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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줄 마른 중견건설사…연 9.5% 고금리에도 현금확보 잇따라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에서 바라본 서울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자금난에 직면한 중견 건설사들이 고금리도 마다하고 전방위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금융비용과 공사비 등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천정부지로 불어난 가운데 책임준공 확약에 따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채무 인수까지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녹록지 않은 지방 건설사들은 이미 법정관리로 내몰리고 있다. 올해만 벌써 5곳의 건설사가 부도 처리되면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중견 건설사들의 연쇄도산 공포가 재현되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5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한신공영은 지난달 28일 500억 원 규모 사모사채를 발행했다. 지난해 발행한 채권의 만기가 도래하면서 차환 목적의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금리는 연 9.5%로 결정됐다. 이보다 앞서 22일 만기가 돌아온 850억 원은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현금으로 상환했다.

한신공영보다 신용도가 높은 에이치엘디앤아이한라는 지난달 1000억 원 규모 공모 회사채 수요예측을 진행했으나 투자자들로부터 주문을 한 건도 받지 못했다. 이에 따라 1000억 원어치 채권은 모두 발행 주간사인 증권사가 떠안게 됐으며 발행 금리도 밴드 최상단인 연 8.5%로 결정됐다.

4월에도 △GS건설(2000억 원) △KCC건설(500억 원) △대우건설(1500억 원) 등 건설사들의 자금 만기가 다가온다. 이중 KCC건설은 지난 1월 말 서울 강남에 있는 본사 사옥을 담보로 625억 원 어치 사채를 발행해 현금을 선확보하기도 했다. 회사채 시장의 한 관계자는 “여력이 있는 건설사들은 유동자금을 꺼내 쓰면서 버티는 분위기”라며 “기댈 곳이 없는 중견 건설사들은 시장에서 고금리 자금을 겨우 조달하면서 재무여력이 더 나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 증권사의 자금조달 담당 임원 역시 "부동산 경기가 악화하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견 건설사들의 디폴트(채무 불이행)가 잇따라 발생했던 트라우마가 언급될 정도"라며 "건설채 수요가 쪼그라들면서 채권 발행 주간사(증권사)를 찾기도 어려워진 분위기"라고 전했다.



건설사들의 현금 확보는 어려워진 반면 나가는 비용은 천정부지로 불어났다. 자체사업을 위해 확보해둔 토지의 대출 이자나 수분양자들에게 제공한 중도금 이자 등 금융비용이 치솟은 데다가 공사비까지 가파르게 올라 추가 사업비가 절실해진 상황이다. 수도권 한 시행사의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가 악화되면서 지방 아파트나 오피스텔 등 분양 물건들은 자금 조달이 대부분 막혔다"며 "분양이 완판되거나 선매입 매수자가 나타나는 등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은 사업장 역시 추가 대출이 대부분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대부분 사업장에 걸려 있는'책임준공확약'이 건설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약속한 시일까지 준공하지 못할 경우 사업장에 투입된 PF 대출 자금을 건설사가 인수해야 하는 계약이다. 한 사업장 당 적게는 몇백 억, 많게는 몇천 억 원 단위의 사업비가 걸려 있는 만큼 건설사들은 미수금을 쌓으며 공사를 이어가야 하는 형편이다. 이마저도 미분양이 많을 경우 언제 회수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자체 자금을 쏟아 부어 공사를 이어가더라도 건설사가 PF 대출 채무를 인수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2022년 말 화물연대 파업과 자재 수급 문제 등이 겹치며 시공기간이 늘어난 탓이다. 종합건설업체인 범양건영은 2월 29일로 예정된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오피스텔 준공 기한을 넘겨 공동 도급사들과 함께 322억 3500만 원의 채무를 나눠 인수했다. 회사는 분양 잔금에 더해 미분양 물량의 담보대출을 받아 대출을 상환할 예정이다. 성동이앤씨도 지난 1월 경기도 용인시 남사읍에 짓는 저온물류센터를 약 700억 원에 인수했다. 설상가상으로 착공 이후 물류센터가 위치한 남사읍이 토지거래 허가구역으로 묶이면서 700억 원이라는 현금이 꼼짝없이 묶이게 됐다.

동양도 2월 21일이었던 충북 음성 금왕 물류센터의 책임준공 기한을 넘겨 1800억 원의 PF대출을 인수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동양은 "PF 대주단과 유예기한을 협의중"이라며 "물류센터 매매계약을 추진하고 있어 매매대금으로 채무인수금액을 변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강원도 양양에 생활형숙박시설을 시공하고 있는 까뮤이앤씨도 402억 원의 채무를 인수하게 됐다고 공시했다.

자금 여력이 고갈된 중견 건설사들은 이미 법정관리로 내몰리고 있다. 정책 지원의 온기가 건설사들로 전이되지 못하면서 체급이 낮은 지방 건설사를 중심으로 줄도산이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5일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 통일그룹 계열사 선원건설과 영동건설, 부강종합건설 등 5곳 건설사가 부도처리됐다. 폐업하는 건설사도 증가 추세다. 올해 1월부터 이달 3일까지 폐업 신고한 종합건설사는 84곳, 전문건설사는 632곳으로 총 716곳에 달하고 있다. 부동산 활황기였던 2021년에는 같은 기간 폐업한 업체가 470곳에 그쳤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보증을 서고 자금을 대여해줄 계열회사가 있는 경우 상황이 그나마 나은 편"이라며 "팔아서 현금을 마련할 자산도 없는 대부분의 중견 건설사들은 워크아웃도 어려워 바로 법정관리로 직행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 경우 수분양자들과 하도급 업체들의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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