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본격 시행된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 적립금이 12조 원을 넘어선 가운데 증권사들이 위험등급별 수익률 선두권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연간 평균 수익률도 10%를 넘겨 쥐꼬리 수익이라는 불명예를 벗었다. 다만 고금리 등 불확실한 대내외 경제 여건이 이어지면서 적립금 대부분이 안전성에 치중하는 은행으로 쏠렸다.
5일 금융감독원·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디폴트옵션 2023년 4분기 말 기준 수익률 등 현황 공시’에 따르면 디폴트옵션 상품 적립금액은 12조 5520억 원으로 3분기 대비 7조 4425억 원 증가했다.
디폴트옵션은 퇴직연금 상품을 결정하지 않으면 사전에 정해둔 방법으로 적립금을 자동 운용하는 제도다. 확정기여(DC)형과 개인형퇴직연금(IRP)형 가입자를 대상으로 하고, 회사가 적립금을 운용하는 확정급여(DB)형은 제외된다. 지난해 4분기 증가한 디폴트옵션 적립금액 가운데 DC형이 8조 5993억 원이고, IRP형은 3조 9527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정 가입자 수는 479만 명으로 전 분기보다 88만 명 늘어났다.
위험등급별로 살펴보면 원금이 보장되는 초저위험 상품은 2023년 연간 수익률이 4.56%로 가장 낮았고,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저위험 상품이 7.69%로 뒤를 이었다. 중위험과 고위험은 각각 1년 수익률 10.91%와 14.22%를 기록했다. 1년 이상 된 디폴트옵션 상품의 개별 수익률을 산술평균한 값은 10.1%로 당초 목표수익률인 연 6~8%보다 높은 성과를 거뒀다.
특히 증권사는 초저위험부터 고위험까지 모든 부문에서 상위권 수익률을 기록했다. 4가지 위험등급별로 1년 수익률 상위 5위까지 살펴보면 전체 20개 가운데 12개가 증권사 상품이다. 고위험과 저위험 상품 중에서는 5개 중 4개를 증권사가 차지했다. 지난해 12월 말 증권사 퇴직연금 적립금 총액은 86조 7397억 원으로 전년 말보다 17.9%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은행(198조 481억 원)이 16.7% 늘어나면서 전체 적립금 총액에서 증권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22%에서 23%로 소폭 확대됐다.
퇴직연금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증권업계는 다양한 상품 출시와 운용 등으로 디폴트옵션에 힘을 싣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미래에셋포트폴리오 구독, 로보어드바이저 등을 통한 연금 자산관리서비스를 앞세우면서 증권사 가운데 가장 많은 적립금을 확보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연금 가입자와의 1대 1 상담 체계화, 삼성증권은 자체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엠팝을 통한 관리 지원 등 퇴직연금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다만 고금리 지속으로 지난해 디폴트옵션 전체 적립금 12조 5520억 원 가운데 89%인 11조 2879억 원이 원금이 보장되는 초저위험 상품으로 쏠린 것으로 나타났다. 저위험과 중위험은 각각 6835억 원, 4057억 원에 그쳤고 고위험은 1749억 원뿐이었다. 초저위험 쏠림 현상이 나타난 결과 적립금 대부분이 은행으로 집중됐다. 적립금 규모 10위권에 은행만 8곳이 자리를 잡았다. 근로복지공단이 6위를 차지한 가운데 증권사 중에선 미래에셋증권만 10위로 간신히 턱걸이했다. 증권사가 퇴직연금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지속적인 수익률 확보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퇴직연금은 6개월이나 1년 수익률로 볼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수익률 흐름을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