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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해서 꺾이지 않아요_‘나는 G1’ 전지원

영혼을 갈아넣어 바닥을 치고 올라온 유쾌한 도전자





2020시즌 전지원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의 한국 선수 루키 가운데 유일하게 풀시드(전 경기 출전권)를 갖고 있었다. 퀄리파잉 시리즈를 공동 16위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했기 때문이다. 중3 때 우연히 출전한 국내 한 대회에서 덜컥 우승해 호주 유학 기회를 얻고 이후 미국 대학에 진학해 세계적인 아마추어 강자로 입지를 다진 이력도 함께 조명 받았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으로 가득했던 2020년, 전지원은 고작 7개 대회 출전에 그쳤다. 계획됐던 대회가 코로나19로 줄줄이 취소되면서 제대로 뭔가 보여줄 기회 자체가 쪼그라들었다. 이듬해엔 부상까지 찾아왔다. 전지원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골프 팬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지워지던 전지원은 올 시즌 당당히 LPGA 투어 무대를 누비고 있다. 루키 시즌을 앞뒀던 건강하고 통통 튀는 모습 그대로다. 2부인 엡손 투어에서 한 뼘 더 성장한 전지원은 골프 선수로서의 삶을 비로소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LPGA의 2부 투어 경험을 먼저 듣고 싶다. 1부와 뭐가 가장 다르던가?

“대회장이 진짜 시골에 있다. 골프장 주변에 정말 아무것도 없다. 대회 타이틀 스폰서로 카지노 기업이 많아서 그런지 대회장엘 가도 골프 코스랑 카지노 건물밖에 없는 곳이 많았다.”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들었나?

“주변에 식당이 많이 없어서 먹는 게 제일 힘들었다. 그리고 대회 있는 곳이 전부 작은 동네여서 공항도 거의 다 멀리 있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차로 다녀야 했고 어쩔 수 없이 운전을 많이 했다. 동부에서 서부로 넘어가야 할 때가 아니면 거의 운전해서 다녔다. 앨라배마에서 마지막 대회 치르러 플로리다 갈 때 10시간쯤 운전해서 갔다. 1부 투어 대회장은 공항에서 보통 차로 1시간 이내 거리에 있다.”

장시간 운전하고 바로 대회 나가고 하는 생활이라 엄청 고단했겠다.

“힘들었지만 그 가운데 즐거움도 있었다. 동료들이랑 같이 움직이니까 얘기도 많이 하고 나름 재밌었다. 카풀 식으로 한 대에 여러 명이 타고 같이 이동하고 다녔다.”

미국프로야구 마이너리그는 흔히 눈물 젖은 빵을 씹는 곳이라고 한다. LPGA 2부에서도 그런 말을 실감했나?

“어쨌든 내려가 있는 상황인지라 진짜 외롭긴 했다. 힘든 투어인 것도 맞다. 하지만 꼭 딛고 올라가겠단 마음가짐이 강했기 때문에 마냥 힘들지만은 않았다.”

대회 기간 숙소는 어떻게 잡나?

“투어에 호스트 제도가 있다. 일부 주민들이 선수들에게 1주일 동안 숙식을 제공하는 제도다. 협회는 신청을 받아서 선수와 가정을 연결해준다. 하숙 같은 개념이다. 저는 지난 한 해 열 번 정도 이용했다.”

좋은 제도 같다.

“1부 뛰던 시기에 코로나19가 터진 바람에 제한된 공간에만 있어야 하는 ‘버블’을 겪었다. 그 당시 그리웠던 사람 냄새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경험이 됐다. 그렇게 보면 눈물 젖은 빵을 먹은 것 같진 않다.”

다시 1부 투어 출전권을 땄을 때 연락 온 분도 있었나?

“있었다. 숙식을 제공 받는 동안 ‘딸이 생긴 느낌’이라고 말해주신 분이 있었는데 그런 분들이 감사하게 잊지 않고 축하 연락을 해주셨다. 꼭 다시 놀러 와 달라고 하시더라. 진심으로 응원 받는 느낌이 어떤 건지 새삼 실감했다. 1주일이란 시간은 짧다면 짧지만 깊은 정이 쌓일 수 있는 시간이란 것도.”

2부는 캐디 없이 경기하나?

“캐디 동반은 선택 사항이다. 그래서 캐디 없는 라운드가 일반적이다. 골프백을 메지 않고 푸시 카트로 밀고 다녀도 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볼런티어(자원봉사자) 캐디 제도가 있어서 원하면 도움 주실 분과 같이 할 수도 있다. 그 주 숙소 호스트 분이 캐디 해주시는 경우도 있고. 분위기가 자유롭다.”

2부 투어를 통해 기술적으로, 정신적으로 얻은 것은 무엇인가?

“1부를 뛰다 2부로 내려갔다는 건 자존심이 많이 상하는 일이긴 하다. 근데 한 번 그렇게 꺾임으로써 무조건 다시 올라간다는 단단한 마음이 생긴 것 같다. 그 마음으로 정말 연습 열심히 하고 스스로 채찍질했다. 선수라면 자기만의 루틴대로 움직이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그 부분도 잘 됐다. 에이전트의 도움으로 캘리포니아 어바인에 베이스를 정하고 연습과 운동을 체계적으로 했다.”

프렌치 릭 리조트 채리티 클래식 우승 트로피와 함께. 엡손 투어 홈페이지 캡처


이노바 미션인 챔피언십을 제패한 뒤. 엡손 투어 홈페이지 캡처


2020시즌 LPGA 투어 한국 신인 선수 중 유일하게 풀시드였다. 스스로 기대도 컸을 텐데.

“코로나19가 터져 시즌이 축소된 데다 이듬해 여름엔 부상이 찾아왔다. 경기 중에 왼손 엄지 통증이 너무 심한 거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통증을 신경 쓰다 보니 스윙이 이상하게 변해서 투어를 계속 뛰면 안 될 정도가 됐다. 투어에 병가를 내고 한국으로 돌아와 검사를 받아봤더니 인대 파열이었다.”

어떤 치료를 받았나?

“무조건 손가락 잘 안 쓰고 쉬면서 약 잘 먹는 것밖에 없었다.”

과사용이 문제였을까?

“비슷하다. 지속적으로 연습을 많이 했던 게 누적이 된 데다 그 당시 6주 연속 대회를 나가고 있었다.”

스스로 몰아붙이는 편인가?

“성격인 것 같다. 마음에 걸리는 문제가 있으면 갖고 있지를 못한다. 집착이 돼서 연습을 심하게 한다. 대학 때도 그래서 손목을 다쳤었다.”

지금은 손가락 불편하지 않나?

“100% 괜찮아졌다.”

경기력은 어떻게 회복하게 됐나?

“부상 이후 새 코치님(김도훈)을 만났다. 스윙을 바꾸고 아이언 연습을 집중적으로 했다. 샷 정확도가 많이 좋아졌고, 지난해 엡손 투어에서 크게 효과를 봤다.”

팬데믹으로 인한 혼란과 부진에 부상까지 겹쳐 몹시 힘들었겠다. 어떻게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었나?

“스트레스가 많긴 했다. 2022년 1부 퀄리파잉 스쿨도 떨어졌으니. ‘이 길이 내 길이 맞나’ 싶었다. 정말 좋아하는 운동인데 이것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정말 그만두려 했나?

“일단 한 달쯤 다 내려놓고 놀아보기로 했다. 근데 놀지도 못했다. 집에서 계속 머리 싸매고 고민하느라.”

고민의 결론은?

“지금까지 걸어왔던 과정을 되짚어봤다. 아버지 권유로 골프를 시작하게 됐지만 그 이후론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삶이었고 선택은 늘 저 혼자 해왔던 거다. 호주로 가게 된 것도, 미국 대학에 진학한 것도, LPGA 투어에 진출한 것도 모두 제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머리를 정리하니 마음이 딱 잡히더라. ‘이걸 놓으면 안 되겠구나.’ 1년이라도 더 제대로 열심히 한 번 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렇다 할 성적이 없던 전지원은 중3 때 우연히 나간 국내 대회에서 ‘인생 경기’로 우승하면서 삶의 항로가 바뀌었다. 우승 특전이 ‘호주 국제학교 1년 연수 지원’이었다. 가서 1년 간 골프와 영어에 빠져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학교에서 전액 장학금을 제안하며 졸업 때까지 남아 달라고 했다. 귀국을 미룬 전지원은 이후 미국 대학에 진학했고 미국주니어대체육협회(NJCAA) 올해의 선수상까지 받았다. 앨라배마대학에 스카우트된 뒤 아마추어 세계 랭킹 3위까지 찍었다.)

만약 그만두는 쪽으로 결정했다면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스포츠를 진짜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계속 이쪽 필드에 있고 싶긴 했다. 학교에서 마케팅 전공했으니 스포츠 마케팅 쪽으로도 생각하긴 했다. 레슨 쪽은 마음이 안 갔다. 일단 부상이 다 나아서 내 몸이 괜찮은데 그만두려 하니 후회가 클 것 같았다. 여태껏 쏟아 부었던 시간과 노력이 너무 아깝게 느껴지더라.”





지난해 2부 투어에선 몇 타까지 쳐봤나?

“두 번째 우승했던 대회가 8월 프렌치 릭 리조트 채리티 클래식인데 거기서 2라운드 때 8언더파 64타 쳤다. 토너먼트 레코드였다. 굉장히 어려운 코스인데 그날 바람이 덜 불었다. 대회 관계자들은 ‘그래도 8언더파 치기는 쉽지 않은데’라며 좀 놀라워했다.”

당시 3라운드는 어땠나? 몰아친 다음날은 주춤하기 마련인데.

“6언더파 쳤다.”

별명 변천사가 궁금하다. 어릴 땐 이런 별명, 더 커서는 저런 별명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 땐 난쟁이였다. 골프 선수 되고는 주변 분들이 작은 거인이라고 해주신다. 외국에서 골프 배울 땐 그 아카데미에서 제일 잘 쳤었는데 그래서 친구들이 ‘G1’이라고 써주기도 했었다. ‘골프 넘버원’이란 뜻으로.”

‘제대로 열심히 한 번 해봐야겠다’고 결론을 내린 뒤 어느 정도로 열심히 연습했나?

“매일 아침 7시로 퍼스널 트레이닝(PT)을 잡았다. PT 선생님이 새벽 5시부터 일하시는 분이어서 이분만큼 열심히 살아보자는 마음에 무조건 이른 아침으로 운동을 잡았다. 그리고 연습장에서는 퍼팅 연습 시간을 넉넉하게 빼놓고 하루 2시간은 진짜 퍼팅에만 매달렸다. 길지 않은 시간을 몰아서 하는 스타일이다. 샷이랑 쇼트 게임 연습까지 3~4시간을 휴대폰 한 번 안 보고 연습만 ‘따다닥’ 했다. 저보다 연습량 많은 선수들 물론 많지만 제 기준으론 정말 ‘영혼을 갈아 넣었다’고 할 만큼 열심히 했다. 연습도 연습이지만 멘탈 부분에서 많은 발전을 이뤘다고 본다.”

그렇게 갈아 넣은 보상으로 2승이나 했다.

“정말 한 해에 다 쏟아 부어서 승부를 걸자는 생각으로 시즌을 준비했다. 그냥 죽었다 생각하고 대회 없는 주에도 똑같이 아침 7시부터 운동하고 연습하는 루틴을 쭉 지켰다. 시즌 시작 전 목표가 우승 2개였는데 딱 그렇게 됐다.”

두 번째 우승한 프렌치 릭 리조트 클래식은 어렵기로 악명 높은 피트 다이 코스에서 열렸다.

“맞다. 어려운 벙커가 많고 페어웨이가 좁으면서 도그레그 홀도 많다. 그래서 그 대회 우승이 의미가 컸다. 그 대회 우승만을 목표로 한 달 전부터 이를 테면 맞춤 연습을 했었으니까. 2022년에 같은 대회, 같은 코스에서 쳐봤는데 인상이 깊었고 오히려 좀 편한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작년 대회 앞두고는 코스를 계속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연습했다. ‘내 게임만 하면 우승할 수도 있겠다’는 감이 오더라. 그런 준비 과정을 통해 프로로서 한 단계 성장했다는 느낌도 받았다.”

옛날 이야기를 꺼내보자면 행정 착오로 원래 가려고 했던 대학의 입학이 취소되는 일도 있었고 겪어온 곡절이 적지 않다. ‘당장은 안 돼도 나중엔 되겠지’라는 생각을 늘 갖고 다닌다고 했는데 그런 마인드 셋은 여전한가?

“변함없다. 이만큼 열심히 했다면 그만큼의 성과는 반드시 나온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빨리 나오느냐 조금 늦게 나오느냐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굉장히 긍정적인 마인드인데 사실 골프에서 긍정이 빠지면 아주 힘들어진다. 꾸준히 노력하면 반드시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이 있다.”

연습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적인 변화도 있었나?

“있었다. 에이전시가 바뀌었는데 에이전트 해주시는 분이 캘리포니아 어바인에 계신다. 그분이 우승 두 번 할 때까지 본인 집에 있으라고 배려해주셔서 그쪽에 베이스캠프를 잡았다. 연습하고 운동할 수 있는 곳이 다 집 가까이 있어서 한국에 있는 것처럼 편했다. 그 전까진 떠돌이 생활 비슷하게 했었는데 작년엔 심리적인 안정감까지 더해 걱정 없이 재기에만 신경 쓸 수 있었다.”

과거 LPGA 투어 기록을 보면 평균 드라이버 샷이 250야드 안팎으로 중하위권이었다. 거리가 부족해서 어려운 일은 없을까?

“힘들기도 했다. 코스 길이는 갈수록 길어지니까 예전보다 더 불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장점은 정확도’라고 믿고 있다. 비거리가 조금 늘면 정말 좋겠단 생각은 하고 있기에 클럽 스펙을 바꿔보거나 스피드 늘리는 운동에 투자하면서 꾸준히 노력을 하고 있다.”

벙커 샷에 강점이 있다. 어쩌면 두 번째 데뷔 시즌인 셈인데 또 다른 특기로 어떤 걸 내세울 수 있을까?

“드라이버 샷의 페어웨이 안착에 자신감이 있다. 지난 시즌 2부에서 페어웨이 안착률 톱 5에 들었다. 아이언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훈련을 많이 했고 ‘퍼팅을 내 무기로 만들어보자’고 마음먹고 퍼트도 업그레이드했다.”

어느 정도 성적이면 성공한 시즌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최소 1승은 하는 게 목표다. 더불어 올해의 선수 포인트 20위 안에 들면 칭찬해줄 만할 거다. 굉장히 안정적인 시드를 받은 덕분에 대회 출전 관련해선 걱정이 없다. 제가 잘할 수 있는 코스를 추리고 거기 맞춰서 ‘올인’하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것 같다.”

우승이 얼마나 간절한가?

“정말, 정말 하고 싶다. 진짜 한 번만 딱 하면 더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있다. 처음이 멀어 보일 뿐이지 그걸 쟁취하는 순간부턴 멀지 않을 거란 확신 같은 게 있다. 2부에서 그런 경험을 했다. 1부는 더 어렵겠지만 해낼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있다. (2023년 올해의 선수이자 상금왕인) 릴리아 부 선수도 굉장히 고생을 많이 한 친구인데 2부에서 3승하고 올라가더니 1부에서 한 시즌에 4승을 했다.”

프렌치 릭처럼 작정하고 연습해서 잘하고 싶은 대회는?

“코스 세팅이 까다롭다고 소문난 US 여자오픈이다. 그런 대회에서 우승하면 골프인으로서 모든 이들에게 인정받는 거랑 같은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 정도까지 할 수 있는 선수란 걸 보여주고 싶다.”

투어나 투어 밖에서 의외의 친분이라 할 만한 인물이 있나?

“의외인진 모르겠지만 이미향 언니랑 작년에 대화를 많이 하면서 힘을 얻었다. 언니도 시즌 초에 출전할 수 있는 1부 대회가 많이 없어서 2부를 몇 개 뛰었다. 그때 만났다. 정말 본받고 싶은 선수라고 느낀 게, 고참급이 됐는데도 여전히 성실하고 몸 관리가 철저한 데다 멘탈도 진짜 좋다. 엄청 긍정적이라 고민 상담도 많이 하면서 자신감이 확 오르는 경험을 했다. 우승했을 때도 언니한테서 제일 먼저 연락이 왔다. 2024년엔 꼭 1부에서 같이 뛰자고 했었는데 그렇게 됐다.”

골프백에 새긴 태극기가 눈에 띈다.

“선후배들이 LPGA 투어에서 좋은 성적을 낸 게 자랑스럽기도 하고 한국이 그리운 마음도 크고 해서. 해외에서 벌써 10년 넘게 살았고 1년에 한국 집에 가는 건 두 달 정도라 골프백의 태극기를 보면서 위로와 자극을 받는 게 있다. 한국 선수들이 쌓아 놓은 위상에 누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단 생각을 하면서 힘을 낸다.”

한국 선수들이 최근 몇 년 간 다소 부진했다. 전지원 선수는 한국 군단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승수를 보태는 데 꼭 일조하고 싶다. 한국 선수들 중에서 나이로 중간쯤이더라. 나름대로 노하우와 노련미 같은 게 생기긴 한 것 같은데 그러니 저도 앞쪽에서 조금은 끌고 갈 수 있는 선수가 되면 좋겠단 생각이다.”

2020시즌 초반과 지금 중에서 언제가 더 설레나?

“지금이다. 많이 단단해졌단 걸 느끼고 있고 주변에서도 그렇게 얘기해주기에 신인 때보다 더 설렌다. 돌아보면 투어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고 무서운 건 멘탈이 무너지는 거였다. 지금은 그런 경험을 극복했다면 극복한 뒤라 내면이 강해진 기분이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지금 당장 성적이 나지 않아도 곧 좋은 성적이 찾아올 거란 믿음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기대가 되고 설렌다.”

[서울경제 골프먼슬리]



PROFILE

출생: 1997년 | LPGA 투어 데뷔: 2020년

주요 경력:

2023년 엡손 투어 이노바 미션인 챔피언십, 프렌치 릭 리조트 클래식 우승(시즌 상금 4위)

2022년 아일랜드 리조트 챔피언십 2위, 머피 USA 슛아웃 공동 3위

2018년 US 여자아마추어 챔피언십 준우승

2017년 미국주니어대체육협회(NJCAA) 올해의 선수상

2012년 세한대총장배 제1회 주니어대회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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