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 결혼하는 예비신부 서경아(33·가명) 씨는 본식이 다가올수록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다. 웨딩드레스에 대한 로망이 컸던 서씨는 1년 전 유명 디자이너의 드레스를 예약해 뒀다. 그런데 최근 웨딩드레스를 피팅하러 갔다가 사이즈가 맞지 않아 충격에 빠졌다. 혹독한 식단관리에 나서기로 마음 먹었지만 한 끼만 굶어도 1~2kg이 빠지던 20대와는 달리 체중계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서씨에게 생기가 돌기 시작한 건 우연히 ‘혈당 다이어트’를 소개 받으면서부터다.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으로 모임에 나타난 친구는 3개월만에 5kg을 감량한 비결로 ‘혈당 관리’를 꼽았다. 당뇨병 환자들이 쓰는 연속혈당측정기(CGM·Continuous Glucose Monitor)로 식후 혈당을 모니터링하면 본인에게 맞는 음식을 알게 되고, 삼시세끼를 전부 챙겨 먹으면서도 체중 감량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얘기였다. 실시간 혈당 데이터에 기반해 식단 등 맞춤형 관리를 해주는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살이 찌지 않는 체질로 바뀌었다는 친구의 말에 솔깃해진 서씨는 집에 오는 길에 해당 업체에 가입했다.
◇ 당뇨 아닌데 혈당 체크? 동전 만한 센서만 붙이면 실시간 모니터링
500원 짜리 동전만 한 크기의 패치를 피부에 붙이기만 하면 24시간 혈당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CGM 사업이 때 아닌 호황을 맞고 있다. 흥미로운 건 본래 적응증인 당뇨병 환자들이 아니라 체중감량 목적으로 CGM을 이용하려는 30~4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수요가 급증했다는 점이다. 혈당은 혈압·심박수·호흡수·체온과 함께 인체의 건강 상태를 반영하는 ‘제5의 활력징후(vital sign)’으로 꼽힌다. 특히 인슐린을 전혀 분비하지 못하는 1형당뇨 환자에게 혈당 관리는 생명줄과도 같다. 과거에는 바늘로 일일이 손가락을 찔러야 혈당 측정이 가능했다.
1999년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 메드트로닉이 전문가용 CGM 장비를 개발해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첫 허가를 받았고 이후 20여년간 CGM은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피하지방에 센서를 부착하면 세포 간질액의 포도당 농도를 측정해 스마트폰으로 전송하고 혈당이 정상 범위를 벗어나면 환자에게 경고하는 것은 물론 변화의 흐름을 읽어 고혈당·저혈당의 사전 예측도 가능하다.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 2022에서 최고혁신상을 거머쥔 애보트의 ‘프리스타일 리브레’가 장착한 게 바로 이 기술이다.
애보트·덱스콤·메드트로닉 등 글로벌 기업들이 선점한 CGM 시장에 국내 기업들도 앞다퉈 도전장을 내고 있다. 아이센스(099190)는 작년 9월 CGM 첫 국산화 제품인 ‘케어센스 에어’를 출시했다. 휴온스(243070)·한독(002390)·대웅제약(069620)은 수입 제품의 국내 판매·유통에 나섰다. 랜식·카카오헬스케어·닥터다이어리 등 벤처기업들은 스마트폰앱을 통해 CGM과 연계된 혈당관리 서비스를 선보이며 시장을 키우고 있다. ‘파스타’나 ‘글루어트’, ‘글루코핏’ 등의 앱은 식단 사진을 찍어 업로드하면 탑재된 인공지능(AI) 기술로 분석하고 혈당 변화를 시각화해서 그래프로 보여준다. 영양사·간호사 등 전문가가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는 서비스도 갖췄다.
◇SNS에 체중감량 후기 넘치는데…전문가들 “아직은 근거 부족”
이러한 서비스는 헬스장에서 퍼스널트레이닝(PT)을 받고 헬스케어앱으로 체지방·체질량지수(BMI) 등을 관리하는 데 익숙한 MZ세대의 취향을 적중했다.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혈당다이어트’, ‘혈당스파이크’ 등의 해시태그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운동이나 식사를 마치고 앱에서 본인의 혈당 수치를 확인하는 것을 넘어 혈당 그래프 화면을 캡처해 인증 사진을 올리는 이용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유튜브에서는 ‘음식을 먹는 순서만 바꿨는데 체중이 몇 키로그램(kg) 빠져다’거나 ‘혈당 낮추는 식단 정보’ 등의 콘텐츠가 넘쳐난다.
문제는 당뇨병이 없는 일반인이 체중감량 목적으로 CGM을 사용하는 데 대한 과학적 근거가 아직 충분히 쌓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채혈 형태의 혈당측정기를 ‘3등급 의료기기(중증도의 잠재적 위해성을 가진 의료기기)’로 분류하고 있다. 위해성을 기준으로 분류되는 네 등급 중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의사 처방이 불필요해 일반인이 자비로 구매하는 데 제한은 없지만 기계 오작동이나 데이터 해석의 문제, 피부에 장시간 부착하는 데 따른 이상반응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대한비만학회는 최근 성명서를 내고 “당뇨병 관리의 다양한 상황이나 당뇨병이 없는 사람에게 CGM 사용이 확실히 도움이 된다는 근거는 매우 부족하다”며 검증되지 않은 CGM 관련 비만관리 방법이 확산되는 상황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학회 진료지침위원회가 관련 문헌을 통해 의학적 타당성을 고찰한 결과 체중관리에 대한 CGM의 효과를 보여준 연구는 거의 없었다. 소규모 사용자를 대상으로 단기간 효과를 살펴본 연구만 일부 존재했으며, 그 효과가 크지 않아 일반 대중에게 일상적 사용을 권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학회는 “비만 관리와 건강 개선은 종합적인 생활습관 개선을 통해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며 “이러한 변화에 한 달에 수십 만원이 소요되는 CGM 장비가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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