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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 美 ‘기술 울타리’ 쌓기에 中 ‘AI+’로 반격…K-민관 협력 모델 시급

◆미중 AI패권 전쟁

생성형 AI, 글로벌 경제 판도 변화 초래…안보와도 직결

美, 반도체·SW 수출 금지…中 ‘만리장성 생태계’로 추격

韓, 기술·표준·시장 등 글로벌 AI 생태계 블록화 대비를

인프라 지원·국제표준 참여 등 자체 성장 전략 수립해야





“중국이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게 하려면 동맹과 수출 통제 공조가 필수입니다.” (지난해 12월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

“‘AI+ 이니셔티브’를 전개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디지털 산업군을 만들어야 합니다.” (올 3월 리창 중국 총리)

미중 첨단 기술 전쟁이 반도체에 이어 AI 산업에서 불붙고 있다. 생성형 AI 기술의 발전으로 기계가 인간을 넘어서는 ‘제3의 기술 특이점’ 도래가 눈앞에 닥치면서 AI 산업이 글로벌 경제의 지형을 바꿀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특히 AI는 군사용으로도 전용이 가능해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 미국은 AI 반도체와 소프트웨어(SW) 수출 금지 등으로 대(對)중국 견제를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은 ‘기술 굴기’의 성과를 바탕으로 국가 주도의 독립적인 ‘만리장성 AI 생태계’를 조성하며 반격에 나서고 있다.




AI는 미래 산업 ‘게임체인저’


블룸버그 산하 경제 연구소인 블룸버그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글로벌 생성형 AI 시장 규모는 2023년 670억 달러에서 매년 42%씩 성장해 2032년 1조 304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AI 기술은 아직 도입 초기 단계여서 추가 발전의 여지가 크다. 바이오·우주 등 응용 범위가 광범위해 2차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증기·내연 기관처럼 글로벌 경제와 산업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메타버스·사물인터넷(IoT)·나노·자율주행 등 다른 선도 기술도 많지만 파괴력에서 비교 불가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성락 국제금융센터 주식분석부장은 최근 보고서에서 “2022년 말 챗GPT 출시 이후 현재의 AI 기술은 소비자 효용의 비약적인 증가, 모든 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 범용성,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대중성 등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며 “인터넷·스마트폰과 마찬가지로 생산성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기술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에서 드론이 전쟁 판도를 바꿀 만한 무기로 등장하고 AI가 만든 가짜 뉴스와 보이스피싱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면서 AI 산업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미중 AI 패권 전쟁 격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지난해 10월 AI를 규제하는 첫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핵심은 한국전쟁 때 만든 국방물자생산법에 근거해 미국 기업들이 국가 안보, 경제, 공중 보건 등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는 AI 모델을 시험할 때 연방정부에 통지하는 것이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MS)·구글 등 미국 기업의 AI 기술을 이용하는 외국인(기업)을 AI 모델의 안전성 평가 의무화 대상에 포함하고 미국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자는 외국 고객 명단을 의무적으로 신고하도록 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은 당시 보고서에서 “세계 각국 정부의 AI 규제 조치 중 가장 강력한 조치”라며 “미국이 세계 AI 규제 표준을 만들어 격차를 유지하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미국 정부는 AI 행정명령의 후속 조치를 차근차근 시행 중이다. 미국은 2022년 10월 미국산 기술력이 들어가는 첨단 AI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금지한 데 이어 지난해 10월에는 사양이 낮은 AI 반도체에 대해서도 중국 수출을 금지하는 기준을 추가했다. 미국 정부는 자국 기업의 최첨단 AI 모델의 수출을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중국·러시아 등이 AI 모델을 이용해 사이버 공격이나 생화학 무기를 개발하는 사태를 막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반격 전략은 독립적인 AI 생태계 구축이다. 미국에 비해 기술력이 뒤처지는 점을 감안해 AI 모델 경량화와 데이터 자원화 등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또 AI 연구개발(R&D) 강화, 국가 통합 컴퓨팅 파워 시스템 구축, AI 반도체 클러스터 육성 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는 올해 3월 열린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회의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처음으로 ‘AI+ 이니셔티브’ 액션 플랜을 제시했다. 정협 위원인 양제 차이나모바일 회장은 “AI가 다른 산업의 발전을 돕는 보조 수단을 하는 ‘+AI’에서 경제 전환과 고도화를 위한 필수 인프라이자 핵심 역할을 하는 ‘AI+’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는 AI 등 미중 기술 경쟁에 대응해 올해 과학기술 예산으로 전년 대비 10% 늘린 3708억 위안을 배정했다.


미국 턱밑까지 따라온 중국


AI 패권 경쟁은 주요 2개국(G2) 간 양강 구도로 진행 중이다. 유럽연합(EU)은 상대적으로 AI 관련 빅테크 기업이 부재한 까닭에 기술 육성보다는 개인 정보 보호 등 관련 규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근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인공지능연구소(HAI)가 발표한 ‘AI인덱스’에 따르면 국가별 중요 AI 기초 모델은 미국이 109개, 중국이 20개였다. 지난해 미국의 AI 민간투자액은 672억 2000만 달러인 반면 중국은 77억 6000만 달러에 그쳤다. 2013~2023년 누계로는 미국 3352억 4000만 달러, 중국 1036억 5000만 달러였다. 영국(3위)과 이스라엘(4위)의 누계는 각각 222억 5000만 달러, 128억 3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지금은 미국이 질적으로 절대적인 우세를 보이지만 중국이 양적으로 빠르게 추격하는 중이다. 최근 5년 동안 피인용된 AI 논문 상위 1%는 미국과 중국이 각각 691건, 565건으로 격차가 줄고 있다. 출판된 AI 논문 수만 놓고 보면 중국 비중이 40%에 이르는 반면 미국은 10% 정도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주요국의 AI 기술력은 미국(100%)을 기준으로 중국 90.9%, EU 87.5%, 한국 78.8%, 일본 76.4% 등의 순이었다.

미국의 강점은 민간 중심의 강력한 AI 생태계이다. 빅테크 등 민간 기업은 AI 혁신과 인력 양성을 주도하고 정부는 해외 인재 확보, 국제 규격 마련 등으로 측면 지원하고 있다. 또 미국은 AI 학습 모델, 클라우드, 반도체와 같은 핵심 산업을 기반으로 법률·회계·영상 등 민간 서비스 영역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자랑한다.

중국은 국가 주도의 ‘퀀텀점프(대도약)’를 노리고 있다. 중국은 모바일 결제 이용자 수가 미국의 9배에 이르는 등 막대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고 개인 정보 보호 규정도 상대적으로 관대해 기업들이 데이터를 가공하기 용이하다. 특히 일당독재라는 체제 특성상 안면 인식, CCTV 기술 등 보안 산업에서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치명적인 약점은 AI의 계산 능력을 좌우하는 반도체를 서방국가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화웨이가 자체 개발한 AI 반도체 ‘어센드 910B’는 엔비디아의 H100 모델에 비해 성능이 크게 떨어진다. 이 때문에 미국의 반도체 관련 제재가 강화될수록 AI 자립 시점이 늦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양국 간 AI 경쟁은 디지털 디바이스 핵심 부품부터 데이터 생성과 전달, AI 기술의 실제 응용, 인터넷 플랫폼 등 가치 사슬 전반에서 진행되고 있다. 글로벌 AI 생태계 역시 블록화 진행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조은교 산업연구원(KIET) 해외산업실 부연구위원은 “반도체의 경우 미국이 ‘초크 포인트(choke point·경제적 급소)’를 갖고 있지만 AI에서는 중국이 응용 기술을 바탕으로 ‘건너뛰기(leapfrogging)’ 전략을 취하고 있다”며 “AI 오픈소스 플랫폼 개발, 슈퍼컴퓨터 성능 강화 등을 통해 빠른 기술 자립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으로서는 기술·표준·시장 등 글로벌 AI 생태계 전반이 분리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경쟁 우위 분야 집중 육성을”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메모리 경쟁력을 갖고 있고 전 세계 세 번째로 대규모언어모델(LLM)을 개발할 정도로 기술 역량이 뛰어나다. 또 우수한 AI 서비스, 클라우드 기업 등 독자적인 AI 생태계 조성의 기반을 갖고 있다. 국가적 역량을 결집해 한국형 민관 협력 모델을 만든다면 미래 AI 시대를 선도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다만 추격자 입장인 만큼 원천 기술 육성만으로 승부하기보다는 경쟁 우위의 분야를 최대한 확장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김정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미국의 AI 공개 소스를 튜닝(조정)해 이용하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며 “자체 기초 모델과 미래 생성 지능을 개발하는 등 로컬리제이션(현지화)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민간 개입을 최대한 제재하되 공공 AI 컴퓨터 센터, 세금 혜택과 저금리의 자금 지원, 전력 등 인프라 확충 등을 통해 AI 산업 발전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정부와 정치권이 ‘AI기본법’ 처리, 국제 표준 주도 등을 통해 투자 환경 조성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남은영 동국대 글로벌무역학과 교수는 “최근 AI 서울정상회의를 개최한 것처럼 정부가 글로벌 AI 표준 채택에 대기업과 함께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며 “정부가 2030년까지 12개 첨단산업 분야에서 국제 표준 개발에 나서고 올해 1월 조성환 현대모비스 고문이 국제표준화기구(ISO) 회장에 취임한 점은 긍정적인 신호”라고 말했다.

양국 경쟁의 틈바구니를 파고들어 한국이 실익을 취할 수 있다는 분석 또한 있다. 미국과 중국도 반도체 등에서 우리나라 기술과 제조업에 대한 의존도가 크기 때문이다. 조 부연구위원은 “한국처럼 중국도 B2C가 아닌 B2B 제조업 분야에 AI 기술을 적용하려 한다는 점을 활용해 중국 시장 진출을 모색해야 한다”며 “미국과는 생성형 AI 분야에서 경쟁하기보다는 반도체 등 하드웨어 경쟁력을 바탕으로 기술협력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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