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22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정부가 구상 중인 ‘신(新)통상 전략’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안은 후순위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18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달 발표 예정이었던 ‘신통상 전략’ 발표를 연기하기로 했다. 발표 일정과 더불어 명칭 역시 ‘통상 정책’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관계 부처와 긴밀하게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산업부는 올 들어 신통상 전략 구상에 착수한 바 있다. 갈수록 격화하는 미중 패권 전쟁과 더불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 등 통상 관련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는 판단에서다. 통상교섭본부장 출신인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1월 취임 직후 전략 구상에 착수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안 장관은 올 초 미 대선과 관련해 “내부적으로 여러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부가 ‘신통상 전략’ 발표를 연기하기로 한 것은 총선 결과와 관련이 깊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야당이 압승하면서 현 정부의 정책은 동력을 잃은 반면 야당이 주장하는 통상 정책이 상당 부분 반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은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주요 입법 과제는 일단 22대 국회 원 구성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며 “현재는 어느 부처나 주요 정책을 내놓기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CPTPP 가입안은 신통상 전략 후순위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초 산업부는 해당 전략에 CPTPP 가입 재추진 관련 내용을 담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했다. CPTPP는 일본 주도로 2018년 출범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자유무역협정(FTA)이다. CPTPP에 가입하려면 국회 보고를 거쳐야 하는데 농어민 등이 반발하고 있어 야당의 동의를 얻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 관계자는 “CPTPP는 시장 개방 수준이 높아 농어민의 반발이 크다”고 설명했다.
통상 정책 방향이 흔들리면서 ‘정책 부재의 위기론’도 제기된다. 특히 11월 예정된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발등의 불’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한국에 대한 무역 제재를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분기 대미 수출액은 310억 달러로 대중 수출액(309억 달러)을 넘어섰다. 미국으로의 수출이 대중 수출을 넘어선 것은 2003년 2분기 이후 21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해 대미 무역수지 역시 역대 최고 수준인 444억 달러 흑자를 나타냈다. 한국은행은 “미국은 대한 무역수지 적자 폭이 커지거나 자국 산업 보호에 대한 여론이 고조될 때 FTA 재협상 추진과 세이프가드 발동 등 무역 제재를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반덤핑 관세, 세이프가드 등 한국산 수입품에 취한 규제는 2018년 38건에서 지난해 55건으로 최근 5년 새 약 45% 늘어난 바 있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 연구위원은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6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만큼 통상 전략을 잘 준비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부의 외교·통상 정책 기조가 흔들리면 주요 파트너 국가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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