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자막이 다시 보여요” 뇌졸중 후 찾아온 시야장애, 어떻게 극복했나[메디컬인사이드]

■ [메디컬인사이드] 강동화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고령화로 뇌졸중 급증…20%가 뇌졸중 후 시야장애 호소

뉴냅스, 시지각학습 훈련 원리 착안 ‘디지털 치료기기’ 개발

13년만에 전 세계 첫 상용화 쾌거…하반기 첫 처방 목표

이미지투데이




“병을 앓고 난 후 시야를 완전히 확보하기 어려워지니 매사에 자신감이 사라졌어요.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도 과거의 즐거움이 되어버렸죠. ”

뇌졸중 후유장애인 시야장애로 2011년 5월 서울아산병원 신경과에 내원했던 50대 서경자(가명) 씨는 “자막 있는 영화를 마음 편히 보는 날이 다시 올 거라곤 생각조차 못했다”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불과 4년 전까지 대형 스크린을 갖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게 유일한 취미였다는 서씨. 갑작스레 찾아온 뇌졸중은 평온하던 서씨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뇌졸중은 뇌혈관이 갑자기 혈전 등으로 막혀 뇌세포가 죽거나 터지면서 발생하는 중증 응급질환이다. 발병 부위에 따라 다양한 신경학적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적절한 시간 내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뇌에 영구적 손상이 생겨 편측마비·발음장애·실어증 등 후유장애가 남을 수 있다. 서씨는 운동·감각·언어·인지기능에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시야장애가 생겼다.

◇ 뇌졸중 환자 20%가 시야장애 호소…검증된 치료법 전무


시야장애는 눈과 시신경은 정상이지만 시각피질인 후두엽이 손상돼 시각정보의 일부를 인식하지 못하는 결손이다. 뇌졸중 환자의 약 20%는 시야장애로 인해 운전, 독서, 계단 오르내리기 등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 서씨의 경우 오른쪽 시야가 일부 손상돼 책을 읽거나 영화 자막을 볼 때 불편감이 컸다. 사각지대에서 다가오는 차량들이 보이지 않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경험을 한 이후로는 운전대를 완전히 놓아버렸다.

무엇보다 가장 괴로웠던 점은 뇌졸중으로 인한 5가지 후유장애 중 유일하게 검증된 치료법이 없다는 사실이었다고 한다. 발병 직후 “더 큰 후유증이 남지 않은 게 어디냐”며 위안을 삼았었다는 서씨는 3년 반이 넘어가자 지쳐갔다. 1~2년 열심히 재활을 하면 팔·다리 마비 증상이 사라지기도 한다는데, 시야장애가 전혀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는 데서 오는 무력감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던 중 가상현실(VR)을 통해 뇌손상으로 인한 시야장애를 개선하는 치료법을 연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아산병원에 찾아온 것이다. 당시 연구책임자였던 강동화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암실 안에서 받침대에 턱을 괸 채 모니터를 보며 자극점이 보일 때마다 조이스틱을 누르면 된다. 다소 지루하게 여겨질 수 있다”면서도 “시지각 학습(Visual Perceptual Learning) 훈련을 반복하면 좁아진 시야를 개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의 안내에 따라 훈련을 마친 서씨는 한 달 만에 시야검사에서 확연히 달라진 결과지를 받아들었다. 이 때 서씨가 받았던 훈련이 바로 지난달 허가된 국내 제3호 디지털 치료기기 ‘비비드 브레인(VIVID Brain)’의 전신이다.

◇ 2011년부터 13년간 매달린 끝에 디지털 치료기기 상용화 성공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의사로 재직하며 난치성 시야장애 환자들의 고통을 체감했다는 강 교수는 시지각 학습 훈련의 잠재력을 보고 관련 연구에 뛰어들었다. 시지각 학습은 시각 자극에 대한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자극에 대한 지각이 향상되는 현상이다. 그는 “시각피질과 그 주변을 활성화하고 뇌가소성(새로운 뇌연결)을 유도할 수 있는 2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승산이 있다고 확신했다”며 “소프트웨어의 탐색임상에서 효능을 검증하고 치료반응을 예측하는 바이오마커를 발굴하니 비로소 방향이 뚜렷해졌다”고 회상했다.

2017년 헬스케어 스타트업 뉴냅스를 창업한 강 교수는 2019년 시야장애 개선을 위한 디지털 치료기기 ‘뉴냅비전’의 임상시험을 승인 받았다.



시야장애를 겪는 환자가 가상현실(VR) 기기와 모바일 앱을 활용해 시지각 학습 훈련을 진행한 다음 결과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사진 제공=한국보건산업진흥원


국내에서 디지털 치료기기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임상 승인을 받은 첫 사례였다. 디지털 치료기기는 질병을 치료·관리·예방하기 위해 의사가 처방하는 소프트웨어다. 강 교수는 환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뇌가 먹는 약’이라고 설명하곤 한다. 기능에 따라 보완제와 대체제 등으로 나뉘는데 비비드 브레인의 경우 기존 치료제가 없는 시야장애에 허가 받았다는 점에서 ‘혁신신약(first-in-class)’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2011년 연구 소개만 듣고 눈물을 흘리던 환자를 보며 개발 의지를 다진 이후 상용화까지 꼬박 13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 환자들의 간절함이 원동력…“올 하반기 서울아산병원서 첫 처방 목표”


뇌졸중으로 인한 시야장애는 여전히 명확한 치료법이 없어 전 세계적으로 미충족 의료수요가 높다. 야심차게 시작한 첫 임상에서 실패를 맛봤던 강 교수는 뉴냅비전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비비드 브레인으로 확증 임상시험에 재도전했다. 비비드 브레인은 뇌졸중으로 인해 시야가 좁아진 환자의 시야장애를 개선하기 위해 환자 맞춤형 시지각 학습 훈련법을 가상현실(VR) 기반 모바일 앱으로 구현한 제품으로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unctional connectivity MRI)을 활용해 신경학적 기전을 규명했다.

강동화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가 ‘비비드 브레인’의 원리와 개발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아산병원


뇌졸중 병변 주변의 잠자는 뇌를 깨워 시지각 기능을 회복시키는 원리는 뉴냅비전과 동일하며, 12주의 환자 개인별 맞춤형 훈련 알고리즘으로 구성해 접근성을 높였다. 원격 모니터링으로 지속적인 관리도 가능하다. 강 교수는 십수년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개발을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환자들의 간절함을 꼽았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면 세계 각국에서 이메일로 임상 참여 여부를 문의하는 환자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뇌졸중 환자는 인구구조 고령화로 인해 급증하는 추세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21년 뇌졸중 발생건수는 10만8950건으로 10년 전인 2011년보다 9.45% 늘었다. 그는 “올 하반기 비비드 브레인의 첫 처방을 시작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을 본격적으로 확장할 계획”이라며 “시야장애로 고통 받는 전 세계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부여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