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은행들이 지난해 사상 최대 이익을 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러시아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을 지난해 예측치의 두 배인 2.6%로 올려잡았다. 러시아 경제에 타격을 입히려는 서방국가의 제재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3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중앙은행(CBR)의 이날 보고서를 인용해 지난해 러시아 은행들이 전년보다 약 16배 증가한 3조 3000억루블(약 49조 원)의 이익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까지만 해도 은행 수익이 1조 루블(110억 달러)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됐던 점을 고려하면 ‘깜짝 성장’인 셈이다.
러시아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마련한 보조금 프로그램에 따라 주택담보대출이 전년 대비 34.5% 급증한 것이 은행 이익을 견인했다. 정책 수혜 수요와 저렴해진 루블화를 부동산 자산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겹치며 보조금 지원 주택담보대출이 신규 대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서방의 경제 제재로 강제 매각되거나 국가 수용된 해외 기업 자산을 구매하려는 수요가 늘어난 것도 은행 이익을 확대했다. CBR 보고서는 “러시아를 떠나는 외국 기업과의 거래와 관련된 신규 대출이 5000억 루블에 달했다”고 썼다.
이 같은 깜짝 이익은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징벌로 러시아 경제에 타격을 주려는 서방 국가의 경제 제제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나타난 현상이다. 서방의 제재가 효과가 없다는 의문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러시아 은행들은 경제 제재로 국제 금융결제 시스템인 스위프트(SWIFT)에서 배제돼 서방 자본시장에 대한 접근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날 IMF가 올해 러시아 경제 성장률을 지난해 10월 기대했던 1.1%보다 두 배 이상인 2.6%로 제시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지난해 성장률 3%보다는 낮지만 전쟁 물자 생산 등으로 경제가 크게 뒤처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등의 수출도 서방제재를 무력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IMF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피에르 올리비에 고린차스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러시아 경제가 더 나아졌고, 이는 전시 경제에 대한 정부 지출이 강력한 부양책으로 귀결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확고한 원자재 가격은 화석 연료 관련 수출 수익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다만 장기적으로 러시아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2년 전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여전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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