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신용평가가 추산한 증권·캐피털·저축은행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최대 손실 규모 13조 8000억 원 중 브리지론이 차지하는 금액은 10조 원이다. 비중으로는 72.5%에 달한다. 본PF로 전환된 대출 채권에서 손실 위험에 처한 금액은 3조 8000억 원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손실 중 대부분이 브리지론 상태의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셈이다.
이는 증권·캐피털·저축은행의 전체 브리지론 29조 6000억 원 가운데 33.8%에 해당된다. 부동산 경기가 최악으로 치닫는 경우 현재 금융업권이 진행 중인 브리지론 중 3분의 1이 손실 위험에 놓인다는 얘기다.
브리지론은 부동산 시행사들이 사업 초기에 사용하는 비용(토지 매입, 인허가 등)을 융통하는 고금리 단기 차입금을 말한다. 이후 공사를 착공하면 금융권에서 조금 더 낮은 금리로 본PF 대출을 받아 브리지론을 갚는다. 착공 등 사업이 지연되면 본PF로 넘어가지 못해 막대한 손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나이스신용평가 세미나에서 여실히 확인된 셈이다.
3개 금융업권 중에서는 증권사의 브리지론 손실 비중이 최대 46.3%로 가장 높았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증권사가 보유한 6조 7000억 원의 브리지론 중 최대 3조 1000억 원에 달하는 사업장에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캐피털사가 가진 브리지론에서 손실 위험이 높은 금액은 3조 4000억 원 수준으로 비중은 35.4%를 기록했다. 저축은행은 다른 업권보다 많은 13조 3000억 원의 브리지론을 진행 중인데 이 가운데 26.3%인 3조 5000억 원이 손실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사의 경우 규모가 작을수록 손실 위험에 더 취약했다. 자기자본 5조 원 이상인 초대형사 8곳(미래에셋·NH·한국투자·삼성·KB·하나·신한·메리츠증권)은 자기자본 대비 추가 적립 부담이 적은 반면 키움·대신증권 등 대형사와 중소형사는 자기자본의 3~6% 수준의 충당금을 추가로 쌓아야 한다고 나이스신용평가는 추산했다.
이예리 책임연구원은 “지난해 말 증권업의 국내 부동산PF 익스포저(위험 노출액)의 중·후순위 비중은 42%로 다른 업권보다 높아 리스크가 가중되고 있다”며 “특히 대형사나 중소형사는 초대형사보다 고위험 사업장을 많이 보유하고 있고 위탁매매, 전통 기업금융(IB) 등 부동산 PF 관련 손실을 흡수할 수 있는 완충 능력도 부족해 수익성 하방 압력을 더 크게 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브리지론과 중·후순위로 투자한 본PF 주거용 사업장을 중심으로 손실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며 회사별 보유 투자자산의 질적 구성과 기적립한 충당금 규모에 따라 추가 손실 부담이 상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캐피털사와 관련해서는 신용등급이 AA인 캐피털사가 추가로 적립해야 되는 충당금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분석됐다. 다만 손실 감내 능력 등을 고려하면 신용등급 A 혹은 BBB급 캐피털사의 재무 부담이 클 것으로 봤다.
부동산 경기가 최악인 경우를 가정한 시나리오에서 캐피털사가 추가로 적립해야 할 대손충당금은 최대 3조 5000억 원이다. 캐피털사의 신용등급별로는 AA급이 2조 2000억 원, A, BBB급이 1조 3000억 원 수준이다. 동영호 수석연구위원은 “손실 가능성이 큰 브리지론과 중후순위 비중은 AA급보다 A급과 BBB급 캐피털사에서 더 높게 나타났다”며 “A, BBB급 캐피털사의 자금 조달 비용률과 대손 비용률이 더 가파르게 상승하는 추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축은행의 경우도 대규모 충당금 적립으로 지난해 업권 전체의 순이익이 적자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최근 부동산 경기 등을 고려할 때 부족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저축은행의 부실 인식이 만기 재연장 등으로 지연되고 있으며 부실 사업장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비교적 처분이 용이한 사업장 위주로 사업장 정리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저축은행의 부동산PF 익스포저는 2022년 말보다 1조 4000억 원 줄어든 7조 7000억 원 수준이지만 최대 손실 예상 금액이 4조 8000억 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업권의 기적립 대손충당금 1조 5000억 원이 턱없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김한울 책임연구원은 “만기 재연장, 저축은행의 PF 대출 자율협의회 개시 등으로 부실 인식은 다소 지연되고 있으며 브리지론을 중심으로 이연된 잠재 부실 규모가 상당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관건은 부실 사업장을 조속히 정리하고 경상이익을 안정적으로 창출할 수 있을지가 중요하지만 부동산 시장이 빠르게 회복하지 않는다면 예상 손실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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