”고 한 것은 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이창용 총재도 올해 신년사에서 “대부분 중앙은행이 고물가에 대응해 한 방향으로 달려온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정책이 차별화될 것이고 한국은행도 내부 여건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정책을 결정할 여지가 커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창용 총재는 “경제가 어려워질 때마다 재정 확대와 저금리에 기반한 부채 증대에 의존해 임기웅변식으로 성장을 도모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했다.

※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Bank of Korea)을 중심으로 국내 경제·금융 전반의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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